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처럼 쉽지가 않네요
하루에 여덟 시간 잘 자고, 지하철이 조금 선선해지는 때를 노려 출근하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에 김밥 한 줄 오물거리며 해야 할 일과 이메일 확인하기. 오전에 집중해서 꼭 해야 할 일 처리하고, 점심엔 가볍게 샐러드와 산책.
회의에선 적당히 걸러 듣고, 꼭 해야 할 말만 하기. 누가 보지 않아도 내 할 일을 하고. 가끔은 예상치 못한 일로 고생하고, 가끔은 생색도 내고. 또 가끔은 가뿐하게 퇴근하기.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요가 매트 위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루에 한 시간쯤은 무뎌지지 않게 나에게 집중하기. 사랑하는 사람과 깔깔거리다가 활자 속에서 스르르 잠들기.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7년 째다. 꿈에서 누군가에게 시달리고, 마르지 않은 머리, 기름기 묻은 손으로 키보드를 두들기다 아차 하는 아침. 책상은 또 왜 이리 어수선한 지. 해야 할 일은 정리되지 않고, 설령 정리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왜 이리 몰려오는지.
과자 한 봉지, 젤리 몇 봉다리, 다 먹지 못한 커피 몇 잔. 마음을 다 잡고 할 일을 해야지 싶다가도, 별 거 아닌 운영성 업무에 시간을 쏟고 옆자리 동료와 구시렁거리다 보면 어째서 시간은 시간대로, 체력은 체력대도 엥꼬가 나버리는지. 남들이 몰라줘도 열심히 하겠다 마음먹었는데, 나 스스로에게 의미 부여하기를 실패한 채 하루가 머엉-하니 간다.
운동 시간 10분 전. 뛰어가기도 애매하고, 날도 너무 더우니 다음에 가지 뭐.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동안 도착한 배달음식을 뜯어먹으며 숏츠나 주구장창 보다가 두통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다.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만, 잠시 누웠다 보니 벌써 밤 열 시. 슬슬 잘 시간이다.
또다시 다음날 아침, 대안 없이 구시렁거리며 하루가 간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건지, 다들 왜 이리 욕심이 많은 지. 남 일엔 또 뭐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다가도, 에효.. 내가 나가서 어떻게 돈을 벌어, 어떻게 이렇게 적당히 농땡이를 피워,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어떻게 또 바닥부터 열심히 살아. 경기가 얼마나 안 좋은데... 밖은 전쟁이래. 난 게으르고, 무능하고... 또 사회는 쓰니까. 어영부영 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하루가 간다.
그래, 그렇다고 무작정 퇴사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퇴근하고 내 걸 해보는 거야!라고 말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럴 힘도 없다. 마음을 '먹는' 일도 어찌나 힘에 부치고, 속이 부대끼는지. 희망 없는 하루, 무망한 날들. 예전엔 열심히 사는 누군가가 부럽고 일을 벌이는 걸 보면 자극이 되었는데 요즘은... 그저 또 다른 신포도다. 어차피 나는 못할 거니까, 부럽지도 않아. 부럽지가 않아.
애써 마음을 다 잡으려 해도, 이게 다 무슨 의미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으니 꾸준히 조금씩 하는 수밖에 없다 싶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쉽냐고요. 스르륵 누워버리면 또다시 고랑을 차고 일어나는 푸석한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