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나 늦게 열렸음에도 전혀 준비가 안 된 모습을 보이며 역대 최악의 개막식까지 선보인 2020 도쿄 올림픽. 여전히 선수촌 내부에서 계속해서 코로나 확진자가 생기고 각종 스캔들이 연이어 벌어지는 도쿄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7년 전의 브라질 월드컵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4년에 한 번씩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브라질은 전국이 축제 분위기에 빠져든다. 은행과 관공서들도 브라질 대표팀의 경기시간에는 공식적으로 잠시 영업을 중단하고 전직원들이 TV 앞에모여서 응원할 정도다. 확실히 전 세계인들의 축구 사랑이 모든 TV 시청률을 점령하는 시기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과연 2022카타르 월드컵의 분위기도 예전과 같을 수 있을까?
월드컵처럼 화려한 스포츠 축제를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는지를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사실 스포츠경기의 승패는 (치킨집이나 호프집 사장님들을 제외하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회를 열기 위해 어디서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와서 어떻게 썼는지의 여부는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브라질에서는 약 2600억 원의 거금을 들여 건설한 꾸이아바 시의 '아레나 빤따나우'를 비롯한 수많은 월드클래스 신축 경기장들이 월드컵이 끝난 뒤에 폐쇄되거나 방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애초에 FIFA는 브라질에 10개의 경기장을 확보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브라질월드컵 준비위원회에서는 굳이 12개를 만들겠다고 우겼다. 그래서 그중 6개는 신축을 강행했고, 나머지 6개는 거의 재건축에 버금가는 리모델링을 거쳤다. 화려한 구장 건설과 인프라 구축, 각종 마케팅 비용 등을 합한 총 개최비용은 12조원에 달했다. 2006 독일 월드컵 개최비용의 3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지출은 대부분 브라질 국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화려한 축구전용 스타디움들은 지역연고 구단들의 홈구장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현재 제대로 사용되거나 관리받고 있는 곳은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치앙스' 단 한 곳을 제외하면 전혀 없다. 이는 사실 브라질 국내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월드컵이 열리기 수 년 전부터 예견해왔던 아주 정직한(?) 결과다. 브라질은 교육, 문화, 보건복지 분야에 투입되는 예산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남미 최대 경제대국에게도 12조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브라질 정부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고작 1달이면 끝나버릴 스포츠 행사 하나에 이처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은 것일까?
브라질에서 공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물론 한국도 그닥 별반 다르진 않지만, 횡령의 스케일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공직자들을눈에 안 띄는 곳에서 조금씩곳간을 갉아먹는 쥐에 비유하는데 비해, 브라질에서는 거침없이 신나게 먹어치우는 돼지에 비견한다. 축구경기장 건설을 예로 들어서 브라질에서 어떻게 세금이 줄줄 새어나가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스타디움을 건설할 예산이 집행되고 나면, 세금 약탈을 위한 온갖 방법이 총동원된다. 시공사가 하청의 하청을 거쳐 건축자재 구매처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그 중 수십 퍼센트는 중간에서 리베이트 형태로 사라지기 일쑤다. 일례로,자재 구매에 100만 헤알이 배정됐다면 실제로 구매에 사용되는 금액은 70만 헤알 정도에 불과하다. 당연히 고급 자재보다는 저렴한 대체재를 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마저도 물류가 원활하지 않아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목재가 먼저 도착했는데 시멘트와 철근이 제때 오지 못하면 목재는 현장에 방치된다. 몇 주가 지나 다른 자재가 도착할때 쯤이면 이미 목재는 반쯤 상해있다. 그럼 다시 목재 일부를 재발주하고, 이번엔 추가 목재가 도착할때까지 다른 자재들이 방치된다. 이윽고 목재가 추가로 도착하면 이번엔 철근이 녹슬어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이렇게 자재를 기다리며 작업이 지체되는 동안에도, 현장에 동원된 인부들의 인건비는 하염없이 빠져나간다. 물론 그 돈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게 아니라, 인력사무소의 커넥션들이 챙겨서 나눠먹는다. 공사 중에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도, 공사기간이 아무리 늘어나도, 그래서 얼마를 더 지출하더라도 공사는 강행된다. 왜냐하면 공적자금은 화수분처럼 계속 끌어다 쓸 수 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브라질 월드컵 경기장 건설비용은 예정된 예산보다 66%나 초과하여 소모되었다. 감사에 따르면, 원래 53억 헤알로 예정된 경기장 건설비용은 최종적으로 89억 헤알이 지출되었다. 특히 상파울루에 새로 지어진 아레나 코린치앙스의 경우에는 공사 도중에 114미터 높이의 초대형 크레인이 스타디움 위로 전복되는 대참사가 발생하면서, 원래 계획보다 2.4배나 더 많은 비용을 소모했다. 작업자 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고를 일으킨 시공사는 한때 룰라 전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냈었던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바로 그 건설사, 오데브레시(Odebrecht)였다.
이렇게 되면 국가적으로 경제적인 이익이라 부를만한게 거의 없다. 각종 교통항만 인프라 구축과 치안 개선 활동이 기대 이하로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세금이 중간 단계에서 말 그대로 "증발"하면서, 브라질 국민들에게 피부로 느껴질만한 이득은 최소화 되어버렸다. 막대한 예산이 대거 투입된 교통 인프라 개선 프로젝트들의 진행률은 월드컵 개막일까지도 겨우 3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진행 속도가 지지부진했다. 다행히 월드컵 행사는 무사히 치렀지만, 곳곳이 공사판 투성이인 공항, 도로, 시내의 모습은 브라질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정리하자면, 12조원이 넘게 쏟아부은 국가 예산 중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혜택으로 되돌아간 부분은 아주 미미하다. 월드컵 폐막 뒤에 남겨진 건 이제는 내팽개쳐져서 폐허가 되어버린 초대형 스타디움들, 여전히 공사 중인 도로와 항만시설, 우승을 노렸지만 겨우 4위로 마무리된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최종 성적, 그리고 수십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국가 부채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인 2013년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꾸준히 국가부채 규모를 줄여왔던 노동자당(PT) 정부에게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브라질 경제는 엄청난 침체의 늪에 빠졌고 이는 곧 GDP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처참한 결과로 나타났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 개최를 통해서 내수 시장, 부동산 시장 및 해외투자의 활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라 열심히 부르짖었지만, 이는 결국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민심을 잃은 지우마 호세피 전 대통령은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월드컵 개막 직전에 탄핵당했다. 그리고 2003년부터 장장 16년간 장기집권해왔던 노동자당은 결국 2018년 대통령 선거에서 대표적인 극우인사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완패했다.
당연히 수십조원의 세금이 투자되는 국가기반산업은 그 자체로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며 (이론상으로는) 직접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 하지만 4대강 사업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이 돈들은 결국 실질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소수의 기업인, 공무원, 정치인들의 주머니로 빨려들어갔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은 소모적인 국론 분열과 정부 지지율 폭락, 그리고 정치적 불안정을 가져왔다. 만일 브라질이 통산 여섯번째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을 경우에는 집권 노동자당의 인기가 대선을 앞두고 일시적으로 폭등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미네이렁 스타디움'에서 열린 4강전에서 브라질 대표팀이 독일에게 당한 1:7의 참패는 단 90분간의 축구경기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오랜 기대를 순식간에 수포로 돌려버릴 수가 있는지를 잔인할 정도로 여실히 보여주었다.
일명 '미네이렁의 비극'이라 불리게 된 준결승전의 1:7의 스코어는 모든 브라질 국민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다. 삶의 이유이자 동력이며, 종교이자 희망이다. 설령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했더라도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는 변함이 없었겠지만, 적어도 월드컵 개최 자체를 크게 후회하는 여론은 등장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월드컵은 브라질 국민들이 행사 개최를 위해 감수했던 엄청난 국고 지출과 각종 불이익을 상쇄할 만한 그 어떤 이득도 가져오지 못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각국이 서로 유치하려고 경쟁했던 국제행사들이 이제는 서로 떠넘기려 하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렸다. 마치 인도 국왕에게서 하얀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가 억지로 코끼리를 먹여살리다가 파산하듯이, 대규모 국제행사들은 이제 빛 좋은 개살구를 넘어서서 세금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올해 열린 도쿄올림픽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무관중 대회를 선언하면서 이미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되었다. 이미 매몰비용으로 지출된23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개최비용(왠지 4대강 사업을 떠오르게 만드는 금액)은 일본 국민들의 피같은 세금이자, 코로나 확산 대응에 꼭 필요한 국가 예산이었다. 이제 뒤이어 열리게 될 베이징 동계올림픽, 카타르 월드컵, 그리고부산시가 유치를 준비 중인 2030년 엑스포까지, 앞으로 열릴 모든 국제행사들에게는 만성적인 적자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최우선 과제로 남았다.
기성 세대가 경험했던 88' 서울올림픽과 93' 대전엑스포의 성공에 대한 향수, 그리고 4년마다 꼬박꼬박 열리며 전국민의 이목을 끌었던 올림픽과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는 이젠 예전처럼 재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세계질서가 개편 되는 과도기에 도달했다는걸 의미한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에 전력을 다 해야 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의 주도권은 누가 어떻게 잡게 될지를 미리 내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기이다. 우리가 대규모 국제행사를 접할 때, TV에 비춰주지 않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꼭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