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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Oct 03. 2022

엄마는 행복 수집가

사소함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

엄마에게 새로 산 바지의 바짓단을 줄여달라고 부탁한 저녁이었다.

바느질에 열중하느라 살짝 굽은 엄마의 등 뒤에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있었다.

한창 작업에 집중하던 엄마가 갑자기 두꺼운 돋보기를 코 끝에 걸친 채로 방바닥 이곳저곳을 연신 더듬거리며 쪽가위를 찾기 시작했다.

"아이고, 가위가 어딨다냐." 허공에 한탄스러운 엄마의 외침이 짧게 긋고 지나갔다.

그러다 이내 쪽가위를 찾은 엄마가 바느질을 마저 완성하며 말했다.

"오메, 찾았다! 눈이 보이니까 얼마나 좋냐. 눈이 보배다 야~."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늘 감탄을 했다.

10월엔 황금색으로 빛나는 금목서의 향기가 좋다고 감탄했고,

산책길 끝에 허름한 벤치에 앉아 듣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꼭 풀벌레 합창단 같다며 감탄했고,

벚꽃이 한창인 길을 걸을 땐 꽃을 보러 온 인파들을 보며 꼭 사람들이 벌떼 같다며 까르르 웃었다.

매사 감탄을 잘하는 엄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몇 겹이 더 풍성했다.


행복한 사람은 계절이 변하는 걸 생생하게 느낀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사소한 순간에서도 행복의 조각을 수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크나보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웃음을 터뜨리고,

깨진 시멘트나 벌어진 아스팔트 틈 사이에 피어난 꽃의 이름을 알고 있는 엄마.


엄마의 살짝 휜 등 뒤에서 행복을 줍는 법을 배웠던 어느 저녁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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