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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ug 02. 2022

남 기자 아니고, 영주 씨.

기자와 취재원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느껴질 때

피해자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고 천천히 곱씹었다. 생각해보니 나를 기자라고 부르지 않았던 유일한 분이셨다.


영주 씨, 연락줘서 고마워요.


어머니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삼고초려. 기자란 직업은 대체로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다. 유가족에겐 특히 그렇다. 이럴 때 나는 내 직업이 참 가혹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자가 필요한 이유를 안다. 기사를 써야 하는 이유도 안다. 비극적 죽음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잘못한 사람이 죗값을 제대로 받으려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면 기사 한 줄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러저러한 명분을 갖다 붙이고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당연히 문전박대에 가까웠다. 가족들 손에 내 명함은 꾸깃꾸깃 접혔다. 너무나도 그럴 수 있다. 죄스럽지만 꾸역꾸역 명함을 한 장을 더 두고 나왔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틀치 짐만 꾸려서 부랴부랴 내려간 낯선 땅이지 않나. 언제 봤다고 나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겠나.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어떻게 포장해도 너는 불청객이다. 나를 마다할 여러 이유들을 찾고 나니 선명해졌다. 결국 나는 어둑해진 밤, 빵과 음식들을 잔뜩 손에 쥐고서 다시 그 집으로 향했다. 오고초려를 한다 해도 열리지 않았을 마음의 빗장이 열린 건 그날 밤의 노크였다. 아마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가족들의 눈에는 그 시간까지 밥도 못 먹고 돌아다니는 어린 여기자가 눈에 밟히지 않았을까 싶다.


인터뷰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는 동안은 어머니와 함께였다. 시시때때로 같이 울기도 했다. 이틀로 예정됐던 출장은 닷새나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아이가 숨진 곳에서 살인범의 신상공개 기사를 읽었다. 들끓는 여론에 피의자들의 신상공개가 결정된 것이다. 피해자의 집에 홀로 남아 CCTV를 돌려본 지 몇 시간째, 방송은 임박하고 제작은 해야 했다. 풍랑주의보가 내려진 이곳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조립식 건물이라 울림이 심해선지 몇 번을 다시 녹음했는데, 결국 아이가 숨진 2층 다락방 계단에서 읽은 오디오가 리포트로 나갔다. 내 목소리가 아이에게로 가닿았을까. 온갖 느낌이 솟아올랐다.


서울로 돌아온 후 주범과 공범은 나란히 살인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 기사 역시 내 몫이었다. 사건 초기 속보부터 신상공개, 검찰 송치까지 다 썼으니 경찰 기자로선 내가 쓸 수 있는 기사를 모두 다 쓴 셈. 방송계 은어로는 시마이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를 때까지, 혹은 천벌 받을 때까지(유가족 입장에선 그런 날이 과연 올까 싶다) 그 종지부는 아득히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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