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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Oct 26. 2021

폰이 뭐길래?

스마트폰에 홀린 남편을 원망하고 사랑하는 마음

늘 시작은 스마트폰 때문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보는 것은 실로 다양했다. 유튜브 먹방부터 드라마, 각종 스포츠 경기, 포털 뉴스까지... 그는 늘 그 작은 네모 기계 속의 사람과 세상일에 관심이 많았다. 잠깐의 필수적인 생활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순간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연애시절부터 밥을 먹으면서 대화 대신 폰을 보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표현한 적이 있었지만 그렇게 자라온 사람이었다. 식탁에서 대화 없이 밥 먹는 기능만 오래도록 경험해 온 사람. 그런 그는 잠시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 화기애애하지는 않아도 식탁에서 늘 대화를 나누며 살아온 나는 답답했지만 새로운 삶에 서서히 적응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남편에게 부탁 아닌 애원을 했다. 영상기기보다는 책을 더 많이 읽고, 대화를 나누는 아이와의 관계를 원했다. 그는 분명 아이 앞에서는 폰을 들지 않으려고 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가 잠들면 오래 참았다는 듯 폰부터 드는 남편에게 서운했지만 그의 노력을 알기에 별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점점 대화가 없는 것이 익숙한 사이가 되어갔다.


해외파견을 다녀온 뒤부터 그는 다시 초기화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무료함을 달래는 습관이 몸에 박힌 것인지 그는 시간만 나면 오로지 폰만 봤다. 중독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가족들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에 눈치도 관심도 기울일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그의 관심과 호기심은 오로지 그 작은 네모난 기계 속에 있었고 나는 배신감과 좌절감, 무기력함과 분노까지 넘나드는 여러 감정의 스펙트럼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폰을 들고 있는 아빠의 모습에 익숙해져 가는 일이 싫었다. 가족 모두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도 폰에 쏟는 열정과 관심을 여기로 조금만 나눠주면 좋을 법한데 그렇지 못한 남편에게 자꾸 야속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도 나이가 들었고 아이도 우리의 손길이 예전처럼 필요하지 않은 나이로 자라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난 5년의 간극을 메우려 애쓰지 않는 그에게 서운했다.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커서 혼자 잘 지낼 수 있게 되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하면서도 이제 아이가 우리를 찾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부모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신경을 써 주면 좋겠다고 말 좋게 말도 해 보고 화도 내보았지만 그때뿐 그의 시선과 관심은 다시 폰의 세상으로 돌아갔다. 마치 어떤 강력한 마법에 사로잡혀 어쩔 수 없이 그 작은 기계에 온 에너지를 다 뻬앗기고 있는 듯했다.


급기야 답답한 마음에 얼마 전에는 휴대폰에 빠진 아빠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썼다. 작가님은 합평에서 이런 글은 잔소리 글이기 때문에 의도가 뻔해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했다. 아주 잘 써도 어느 부모가 마음 불편해서 돈 주고 사겠냐고... 매우 필요한 메시지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주제라 계속 진행하기보다는 다른 주제에 더 공을 들여보면 어떻겠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쳇, 내가 진짜 기똥찬 이야기를 써서 남편에게 딱 하고 들이밀어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게 하고야 말 테닷!' 합평을 마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결국 남편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꼼수에 불과한 것을, 잘 써낸다고 한들 그가 읽을 것이며 읽는다고 바뀔까? 그저 나의 바람일 뿐 그는 하던 데로 하고 살던 데로 살 것이 분명하다.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오히려 반작용이 일어나 더 하려고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 그는 하고 싶은데로 당분가 내버려 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부처도 하느님도 아니고 그저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 이런 마음을 다스리는 일조차 버거운 요즘이다. 폰이야? 나야? 따져 묻고픈 마음을 겨우 달래 정리해 보지만  결심은  며칠이나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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