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지 않은 사람이 빛나는 세상이 열리고 있다.
<나혼자산다>에서 화려한 게스트보다 수더분한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이 각광받고, 작은 디테일에 환호하는 현상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또한 속임수로 느껴진다. 일상처럼 보이는 그것도 카메라 세팅이 있기에 가능하다. "슛이 들어가는 건" 같은데 오히려 자연스러워보이기까지 해야 하니, 빛나지 않은게 아니다. 꾸미지만 "안꾸민 것처럼 보이는" 또다른 기만 아닌가 싶다.
영화 <빅토리>는 세기말 99년을 담은 이야기다.
현재의 시선에서 90년대를 재해석한다.
90년대 한국은 그 어떤 때보다 빛나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라가 쫄딱 망할지도 모른다는 어려움은 박찬호, 박세리 신화를 만들며, 우리도 저렇게 노력하면 이길 수 있다고 외쳤던 때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가 열리며 대기업의 힘이 커지기 시작했고, 작지만 강한 사람들이 소리 없이 사라졌던 때다.
21세기가 열리자마자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며 쏟아지는 스타들에 환호했다. 거기에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열리며 대작들이 쏟아졌다. (이때 배우들이 지금도 스크린과 텔레비전을 장악한다.)
빅토리는 내가 주인공, 아이돌이 되고 싶던 주인공 추필선이 학교 축구부를 응원하는 치어리딩을 하며 겪는 변화를 담은 영화다. 영화의 내용보단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다는 메시지가 꽤 울림있게 다가온다. 90년대 오브제들도 효과적으로 배치했다. 다만 캐릭터의 활용, 관계성이 치밀하지 못하고, 효율적이지 않은 장면들도 있다. 덜어내는 작업을 했더라면 어땠을까의 아쉬움이 남지만, 울림만큼은 새로웠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의 빅토리를 넘어서 타인의 삶을 응원하고 기도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 역시 자기만족이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지라도 한 발자국만 그의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음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것만으로 이 영화는 나에게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