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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지 Apr 25. 2022

전장연 시위를 보며 슬픈 이유

교통약자들의 오은영 박사님이 필요해

지하철 때문에 늦었어요

요즘 회사에서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하는 시위때문이구나. 나도 장애인이기에 괜히 눈치가 보였다. 민망한 마음에 “장애인 시위로 열차 지연됐죠?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제가 대신 죄송해요 ㅠㅠ"라고 하게 된다. 손사래 치며 시위가 아니라 지하철 고장이었다고 말하는 동료들이 짠하다.


내게는 직장인 자아와 장애인 자아가 둘 다 있다. 직장인 입장에서 출근길을 막는 건 정말 말도 안 된다. 서울의 출근 길은 고난의 연속이다. 가득 찬 지하철에 몸을 밀어넣어야 하고 또 안에서는 밀지 말라고 투덜댄다. 겨울에는 패딩때문에 눌리고 여름에는 땀에 쩔어 있다가 살이라도 스치면 아, 상상만 해도 싫다. 출근하기 전부터 체력이 고갈되어 자리에 앉자마자 아메리카노를 들이켜야 할 것 같은 느낌,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지하철 연착이라니, 사람은 더 몰려 난리통이고 회사는 지각하는 상황에 인류애를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마음을 알기에 동료들에게 사과를 건네곤 했다.


그러나 장애인 입장에서는 전장연의 요구사항과 방식을 떠나서, 그들이 주장하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개선에는 크게 공감한다. 나를 옆에서 가깝게 본 남편조차도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난 주말 아침 남편과 수영장을 다녀오면서 전장연 시위에서 시작해 장애인 이동권까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편은 불편할 때도 많지만 오늘같이 편한 경우도 있지 않냐고 했다. 우리가 가는 수영장은 주차장이 좁아서 이중 주차를 하거나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장애인주차구역에 차를 바로 댈 수 있어서 다른 사람에 비해 주차가 편하다는 거였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걸어서 갈 수 있는 동네 수영장에 갔겠지.


장애인 시설을 갖춘 수영장은 서울에  군데 없다(내가 아는  정립회관, 푸르메스포츠센터, 서울곰두리체육센터 정도이다). 그마저도 서울 중심부보다는 서울-경기도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동네 수영장을 가보려고 알아봤지만 동선 상에 턱이 있어서 휠체어로 이동할  없고, 휠체어를 타고  뚝뚝 흘리며 탈의실에 들어가는  허락해주지도 않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나는 수영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같은 레일을 쓰기 어렵다. 그나마 장애인 시설을 갖춘 수영장도 장애인 수영 프로그램은 보통 평일 낮이라서, 주말에   있으면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고르니 차로 30~40 걸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1시간이 넘는다. 수영장에 장애인 주차구역마저 없다면 수영을 취미로 지속하지  했을  같다. 장애인 주차구역을 이용했던 지난 주말,  이동권이 편하다고   있을까.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는 이유는 교통약자가 더 좋은 옵션을 선택할 수 없어서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내게 자가용은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를 안 겪어도 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것처럼 말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못 타고 그냥 보낸 경우는 일상적이다 (가끔 급하면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타는데 눈치가 많이 보인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 역에 도착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몇 정거장을 더 가서 장애인콜택시를 부른 적도 있다 (물론 배차시간은 길어서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버스를 몇 대를 보내고도 저상버스가 오지 않거나 (혹은 휠체어 발판이 고장났거나)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는 것 (어느 기사에서는 지난해 평균 대기시간이 32분이라고 했지만, 배차 대기자가 많거나 1시간 이상 걸릴 것 같으면 아예 안 부르거나 취소한다. 체감 대기시간은 훨씬 길다)

일반 택시 승차거부를 당하거나 (최근에는 택시 호출 서비스 덕분에 나아졌지만 탑승하더라도 장애인 콜택시를 타야지 왜 일반택시를 타냐는 훈계를 듣기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이런 일들은 흔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나에게 자가용은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자 일종의 방어기제이다. 교통약자에게 장애인 주차구역은 특권이 아니라, 다른 옵션이 충분히 주어질 때까지 제공되는 임시방편일지도 모르겠다.


예산만 확보되면 이동권 문제가 해결될까?


물론 예산을 확보하고 기본적인 시설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 장애인 주차구역과 같이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므로 개선해나가야 한다. 또한 교통약자 장애인들간에도 상태가 다 달라서 내 입장만을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나처럼 일반 택시도 타고 혼자 운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건 같이 살아가는 시민들의 인식을 바꿔나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는 점이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더 선호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불편한 점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차별과 혐오를 온 몸으로 받아내기에는 당시 내가 충분히 단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쁜데 왜 나왔냐며(혹은 기어나왔냐며) 사람 많으니까 나중에 타라고 이야기하는 분

엘리베이터에서 내가 타면 휠체어 있어서 좁다며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내내 투덜거리는 분

휠체어 바퀴에 스쳐서 바지에 흙먼지가 묻으면 욕을 하거나 신경질을 내면서 바지를 털어내는 분

열차나 엘리베이터에 타면 웬만하면 구석진 곳에 자리잡지만 잘 안 될 때가 많다. 이런 나를 누군가 못 보고 부딪힐 때면, 내가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인데 혼자 꿈틀거리는 느낌마저 든다.


시위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 속 장애인 혐오 표현을 보면서, 솔직히 무서웠다. 이번 시위를 계기로 거리낌 없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분위기가 조성될까봐 걱정된다. 내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의 첫 번째 이유는 갖춰지지 않은 시설이지만, 상처는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과 혐오 표현에서 온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국가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다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뉴욕에 갔을 때 불편한 건물과 지하철도 많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과 배려로 상처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 곳 사람들은 내가 겪는 불편함이 당연히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로 “같이" 인식해준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그런 시민들이 있다면 정부와 지자체도 교통약자 이동권 예산을 우선으로 놓고, 더 많은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까. 시위로 힘들게 얻어낸 예산이 허투로 쓰이는 걸 지켜봐주는 시민들이 생기지 않았을까. 오은영 박사님이 예능 출연을 통해 육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강형욱님으로 반려견 문화가 바뀌었듯 교통약자가 겪는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공감을 얻어내는 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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