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이재 May 29. 2021

책 출간 후, 나에게 일어난 변화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출간하고 6개월이 훌쩍 지났다. 브런치에 출판 후 아무런 글도 올리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는데 어떤 글도 올리기 어려웠다. 책을 내는 것이, 작가가 되는 것이 예전보다 쉬워졌다고 생각해서 들뜨지 않으려고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소재 자체가 특별한 것이고 스스로 전문작가의 필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 생각하여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예상은 했지만 책을 출판 하고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상은 똑같이 이어졌다. 출간일에도 지금도 여전히 회사에 출근한다. 가까운 지인들을 제외하고 아무도 나의 출판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도 여전히 보고서를 쓸 때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아니고 엄청난 돈을 번 것도 유명해지지도 않았기에 특별히 들킬 일도 없었다.


할머니와의 이야기를 쓰며 나는 윤이재라는 부캐를 만들었다. 아픈 가족의 간병경험과 가부장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사회적인 자아는 숨기는 것이 더 편했다. 그렇게 더 솔직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본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부캐 윤이재는 본캐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했다.

언론사와 돌봄노동과 인지저하증(치매)간병을 주제로 인터뷰도 하고, 라디오에 출연해서 돌봄경험을 말하기도 했다. (사실 너무 떨려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아흔의 노인을 간병한 스물다섯의 젊은이가 가부장제의 불합리함과 관습에 분노했다는 기사에 달린 악플을 보기도 했다. 수준 낮은 저급한 악플을 보면 화가 아니라 어이와 웃음이 나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신고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책읽아웃 팟캐스트에 내가 쓴 글이 소개가 되기도, 나의 책이 다른 이의 손을 거쳐 2차 저작물이 되는 경험도 했다.(아직 정식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유명하다는 도서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무려 중쇄를! 찍기도 했다. 가끔 <아흔살 슈퍼우먼을 지키고 있습니다>를 네이버나 인스타에 검색해 보는데, 판매권수나 바이럴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전혀 기대하지 않던 소식인데 중쇄를 찍게 되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초판과 중쇄의 부수를 합쳐 최소 몇 천명이 되는 사람들에게 할머니와의 이야기가 가 닿았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남다르다.


부모님께는 겨울이 지나갈 때 겨우 책의 출간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까지 늦게 얘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혹여나 책에 담긴 나의 생각이 마음에 생채기를 낼까 조심스러웠다. 나름 용기를 갖고 엄마에게 말하니 놀람과 감격이 뒤섞인 반응이었고, 출간 후 몇 달이 지나서야 말한 것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하셨다. 그리고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자랑스러워 했고, 눈물을 내내 흘리며 몇 시간만에 책을 완독했다. 눈이 침침하다며 책 읽는 것을 싫어하던 아빠는 잘 쓰지도 않던 돋보기를 끼고 쉬지도 않고 밤새 완독을 했다.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형제에게 나의 출간 소식을 전했다.


아빠는 엄마와 나에게 할머니를 이렇게 잘 돌봐주어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고, 당신의 엄마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 주어 또 고맙다고 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부럽다고 했다. 엄마의 엄마(나의 외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를 세상에 남기지 못했는데, 할머니는 내 덕에 평생 활자로 세상 사람들에게 기억될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는 책과 나를 동네방네 자랑하고 선물하기 시작했는데, 선물한 지인이 '어머 이 책이 딸이 쓴거예요? 이미 읽었는데!'라는 짜릿한 경험도 하셨다. (이건 나도 아직 못했는데)


다행히 할머니 기일 전에 책이 나와, 책을 들고 엄마랑 호국원에 갈 수 있었다. 호국원에는 보관할 수 있는 장소는 따로 마련되지 않아서 그냥 보여드리고 왔다. 할머니가 좋아하셨을까, 부끄러워하셨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가명을 고민하다가 만든 이름의 윤이재에는 할머니 이름이 같이 담겨있다. 할머니가 나랑 같이 쓴 책인데 할머니는 아실까? 꼭 아셨으면 좋겠다.


벌써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1년이 훌쩍 지났다. 고백하자면 노인과 인지저하증(치매), 가족과 죽음과 관련된 미디어가 나오면 피한다. 오히려 예전에는 정보습득을 목적으로 열심히 봤는데, 지금은 눈물버튼이 되어  보지 못한다. 연재 중에 열심히 보았던 웹툰 <나빌레라> 드라마화 된다는 소식을 듣고  봐야지 했는데, 예고편조차 틀지 못하고.. '치매', '노인', '요양' 같은 키워드로 나오는 뉴스 기사는 못본 채하고 넘겨버리거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하고 겨우 클릭한다.


그러나 더이상 인지저하증(치매), 돌봄노동, 가부장제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한 사건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사건이라고 생각도 못할만큼 일상이었는데.. 지금은 지나치게 평온하다. 그럼에도 평온하지 않았던 일상을 지나온 것이 감사하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더라면, 취업과 동시에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수밖에 없더라면이라는 의미없는 가정을 해본다. 나름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정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남들처럼 무사히 대학을 마치고 취업을 하고.. 모든 것을 나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시야가 얼마나 좁을까.

나의 지독한 평범함이 사실  시절을 오롯이 살아낸 분들의 인내로 만들어낸 수혜였음을 모른  나는 멀리서 지켜만 보았을 것이다. 주간병인이 아닌 가끔 와서 돌보는 보조 간병인으로서,  그만큼의 거리에서 보고 느끼고 함께했을 것이다. 평온하지 않은 일상이, 지금은 사건이라고 말할 만한 일들이 나의 하루를 채웠기에 당사자가 되어 발견하고 공감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사랑하며 기록할  있었다.


윤이재는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기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이 시대에 경험을 말하고 전달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가치있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 말이다. 그렇게 당사자의 이야기를 하던 부캐 윤이재는 이제 모든 세상에 예민해졌다. 그저 운이 좋아 겪지 않았던 '남의' 이야기를 어쩌다 일어날 수 있는 그 사람만의 불행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아닌 일에 같이 분노하고 슬퍼할 수 있는 공감능력이 나에게 필요함을 안다.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윤이재라는 부캐를 만든 김에 불편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공유하는 경험을 지속하려 한다. 다소 거창한? 이 포부가 사실 오랜만에 근황을 적는 이유다. 나의 게으름으로 매우 간헐적일 예정이지만..


2주 전 다다서재 출판사에게서 받았던 중쇄를 이제야 뜯어보며, 나를 응원한다는 익명의 블로거들의 진심어린 서평을 보며 갑자기 이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살아지는대로 살아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생각을 시대에 전달하다 보면 그렇게 살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이렇게 다시 외쳐보고도 싶었고.

무튼 책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성 가득한 독후감과 응원의 메시지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좀 더 자주 브런치에 글을 써 보겠습니다. .. 어떤 글로 찾아올 지는 나도 모르지만요.



+ 혹시 아직도 책을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사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볼만한 책이에요. (뻔뻔)


작가의 이전글 "다시 만나면, 학교 가자 할머니!" 인터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