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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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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Nov 09. 2021

상처가 아물더라도 아픔에 공감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길

손절을 모르는 천진한 아이의 마음이 오래가기를 바라며

아이가 만들기 숙제를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티타늄 가윗날이 예리해서 피가 꽤 났다. 아리기도 했겠지만 빨간 피가 쏟아지자 패닉이 된 아이가 내게로 쫓아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초보 엄마 시절에는 내가 더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젠 안다. 이럴 때 흥분하면 아이가 더 불안해하기 때문에 최대한 침착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약상자를 열어 솜을 꺼내고 꼭 눌러 지혈부터 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는지 아이가 울상을 지었지만 어느새 울음은 멈췄고 흥분도 한층 가라앉아 있었다. 여유가 생겼는지 손을 감싼 솜을 제가 누르겠다고 했다. 그 사이 연고와 밴드를 꺼내 피가 멎은 것을 확인한 뒤 상처 부위에 약을 바르고 정성스레 둘러주었다. 제법 베어서 한동안 꽤 아릴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금세 나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아이는 다친 손으로는 숙제를 못하니 나머지 것들은 내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다친 손은 실은 왼손이고 아이는 오른손잡이라 가위질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러마고 했다. 지금은 아무래도 가위질이 무서울 테니까. 남은 음식 그림들을 테두리선을 따라 잘랐다. 아이가 먼저 붙여 놓은 것을 보니 흰 면이 보이지 않게 깔끔하게도 오려두었다.     


자기 대신 가위질을 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이는 말했다.

“엄마, 근데 안중근 의사 정말 아팠겠다.”

손가락만 베어도 이렇게 아픈데 손가락을 기꺼이 자른 안중근 의사는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아이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나 보다.     


“그러네. 정말 아팠겠다.” 맞장구를 치다가 문득 아이의 마음이 괜찮은지 궁금해졌다. 지난주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서 간식을 챙겨주니 아이가 다짜고짜 말을 꺼냈다.

“엄마, J랑 S가 이제 나랑 안 논다고 해서 오늘 나 울었어.”

J는 아이와 자주 어울려 노는 같은 반 친구고 S는 얼마 전부터 놀자고 연락이 오는 친구다.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그냥 나랑 안 논대.

 그래서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다고 사과하라고 했는데 사과도 안 했어.”

도대체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놀이터에서 J가 아이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늘 오후면 걸려오던 전화도 뜸하다. 놀다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고 마음대로 놀이의 규칙을 바꾸는 데다가 친구에게 기분 나쁜 별명을 지어 부르고 아이들 사이에 은근한 편을 가르는 걸 습관적으로 하는 친구였는데 막상 내 아이가 그 대상이 되고 보니 내 속에 천불이 났다.     


“우리 아들, 속 많이 상했겠다. 그럼 당분간 다른 친구들이랑 노는 건 어때?”

“그래도 나는 J랑 놀고 싶단 말이야.”

아이를 거칠게 대하는 J를 오래도록 눈여겨보며 몇 번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지만 이번 기회에 서서히 멀어지는 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우리 아이는 생각이 다른가 보다.      


아이는 나와 확실히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관계가 불편해지면 괴로워하면서 끊을 수 없는 경우라면 끌려가지만 가능하면 손절하는 편으로 살아왔는데 아이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속상하지만 솔직하게 다시 상대에게 부딪히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다. 지금 문제가 된 아이 같은 경우도 여러 차례 언짢은 일이 있었음에도 ‘걔의 성격이니까.’라며 생각보다 쿨하게 넘겼다.     


얼마 전 그 친구가 놀이터에 아무렇게나 핸드폰을 던져두고 놀러 나간 사이, 큰 학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친구 핸드폰이 밟힐까 봐 걱정한 우리 아이가 잠시 들고 있은 적이 있었는데, J는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우리 아이에게 “야, 너 왜 남의 핸드폰에 마음대로 손을 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아이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나머지 우리 아이는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그 상황을 보던 나는 J를 불러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단호하게 말을 해주었다. 듣기 싫은 말을 하자 내 눈을 피하고 딴짓을 기에 이름을 부르며 일부러 눈을 마주치고 의사를 전했다. 선도 넘지 않은 상식선의 이야기였지만 어린아이에게 어른이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건가 싶은 내면적인 고민도 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의 친구고 이웃의 아이기에 가르칠 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전혀 알아들은 것 같지 않다. 지금도 그 친구는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자기가 필요할 때는 나를 찾아오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보고도 인사 없이 지나갈 때가 많다. 얼마 전에는 바로 옆에 내가 있는데도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1학년이라기에 믿기 힘든 욕설을 수시로 내뱉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내 아이를 J로부터 가능한 한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아직도 관계는 나의 큰 숙제다. 하지만 한정된 경험 속에서 나와 결이 맞고 아닌 사람을 구별해내는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아무리 봐도 맞지 않는 그 아이를 우리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계속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쩔쩔매는 기색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게 보기엔 아슬아슬한 적도 있다. 상냥한 친구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려줘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천봉쇄가 답일까?     


자신의 손을 다치고 안중근의 마음을 헤아리는 우리 아이도 종종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있다. 어떨 땐 J의 선동에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 다른 친구의 속상한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철없는 면도 보인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J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 중인 아이의 선택을 막는 것이 긴 관점에서 옳은 것인지 나로서는 참 판단하기 어렵다. 도리어 배제와 손절을 가르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된다.

    

이미 그런 친구를 곁에 여러 차례 둬본 엄마는 그 관계가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을 안다. 아마도 내 아이의 믿음은 좋은 성격이라기보다 무지, 즉 나쁜 관계를 아직 경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언제까지고 좋은 관계만 경험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급적 결이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해 주고 싶은 나는 J와 잘 지내보겠다는 마음을 설득해 보지만 아이 스스로 선택한 방식에 일방적으로 개입하는 일을 오늘도 고민한다.


아침에도 아이는 학교 가는 길에 오후의 놀이터를 꿈꿨다. 다행히 아직은 남의 아픔을 상상하고 공감할 줄 아는 아이는 누군가를 함부로 배제하지 않는다. 다 같이 어울려 놀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기에 상대방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런 아이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어떤 점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강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잘해 나갈 것 같은 믿음도 든다.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대하는 천진한 마음이 나쁜 관계를 만나 상처를 입더라도 오래 유지되면 좋겠다. 언젠가 아이도 서서히 깨닫게  것이다.  마음 같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그러나  손의 상처가 아물더라도 부디 손절과 배제보다는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아이오래 해나가 좋겠다. 아직은 가슴 가득 그런 희망을 품고 오후를 기다리는 아이를 마음 다해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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