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상 앞은 아버지의 근엄함에 따라 따뜻할 수도 차가울 수도 있는 자리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어느순간보다 부모님이 사랑을 듬뿍 담겨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갈수록 차가운 교실과 사무실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실어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도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학생 신분일 때는 유난히 아침밥 밥맛이 없다. 밥그릇채를 남기기 일쑤고, 반찬도 까다롭게 거른다. 지저분하게 먹다 남겨도 남은 밥은 어머니가 맛있게 먹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건강을 위해 고심하는 어머니의 고민 따위 배려하길 바라는 건 욕심인게 사실이다. 비릿한 해산물이나 초록 채소 반찬을 밥 위에 올려주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버지가 있으면 먹고 없으면 뱉어냈다. 누군가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김밥과 따뜻한 국물이 반찬으로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는 가끔씩 당신 입 맛의 김밥을 만들겠다며, 어머니에게 쉴 틈을 주기도 했다. 어머니가 만든 것보다 자극적인 맛이어서 동생들과 내 입맛엔 딱이었다. 햄 두 개, 계란 두 개, 단무지, 시금치 빼고.
동생이 늦게까지 씻는 바람에 지각을 할 수도 있어 그냥 나가려 하면 기어코 밥에 국을 말아 숟가락을 들고 쫓아 다닌다. 귀찮아 하는 모습이 밉지도 않았을까. 십 여 년을 군소리 없이 밥을 떠먹여 주었다. 유치원 선생님인 친구는 이제야 그 마음 알겠다고 했다.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야 본인의 하루가 편안하다고 했다. 나는 아직 모르는 성숙함이다.
사회에 나와 혼자 살게 되면서 아침밥은 사치였다. 알람 한방에 스스로 일어나 씻고 나가는 것만해도 기특한데, 아침밥까지 차려 먹는 건 감당이 안되는 멋스러움이다. ‘커피 앤 도넛’이 어째서 한블럭에 하나씩 있는지 알겠고, 햄버거 딜리버리 서비스는 가히 배달의 민족다운 편리함이다.
자취 후 처음 맞이하는 겨울날 유난히도 하루종일 추위에 떨었다. 기력도 없고 에너지도 빠지는 것 같다고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걱정이 되었는지 서울로 찾아왔다. 처음으로 세 끼니를 챙겨먹게 되었고, 몸에 뭉쳐있던 스트레스들이 날아갔다. 점심에 잠이 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겨우 손만 따뜻하게 하던 커피값 5900원을 며칠동안이나 아낄 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간 후에는 아침밥은 먹지 않았지만, 본가에 있을 때면 꼭 아침밥을 기다린다.
친구들과 길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만큼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한겨울에도 교복만 입고 새벽 등교를 할 수 있었던 건 아침밥상에서 듣던 잔소리와 꾸중 덕분이었다. 그 따뜻함 때문이다. 당신들이 유일하게 부잣집 부모들과 공평하게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의 시간을 잊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