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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Mar 31. 2021

일하다말고 듣던 음악 때문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

무한궤도와 샤프, 그리고 이제 우리 곁을 떠나간 음악가들

  종종 오래된 명곡은, 무뎌진 내 마음을 뒤흔들곤 한다.




  평소처럼 집에서 한참 일에 몰두하던 날이었다. 하품이 나오는 김에 잠시 기지개를 쭈욱 다. 오랫동안 같은 자세로 굳어있던 관절과 근육들이 마치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시간 앉아서 일하는 와중에 짬짬이 10분 정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건 프리랜서 재택업무의 특권이자 활력소다. 하지만 이 날 만큼은 영상을 잘못 고른 듯했다. 도저히 10분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알고리즘이 선택해준 유튜브 메인 화면에 떠있는 한 오래된 영상. 무려 내가 태어나기 전의 MBC 대학가요제였다. 분명히 눈에 익은 노래 제목.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 저절로 손이 움직였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범상치 않은 기타 프레이즈로 시작하는, 너무나도 세련되고 노래였다. 서슬 퍼랬던 1980년도에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이렇게 수준 높은 음악을 직만들고 연주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댓글들을 살펴보다가 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작사 작곡을 맡은 최명섭 씨는 이 노래를 겨우 19살일 때 작곡했다고 다. 세월이 가면을 작사, 작곡, 노래한 최명섭, 최귀섭, 최호섭 3형제 중의 바로 그분이다.


  1960년대에 태어난 이분들을 보니, 그들과 같은 연배인 64년생 가수 김광석이 떠올랐다. 일찍 세상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이들 모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텐데. 갑자기 우리 곁을 일찍 떠나간 뮤지션들이 뇌리에 계속 떠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일은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차례로 음악을 찾아서 듣기 시작했다.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 그리고 마왕 신해철. 아, 그러고 보니 그도 대학가요제 출신이었지...! 무한궤도의 신해철이 스무 살의 앳된 얼굴로 그대에게를 목청껏 부르는 모습을 보자, 조금씩 고였던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그의 모습이 너무 그리워서...



  어렸을 때 무엇에라도 홀린 듯이 015B와 N.EX.T의 음악을 오랫동안 들으면서 자랐다. 신해철이 누군지도 몰랐고, 015B가 무(0), 한(1), 궤도(Orbit)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 채로, 그저 유희열의 라디오천국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제목을 기억해두었다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곤 했다.


  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무한궤도의 다섯 명문대생들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그중 두 명은 원래 재벌가 자제였고, 다른 한 명은 치과의사가 되었고, 나머지 두 명은 벌써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뜨거웠던 시대는 이제 지나가버렸다.


  생전에 거침없는 발언으로 항상 다양한 논란을 몰고 다녔던 신해철은 음악 하나만큼에는 정말로 충실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임에도 기꺼이 마왕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녔던 그 사람 자체에 해서 나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그가 남긴 음악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음악가로서 이보다 더 확실한 성공의 척도가 어디 있을까.




  화장실에 가서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세수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바로 이게 음악인들의 진심이 전해지는 순간인 거구나. 그리움은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 한 바가지를 쏟을 정도의 그리움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사실이,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음악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전히 내 마음을 울리는 유재하, 김광석, 김현식, 서지원, 듀스 김성재, 터틀맨 임성훈, 그리고 신해철...


  그날은 휴식 시간이 좀 길어져 버렸다. 아무렴 어떤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는 이미 새까맣게 잊고 말았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하던 번역일을 계속했다. 창밖에 조용히 봄비가 내리고 있던, 어느 봄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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