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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ug 02. 2022

처음부터 끝까지

AS 전문 기자

아직 주니어 기자인 내게 인턴과 수습을 평가하는 자리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의 합불 당락의 키를 쥔단 말인가. 무엇보다 절박한 그들에게서 과거의 내 모습을 겹쳐 보는 괴로움이 가장 크다. 결국 한 마디를 해도 구구절절 피드백이 길어진다. '나 같은 시행착오는 나 하나면 됐다'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여름 첫 인턴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했던 마지막 말은 똑같았다.


너희들만큼은 내가 죽을 때까지 AS 해줄게.


진심이었다. 채용 전환 이후 AS를 청하는 후배 연락에 입봉작을 찾아 함께 머리를 맞대주고, 아쉽게 떨어진 친구의 연락엔 당장 밥부터 먹였다. 내 첫 아해(?)인만큼 끝까지 책임져주겠다는 의리의 표현이었다. 허나 웬걸, 그 말은 곧 씨가 되었다. 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간다]라는 코너를 맡게 되면서다. '다시 간다'라는 말 그대로 사고 현장에 다시 가서 사건을 되짚어 보는, 이른바 '뉴스 AS'를 전담하게 된 거다.



벌써 이 코너에 온 지도 반 년이 지났다. 처음 시작할 땐 매주 하나씩 방송해야 하는 부담감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일단 기자인 내가 아파서는 안 된다. 대체 인력이 없다. 딜레이도 없다. 기획→섭외→출장→취재→기사→편집→후작업 등 각 단계에서 하나라도 틀어지면 정해진 날짜에 출고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팀 일정이 올스톱된다. 아이템 선정이 늦어서도 안 된다. 지방 출장이 잦아 취재 일정이 빠듯하다. 시간이 없으니 섭외가 되든 안 되든 나는 무조건, 그리고 무작정 현장으로 떠나야 한다.


누군가는 일주일에 기사 하나 쓰니까 오히려 여유가 있다고 하겠지만, 또다른 누군가는 지방을 돌아다니까 각 지방 맛집을 섭렵하겠다고 하겠지만… 이건 주간 기획물의 루틴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기사 하나 출고하자마자 다음 주 아이템을 찾아야 하고, 높은 발제의 문턱을 넘는 순간 인터뷰이가 그 누가 됐든 설득해야 하며(다시 간다에선 보통 유가족이나 피해자의 지인이다), 하루 사이 경상도와 전라도를 넘나드는 건 일도 아니다. 높은 확률로 하루의 절반은 고속도로에서 보내기 때문에 끼니는 휴게소에서 떼우기 십상이다. 현지인 맛집 근처에도 못 가고 서울로 복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름의 루틴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도 찾는다. 기자에게 가장 큰 행복은 결국 '보람' 아니겠나. 취재원들의 말 한 마디에 울고 웃는다. 물론 여차저차 바쁘다는 핑계로 글을 자주 쓸까 싶지만, 그래도 가급적 주마다 한 번씩은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보고자 한다. 방송 여건상 취재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아도, 일주일을 붙들고 있어서 그런지 매 화마다 들인 노력과 품이 상당하다. 하지만 러닝타임의 제약으로 기사엔 그 절반도 채 실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겠지만) 남는 아쉬움은 오디오가 아닌 글로 풀어보련다. 오래 전 소개 페이지를 썼던 그때 마음 가짐으로 말이다.



사회부에서 따뜻한 세상을 꿈꿉니다. 늘 사람을 향하는 글을 쓰겠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나는 분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접하는 사고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습니다. 기사를 쓸 때 부득이 덜어낼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남 일 아니고 내 일처럼, 늘 사람을 향하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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