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심각한 치안 문제로 악명이 높다. 한때 남미 여행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지만,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현실이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다. 남미로 혼자 여행을 가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무조건 뜯어말렸으니까.
브라질에서 살았을 때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기억 중 하나는 친구들과 차를 몰고 당일치기로 산투스 해변으로 놀러 갔을 때였다. 나는 그전에 이미 버스, 지하철, 대로변, 식당, 그리고 DVD가게를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지갑이나 휴대폰을 강도 또는 소매치기로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다. 강도 노이로제에 걸린 나는어디를 가든 항상 다른 친구들보다 한 발짝 뒤에서 걸으면서 주변에 혹시 수상한 사람이 다가오지는 않는지를 끊임없이 살폈다.
강도와 소매치기를 여러 번 당해본 경험자만이 가질 수 있는 촉이 생긴 덕분에, 이제는 그냥 지나가는 행인과 나쁜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범죄자를 어느 정도 구별해낼 수 있게됐다. 그 촉을 말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 내가 맞닥뜨린 강도들의 눈빛과 표정, 옷차림 등에는 일련의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그것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맹수의 눈빛, 또는 먹잇감이 경계에 소홀해지기를 기다리는 하이에나의 눈빛과도 같다. 그들이 내뿜는 아우라가 느껴지면 그쪽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시키게 된다.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살피다보니 무척이나 피곤했다. 평소에 상파울루에서도 외출할 때마다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전후상하좌우를 살피기는 했지만, 피서객들도 많고 장소도 생소한 산투스 해변에서는 평소보다 훨씬 더 큰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이윽고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게 하루가 지나가고,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기 시작하자 나도 그만 잠깐 긴장을 내려놓고 말았다. 범죄자들이 노리는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먹잇감이 긴장을 푸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이만 상파울루로 돌아가려 하던 차에, 일행 중 한 명이 마지막으로 다 같이 셀카를 한번더 찍자고 제안했다. 그 친구가 스마트폰을 높이 쳐들고, 나머지는 그 옆에 모여 서서 사진을 찍으려던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브라질 소년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나와서 스마트폰을 홱 낚아채어 그대로 달아났다. 우리가 깜짝 놀란 틈에, 소매치기는 어느새 바로 근처에서 시동을 걸고 대기하고 있던 오토바이의 뒷자리에 올라타고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이 모든 게 단 1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났다.
그날 친구가 빼앗긴 스마트폰에는오랫동안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남긴 소중한 사진과 기록, 그리고 많은 연락처들이 들어있었다. 미처 백업을 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게 한순간에 모두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잃어버린 손실물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낫다. 강도들은 보통 물건을 훔치면 곧바로 장물아비에게 넘겨버린다. 장물아비에게 넘겨진 후에는 아무리 경찰에 신고를 해봤자, 휴대폰 위치추적 기능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해외에서 강도 피해를 당할 때 반드시, 꼭!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강도를 완력으로 제압하려 들거나, 빼앗긴 물건을 되찾으려 강도를 쫓아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절대로 옷 안주머니에 무심코 손을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강도의 시점에서는 총을 뽑으려는 걸로 착각하여 선제 피격을 당할 우려가 있다. 브라질의 강도들은 아무리 대여섯 살 밖에 안 먹은 듯이 체격이 작고 어려 보여도, 다들 호주머니에 권총 하나씩은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당한게 소매치기였으니 망정이지, 강도가 우리를 총으로 위협하지 않았던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그저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날 우리의 하루 종일 즐거웠던 기억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렸고, 허탈하고 속상한 마음으로 침울하게 상파울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소중한 여행사진들이 담긴 스마트폰을 잃은 친구는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차창을 열고 분노를 담은 쌍욕과 저주를 허공에 퍼붓는 것으로 화가 치미는 마음을 애써 삭혀야만 했다. 들뜬 마음으로 떠났던 해변가 나들이는 그렇게 끔찍한 경험과 함께 끝났다.
몇 년 전에 연예인들이 남미로 여행을 떠나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었다. 그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남미 여행을 해보는 것을 평생의 로망으로 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회사 생활에 지친 나머지, 사직서를 던지고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겠다며홀로 몇 달씩 정처 없이 남미 일주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남미에서 치안이 안전한 곳이란 없다. 그저 위험한 곳과, 더 많이 위험한 곳이 있을 뿐이다. 최소한 한국과 비교해보자면 그렇다.
특히나 당신이 어딜 가도 눈에 잘 띄는 동양인인데다가, 커다란 배낭이나 목에 건 카메라처럼 누가 봐도 여행객처럼 보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남미에서 돌아다니려면 최대한 현지 교민처럼 보이도록 가볍고 편한 일상복을 입고 다니는 편이 좋다. 악세서리나 명품, 귀중품, 고가의 전자제품을 몸에 지니고 다녀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며,신분증을갖고 다니려면 가급적원본은 안전한 곳에 보관해두고 공증받은 사본을 들고 다니는 게 좋다.
남미든, 아프리카든 막상 가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도시 전체가 무법천지처럼 으스스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곳의 치안이 좋은지 아닌지는 조금만 주변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다. 치안이 안 좋은 곳에서는 그 누구도 값비싼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손에 덜렁 쥔 채로 공공장소를 걷지 않는다. 노트북을 카페 테이블에 덩그러니 놔두고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 핸드백이나 겉옷을 벗어둘 때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내려놓지 않는다. 차에 탈 때에는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지 않고 다리 사이에 끼워 넣어야 한다. 강도가 자동차 창문을 깨고 무릎 위의 가방을 빼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미에서는 애초에 누군가에게 범죄를저지를 만한 여지 자체를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주인 없는 물건을 집어가는 건 엄연한 범죄이지만, 남미에서는 물건을 아무나 훔쳐갈 수 있도록 놔둔 물건 주인에게도 함께 책임을 묻는다.우리의 상식은 외국의 상식과는 많이 다르다.
최근에 브라질로 여행(이 코로나 시국에?)을 떠난 한국인 BJ 한 명이 택시를 잡아타고 위험하기로 유명한 파벨라(빈민촌)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콘텐츠를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영상을 내린 일이 벌어졌다. 그는 택시기사에게 파벨라로 가달라고 요청했다가 세 차례나 거부당하고, 결국 파벨라에 가지 못했다.택시비에 웃돈을 얹어주겠다는데도 한사코 정중하게 거절한 택시 기사들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자기에겐 카메라가 여러 개 있으니 한두 개쯤은 빼앗겨도 좋다며 허세를 부렸지만, 자기 목숨은 하나라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이밖에도 그는 브라질 여성들을 허락 없이 촬영하고 제멋대로 몸매 품평을 하는 등,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짓들을 벌이다가 결국 현지 총영사관의 권고를 받고 영상을 삭제해야만 했다.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돈을 벌어보겠다는 심산이었겠지만, 그 영상을 본 브라질 사람들과 현지 교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나중에 방송을 통해 사죄하긴 했지만, 그 사죄 방송으로도 수익을 올린 걸 보면 애초에 진정으로 반성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남미 전체가 범죄 소굴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저 BJ처럼 굳이자진해서 위험한 곳을 찾아갔다가 혹여 나쁜 일이라도 당하면 외교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2007년 일어난 샘물교회 피랍 사건을 잊지말자. 또 굳이 다른 나라의 치부를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발상도 너무나도 1차원적이다. 그러다가 진짜로 험한 일을 당하고 나면 그땐 누구한테 도와달라고 호소할 건가? 우리나라 외교부? 아니면 브라질 경찰?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아무리 반지성주의가 판치는 세상이고 해외 정세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외국에 나갈 때는 반드시 그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이나 주의사항을 알아보는 성의가 필요하다. 심지어 그 나라에 오래 살아본 사람들도 조심하지 않으면 강도를 당하는게 현실이다. 그걸 소홀히 한 대가가 자신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꼭 누가 굳이 가르쳐줘야만 아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