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아들과 함께 하는 날들
어느새 아이의 학교생활도 8개월을 꽉 채워가고 있다. 유치원을 너무 가기 싫어한 아이여서 학교에서는 어떨까 우려했지만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급식도 맛있어서 일곱 살 때보다 훨씬 즐겁다는 게 솔직한 아이의 마음이다. 육아 휴직을 한 내 입장에서는 아이가 잘 적응해주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딱 한 가지 지각하는 습관만 빼면.
어린 시절, 나는 지각이나 결석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엄마는 늘 그 부분에서 엄격하셨고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지켜 학교를 갔다. 잘못된 가르침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 부대끼는 감정을 겪었던 나는 솔직히 아이에게 빨리 일어나라고 닦달을 하고 싶지 않았다.
등교를 시작한 첫 주는 마치 우리가 읽었던 학교생활을 소개한 그림책 속 이야기 같이 흘러갔다.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책도 한 권 읽고 학교에 나섰다. 그러나 아이는 더 늦게 잠들고 더 늦게 일어나는 리듬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일찍 일어날 수가 없으니 아침밥을 겨우 먹이고 나면 씻겨서 보내기 바빠졌다. 등교시간이 점차 늦어지기 시작했다.
방학을 거쳐 2학기가 되자 집을 나서는 시간은 더 늦어졌다. 큰소리를 내지 않고 달래고 얼러보았지만 지각을 왜 하면 안 되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아이에겐 소용이 없었다. 8시 50분까지 교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50분이 다 되어서야 교문을 겨우 통과하니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확실한 조치가 필요했다.
한글날 연휴가 끝날 때 아이에게 제안했다. 10.13.(수)~18.(월) 4일간, 19.(화)~22.(금) 4일간, 그리고 25.(월)~29.(금) 5일간 매일 집에서 8시 30분에 나설 수 있으면 요즘 아이가 푹 빠진 포켓몬 카드를 한 단계 성공할 때마다 뽑게 해 주겠다고. 당연히 해야 할 일에 조건을 내세우는 보상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각의 문제를 전혀 생각지 못하는 아이에는 동기부여를 위한 강력한 당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혹시나 며칠하고 실패할 수도 있는데 구제책이 전혀 없으면 실망할까 봐 단계별로 나누고 그 사이에도 작은 보상을 넣어두었다. 물론 보상을 단계별 성공 후 바로 획득할 수 도 있지만 모으면 더 큰 이익이 돌아오는 방식으로 보상체계를 (나름은) 세심하게 설계했다. 합의 후 손 글씨로 계약서까지 쓰고 도전은 시작되었다.
첫날, 32분에 집을 나섰다. 약속한 시간보다 2분 늦었지만 애쓴 아이의 노력이 보여 눈감아주었다. 다음날은 33분, 그다음 날 32분, 1단계의 마지막 날인 지난 월요일은 아슬아슬하게 34분을 찍었다. 35분이 되면 탈락이라고 했기 때문에 아이도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집을 나서면서 몇 시인지 물으며 나름대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결국 23일, 화요일에 일이 터졌다. 전날 많이 피곤했던 것인지 일어나서 한참 미적거리더니 결국 집에서 36분에 나서고 말았다. 1단계를 성공해내면서 아이가 잘 해낼 것으로 믿고 있었던지라 내 실망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럴 마음까지는 없었는데 아이에게 엄하게 꾸중했다. 아이는 나에 대한 마음인지 자신에 대한 마음인지 모를 표정을 눈에 가득 담고 말없이 교문을 통과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보내고 생각했다. 누구나 한 번은 실수하는데... 아니 숱하게 실수를 반복하며 후회하고 또 다짐하며 나가는 게 인생인데... 나는 왜 그렇게 아이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을까? 아이의 아침 일과를 복기하면서 나의 감정 지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갔다. 나의 실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가 거기에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이런 엄마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당시에 느꼈던 당혹감과 답답함이 같이 소환되고는 했다. 평소 엄마의 노고를 잘 알면서도 아이에 대한 걱정스러움을 함께 느꼈다. 같은 감정을 아이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휴직을 하고 일상을 오롯이 부딪혀보니 아이는 나와 많이 닮았지만 내가 아니라는 걸 배워간다. 이미 엄마는 아셨을 것이다.
오후가 되어 교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마음을 먹고 어떻게 운을 떼지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나오자마자 불쑥 말했다.
“엄마, 나 기회 한 번만 더 주면 안 돼? 나도 진짜 노력했단 말이야.”
“으응? 어, 그러자. 우리 한 번 더 시작해 보자.”
멋진 표현도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에겐 화내지 않는 것보다 그 실수로 끝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필요했던 것 아니었을까? 해야 할 일이라는 건, 잘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아이에게도 넘치게 충분했으리라. 아이는 이어서 제안했다.
“엄마, 내가 11월 1일까지 이거 할게. 오늘 하루 실수했으니까.
대신 다 해내면 꼭 약속 지켜주기다?”
잘하고 싶지만 실수하고 마는 그 마음을 속는 셈 치고 다시 믿어보기로 했다. 속는 셈이 여러 번 되다 보면 세 살 버릇이 여든 되는 걸 두려워한 엄마의 마음이 실은 지금 내 마음에 가깝다. 그렇지만 스스로 먼저 실수한 하루를 다시 채우겠다는 그 기특한 마음도 내가 잘 아는 마음이었다. 잘하고 싶은 그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쩌면 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