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괄호치고 : 살아온 자잘한 흔적(저, 박주영)
[법정의 얼굴들]을 완독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주영판사의 신간도서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구매 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 [괄호 치고]
읽는 동안 까맣고 엄중한 법복을 벗고 퇴근 후 맥주 한 캔에 건조한 노가리를 뜯으며 오늘 하루를 복기하는 박주영 판사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법정의 얼굴들]은 본업을 하는 박주영 판사의 깊은 고뇌를 착즙 한 글이었다면, [괄호 치고]는 인간 박주영 작가가 괄호 속에 담아두고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을 알알이 엮어 정갈하게 꾸려낸 산문집처럼 다가왔다.
법정은 고통의 경연장이다. 기일마다 절박한 한숨과 눈물 속에 재판이 열린다. 법정의 풍경을 묘사해 보라고 하면 비탄에 잠긴 사람들 말고는 그릴 게 없다.
법정에서 자신의 고통을 검증받아야 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지친다. 가능한 모든 증거를 긁어모아 피해와 가해의 무게에 추를 달아 많은 사람들 앞에 전시하는 행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무게에 추를 달아 저울질해야만 하는 법정의 최전선에 있는 직업을 가진 이들은 매 기일마다 엄청난 피로도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봐야 하는 직업이라면 그 얼굴들이 때로는 익숙함 속에서 무뎌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박주영 판사는 인간에 대한 사랑, 희망, 정의, 연대와 같은 신념을 꼭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두 발은 냉혹한 현실을 걷지만, 머리로는 늘 그들의 고통이 익숙함으로 치환되지 않도록 이상을 향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이 악하면 망해야 한다. 실패의 원인이 사람이 좋아서라는 말은 정말 듣기 싫다. 선이 약점인 양, 선한 사람을 밟고 올라서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 싫다. 선한 사람이 이기고 성공해야 한다. 고리타분하게 언제 적 권선징악이냐고 비웃어도 하는 수 없다. 나는 악이 이기는 30세기에는 살고 싶지 않다.
나도 꽤나 낭만적인 구석이 있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착하게 살았더니 복을 받았더라', '나쁜 짓 하고 살더니만 말년이 고생이다.'와 같은 선함이 악함을 이기는 반전드라마 같은 결말. 하지만 내가 38개만큼 밖에 못살아 그런지 세상은 선함과 악함보다는 힘이 누가 더 세냐, 어떤 집단이 쪽수가 더 많냐로 승패가 결정되는 결말을 자주 목도한다. 선한 쪽이 쪽수가 늘어나면 낭만적인 결과가 많아질까? 박주영 판사의 생각을 주욱 읽어 나가는 동안 느낀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의 가장 연약한 구석에 맞닿는 한 문장이 있다면, 적어도 나쁜 짓을 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라고.
거의 다 온 세계는 없다. 거의 다 온 목표도 없다. 삶은 등산이 아니다. 정상이 아니라 과정이 곧 목표다. 삶은 올모스트 데어가 아니라 매 순간이 도착이다. 그렇기에 바른 길에 서 있어야 한다. 삶의 방향이 올바르면, 나는 매 순간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