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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리어스 Dec 26. 2019

좋아하면 좀 피곤하게 살아도 괜찮아

애송이 같은 남동생에게 - 몇 살 많은 애송이 누나가.

 내 남동생은 나와 세 살 터울. 그 동생에게서 어제 이번 학점이 평균 2점 정도 올랐다며 전화가 왔다. 개인적은 일을 겪은 지 몇 주 안 된 마당에 공부에 집중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0.2점도 아닌 2점을 올리다니... 실로 엄청난 정신력과 노력의 산물임이 분명하다.


 "원래 학점이 너무너무 구렸던 거야, 아니면 이번 성적이 너무 어메이징 한 거야?"


 물어보니 수화기 너머로 멋쩍게 웃는 내 동생. 사실은 나 또한 동생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줄 정도로 원숙한 경험과 경력, 나이를 가진 누나가 아니니. 아무 소리 않고 전화를 끊고 수고했다며 메세지만 날렸다.

충실한 부하 동료로써의 동생과, 단란했던 한때. (1998)

...그래도 이왕 누나로 태어났으니 조금 긴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하다. 직접 말로 하면 재미없어할 얘기니. 적어두고 이다음에 공유할까 한다.




대략 3년 전쯤, 영어 공부가 유난히도 재미있던 시기가 있었다.


 밤늦게 터덜터덜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신발을 휙휙 벗으면서 동시에 혀를 굴리며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이 열렸다. 일만 해서 별 소재가 없던 날이면? 가끔은 '내가 오늘 라멘을 먹었는데 그 라멘이 굉장히 매웠으며...' 식의 거짓말도 섞어냈다. 프리 토킹을 할만한 외국인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전화 영어를 하거나 언어 교환 메일링 플랫폼에서 영어가 모국어인 친구들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해외에 거주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나 2년여간 무려 장거리 연애도 경험했다(!). 평생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그 친구를 만나며 내 세계가 확장되고, 내 삶의 여러 면에 다양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매우 자연스럽게도 나는 동시에 출퇴근 시간을 쪼개 가며 이전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일해 보고 싶은 마음에 주말 아침이면 웹 포트폴리오를 정비하고, 유럽 출장지에서는 현지인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노력하고, 틈틈이 공부하여 어학 성적을 받고, 바라던 해외 기업의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 보는 벅찬 기회도 얻어볼 수 있었다.


 돌이켜 보니 인생이라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정직하게 흘러가는지. 어쩌면 이렇게 노력과 관심이 기울어진 곳에 퀘스트를 클리어하듯 어둠의 장막이 거두어 지곤 하는지. 누군가가 나를 설득해서 시작했더라면 내가 저런 일들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을까? 하고 문득 상상해 본다.


 결론적으로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스스로 디자인 외에도 다학제적으로 지식을 쌓는 기쁨을 알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함의 보람을 알고, 삶의 균형에 대한 중요성을 (a.k.a 워라밸) 고난을 통해서나마 체득했다.


동생을 설득해서 겨우 모시고 간 안식휴가 in Hawaii (2019)


 동생아. 난 주변의 이야기처럼 좀 피곤하게 살았던 것 같아. 회사에선 모든 퓨즈를 내리고 일에만 몰두하던 삶과 무언가를 병행한다는 것은 많이 피곤했어.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한다고는 하지만 며칠 연속 선잠을 자서 머릿속이 하얗게 시린 채로 출근했던 적도 많았고, 마음 속에 여유 한 톨 없어 잔뜩 날이 선 채로 생활했을 때도 있었으니까. 고작 너보다 몇 살밖에 많지 않은데 너에게 어떻게 어떤 삶의 방식을 감히 권유해볼 수 있겠니.


 그래도 나는 '열심히 살아라' 라는 말에는 조금 설명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어. 그냥... 진짜 좋아하면 열심히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좋으면, 좀 피곤하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뭐가 남을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너가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뭐든 응원해볼게.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동생과 누나들, 내년에도 화이팅...!






+PLUS


부족한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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