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 Feb 17. 2023

인센티브를 받았는데요

금융치료에 실패했습니다

에게? 이것밖에 안된다고요?

연말연시. 연봉의 15%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는 말에 온 회사가 조용히 들썩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월급날. 뒷간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 다르다더니,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그동안 늘 성장을 외치는 적자회사(a.k.a 스타트업)에서만 일해봐서 인센티브는 처음이라 그런가. 세금을 많이 떼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한 달 치 월급만큼 세금을 뜯기도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어쨌거나 월급에 수당까지 포함해 천만 원이 넘는 돈이 계좌에 찍혀있었다. 한 달 치 월급을 더 받은 셈이자 월급을 더하면 2년을 몸담은 전 직장 퇴직금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그런데도 금융치료 실패라니.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돈을 잘 벌었다고, 통장에 찍힌 여덟 자리 숫자에 이리도 무뎌졌단 말인가.  


돈이 부족한 걸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만약 인센티브로 한 번에 1억을 받았으면 달랐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또 세금을 왕창 떼겠지. 보수적으로! 5,000만 원. 생각보다 5,00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썩 떠오르지 않는다. 사고 싶었던 차를 살 수도 있겠지만, 이 경기 침체가 두려운 나는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잠시 미루고 그 돈으로 세입자 전세금이나 빼주겠지. 그러면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니 한 달에 몇십만 원의 이자로부터 자유로워질 테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내 마음의 편안함과 안녕감을 보장해 줄까? 그렇게 얻은 대출 한도로 서울의 아파트를 사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게 되지는 않을까? 자신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몇 년 전보다는 자산 증식에 대한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기회가 있다면 서울의 아파트나 월세 나오는 상가 건물이 가지고 싶다. 그리고 또 이자와 부수적인 문제로 고통받겠지. 수중에 그렇게 많은 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돈은 가져도 가져도 부족하다는 말이 참으로 와닿는다.


한 달 치 월급으로 뭘 하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 돈으로 뭘 해야 하지? 5,000만 원으로도 할 게 없는데 1/10로 할 게 있을 리가. 곧이어 수신 금리가 내린다고 하니, 소소하게 새마을금고의 연 5.6%(세전) 특판 예금에 가입했다. 6개월 만기라 이자는 십몇 만 원밖에 안 되겠지만.


그런데 그마저도 연말정산으로 뱉어내야 한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이건 내 계산에 없었는데? 갑자기 뱉으려니 50만 원도 크게 느껴져서 3개월 분납 신청을 했다. 세금 돌려받던 시절에는 이런 기능이 왜 있나 했는데, 날 위한 거였구나? 받는 돈은 몇 백만 원도 큰 감흥이 없었는데, 내는 돈은 몇 십만 원도 이렇게 억울하다니. 다시 평범한 직장인 모드다.


월급 값이 매값이라고는 하지만

이례적인 성과급 잔치를 해도 이렇다면, 아무래도 매 맞고 돈만 받는 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 뚜렷해진다. 돈은 물론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나의 온실을 구축하는 동안 돈 말고 또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차피 평생 일해야 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