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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눈보 Jun 04. 2023

이미 하고 있어요, 괜찮은 태도.

[서평] 참 괜찮은 태도 <박지현>

  나의 흐릿한 기억 속엔 2000년대 초중반 즈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나 소설들이 매체에 자주 등장했던 걸로 기억한다. 소설 '연탄길'이 베스트셀러였고, 방과 후 TV를 틀면 따뜻한 성우의 내레이션 뒤로 우리네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각색한 동화를 방영해주곤 했다.

  '참 괜찮은 태도'는 그 시절 느꼈던 푸근하고 고요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를 쉬이 높일 수 있었던 이야기들. 더 세고 더 큰 자극에 오감을 열어놓고 좇는 일상 속에서 한 템포 쉬게 만들어주는 에세이집이다. 유퀴즈 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 박지현 작가가 이제껏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에 초대되어 관찰자로 인터뷰하며 배웠던 괜찮은 태도, 삶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을 공유해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들이 인상 깊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생각을 끄집어 올려준 <무례한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이라는 에피에서 다룬 김영하 작가의 말이 인상 깊다.

‘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는 말이 있다. 나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과 달리 집집마다 차가 있지 않았고, 골목은 비어 있고, 돈은 거의 아버지 혼자 벌고, 자식들은 별걱정 없이 구슬치기하고, 대학 나오면 쉽게 취업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그러므로 청년들에게 “나도 마찬가지고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이래라저래라 함부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청년들도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한 직장에서 벌써 11년 차가 되어버린 내가 어느덧 10살 이상 차이나는 후배들과 일을 하게 되며 취해야 할 태도를 재정립하게 되는 상황이 자주 생긴다. 직장을 대하는 태도도, 생각도, 범주도 확연히 '우리 때'와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주변에서는 '요즘 MZ란 말이야~'라는 말로 간단히 그들을 획일화시키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라떼는 말이야~'라며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묘하게 압박감을 주는 방식과는 결이 다른, 'MZ'라는 단어는 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일축시키는 마법의 단어다.

  언젠가 예능에서 가수 양희은이 첫 차를 뽑고 '초보운전' 대신 '당신도 초보였다'라는 문구를 써붙이고 다녔다는 일화가 인상 깊었다. 맞다. 당신도 초보였다. 모두 초보인 시절이 있었다. 그들도 초보 시절을 관통하는 중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언제든 '처음'을 쉽게 맞이한다.

  사회생활에서 상식적으로 통용(경계가 모호하지만)되는 범주안에 들어오기까지는 분명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잘 모르고 미숙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도 'MZ'라는 용어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어 버린다면 다양함을 받아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영영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다. 나와 다른 문화를 접하고 성장해 온 신인류인 그들은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모국어를 나누는 외국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친구들을 보며 나의 초보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나 또한 신규자 시절에는 '요즘애들이란~'소리를 들을 법한 행동을 많이 했었고, 지금도 내 선배들에게는 그렇게 비추어지겠지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에 대한 자아(?)가 형성되기 전에 기성세대들로부터 굳이 귀담아들을 필요 없는 껍데기 같은 철학들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땐 그것이 진실인양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었는데... 시간이 점점 흐르며 나만의 경험이 만들어낸 거름망이 그런 껍데기들은 말끔하게 걸러낸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이 고민을 이야기할 땐 괜스레 해결책이랍시고 나의 편협한 사고를 해답인양 들이밀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늘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무의식이 내뱉는 껍데기 철학 폭격을 나의 후배들도 맞지 않았을까라는 진지한 고민을 3초 정도 해본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가 하는 "그 말을 새겨듣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힘을 싣고 싶다. 덧붙여 힘이 없기에 당하는 부당한 일에 크게 좌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나의 후배들도.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음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인생의 파고속에서 쓰러지고 다치기를 반복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들. 혹자의 거창해 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태도결국 소소하게 꿰어지는 평범한 너와 나의 일상과 맥을 나란히 하는 것이므로, 견뎌내는 삶 자체로 응원받아 마땅한 태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참 괜찮은 태도'는 우리 모두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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