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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섭 Nov 13. 2023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서문

지금의 제가 쓰는 마지막 대중서입니다.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공부는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임상의사가 아닌 보건학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만나고 차트에 적힌 병력을 읽어보면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한 게 분명한데, 병원에서는 약으로 그들의 증상을 치료하려 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이룬 성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그 약들은 실제로 증상을 완화하고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이들을 종종 삶의 자리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환자가 돌아가야 할 가정은 과거와 다름없이 폭력적인 공간이었고, 병원 사람들은 모두 그가 다시 입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당장 다음 주 생계가 막막한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의학 교과서에 적힌 대로 “다친 허리를 치료하려면 며칠은 조심하며 누워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일은 허망했습니다. 먹고사는 일의 무게 때문에 검진 시기를 놓쳐, 몸 여기저기 전이된 이후에 유방암을 진단받은 여성에게 의학이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이며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물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원을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임상의사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제력을 포기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하면 내 고민은 결실을 얻을 수 있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부조리한 사회가 질병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게 명확해질수록, 그 대답은 더 무겁고 또 멀게 느껴졌습니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입니다. 우리는 손톱 밑에 찔린 가시로 아파하는 옆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요. 특히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은 종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며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사회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공부는 책상 앞에서만 할 수 없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생존 학생과 동료를 잃은 생존 장병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화재 진압 과정에서 동료를 잃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로 고통받는 소방 공무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정리해고 이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장례식을 찾아다니고, 비과학적 낙인으로 삶을 부정당하는 성소수자들의 집회에 함께하는 일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부인 이상 그 모든 시간은 책상 앞에서 글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분노와 고통의 에너지로 존재하는 경험들을 데이터를 이용해 논문과 책의 형태로 정리하는 일은 연구자의 몫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위해서는 사건의 뜨거움이 내 몸을 통과하게 해야 했지만, 동시에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 냉정함을 유지한 채 학술적 언어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공부를 할수록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니까요. 합리성은 종종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얼마만큼 있는가로 결정되기에, 기득권은 사회의 모든 갈등에서 더 ‘합리적인’ 주장을 하기 쉽습니다. 근거는 지식의 형태로 존재하고,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자원과 시간이 투여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에서는 이미 생산되어 있는 지식만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읽고 만나고 부대끼며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썼던 이유는 제가 공부한 내용 중 쓸모가 있는 것들을 세상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이 모두에게 환영받는 보편의 지식보다는,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무기로 쓰이기를 원했습니다. 언어가 무기가 된다는 말, 낯설고 두려운 표현이지만 누군가를 괴롭히고 상처를 입히는 무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말하는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데 힘이 되는 무기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계속 글을 썼습니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은 제 공부가 진행되는 무대에 대해 질문하는 책이었습니다. 생산되지 않는 지식과 측정되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 그 부조리를 지속시키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정치적 진영 논리에 따라 폄하하는 세상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과 천안함 생존 장병의 목소리를 매개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려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는 제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와 길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이야기와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대중을 상대로 지금의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앞뒤 맥락을 잘라낸 채 몇 마디 말을 인용하며 사람과 사건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는 일이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에, 이 두꺼운 책들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제게는 큰 위로였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마음으로 읽어주셨던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그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책을 쓰며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필자로서 저를 아끼고 응원해 주시는 동아시아의 한성봉 사장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그 속 깊은 존중은 제가 글을 계속 써야 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원고를 모으고 정리하며 정성을 다해 글을 만져준 오시경 편집자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려대와 서울대에서 함께 공부를 해주었던 연구실의 학생들이 있어 책에 소개한 여러 연구가 가능했습니다. 이번 책에는 여러 언론에 기고했던 대담과 칼럼, 연재 원고가 실려있습니다. 귀한 지면을 내주셨던 언론들에 감사드립니다. 기고 글을 쓸 때면 함께 고민하고 상의해 주었던 정환봉 기자님과 장일호 기자님께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 밝은 눈을 가진 이들과 논의할 수 있다는 축복은 예민한 주제를 두고 감히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윤태웅, 류홍서, 윤조원, 이승윤 교수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닮고 싶은, 사려 깊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습니다. 


이금준 선생님께서 함께해 주신 시간들이 있어,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자 계속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제 문장을 마음으로 읽어주시는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존재는 항상 큰 힘이었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의 장남이 선택한 길을 자랑스러워해 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제가 원하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아내 영선이 있어 견딜 수 있었고 계속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세 딸, 지인, 해인, 리인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제 모두 10대가 된 지해리가 언젠가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려 했는지 궁금한 날이 온다면, 이 책이 답이 되어주리라 믿습니다.


2023년 11월

관악연구실에서 김승섭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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