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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리어스 Mar 03. 2020

국제 연애의 끝은 고요하다

슬플 만큼 빠르게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

2019년 11월 7일 일기.



오늘은 부리나케 일어나 오전 일찍 지방 감리에 다녀왔다. 가을을 탄다며 올해도 센티해진 엄마에게 ‘나는 가을을 타지 않는다’며 떵떵 거리며 말했는데... 지금 보면 나도 엄마와 다를 바 없다.


헤어진 지 한 달 정도 되었나? 정확히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정말 연애를 하기는 한 것인지 의아하기도 하고, 동시에 반대로 너무 지나치게 애틋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비행해서 만나러 갈때 퇴근을 기다리던 오피스 아래층의 스타벅스. 하루에 요거트를 3번 이상 먹은 적도 있었다.


그의 말대로 큰 변화는 없었던 것은 냉정한 사실이었다


서럽게도 크게 싸워본 적도 서로를 관계의 밑바닥까지 속상하게 한 적도 없었는데,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서로가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그러면 평행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길이 좁혀져야 하는데.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노력한 시간들과 고군분투가 있었을 뿐, 어떠한 좁혀짐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고 나는 항상 그것이 필요했다.


반면 한국 땅 위에서, 그를 만나지 않는 95%의 직장 생활은 나를 어느 정도 갈아넣음으로써(?) 점점 안정이 되어 갔다. 그런데도 우리 둘만은 항상 이벤트처럼 즐겁게 만났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곤 하니... 그 간극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현실과 너무나 멀게 느껴져 마음이 뻥 뚫린 듯 괴로워졌다.결국 어느 날 나는 ‘계획이 없는 이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음’을 역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전화를 하면서 결국 헤어지던 날이 왔을 땐, 그는 ‘넌 아니겠지만 나는 너무 갑작스럽다' 고 말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모든 걸 이해하는 것도 같았다.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러면서도 역시나 매달리지도 않았고 한 번 화를 내지도 회유를 하지도 않았다.




얼마 후 한국에 들어와서 예의 있는 맺음을 하는 것은 참 그 사람다웠다. 우리 둘 다 참 열심히 했어. 말해주던 그의 앞에서 나는 ‘모든 게 이제 끝났구나. 이제 마무리가 됐구나’ 하는 이기적인 안도감에 눈물이 조금 고였다.


노력하고 울고 웃던 기억들은 여러 공항에, 길 위에, 공원에, 레스토랑에 남아 있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마지막 그의 말대로 '우리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던 것’은 참 씁쓸하고 냉정한 현실이었다.


떨어져 있던 서로의 삶으로 돌아가고 난 이후, 내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티가 나지 않았다. 그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국제 연애의 끝은 그렇게 허무할 만큼 고요했다.





Happy hour in 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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