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9세 이상이 되는 것 외에도 성인이나 어른이 된다는 개념에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했지만 스스로가 어른인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나는 서른일곱 번째 생일을 앞두고, 탈모를 걱정하는 유부남이 된 지금이 되어서도 딱히 스스로가 어른이라는 자각이 없다. 학창 시절에나 사회생활을 할 때나 다를바 없이, 항상 노는 게 제일 좋았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어른'의 정의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일테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고로 참된 어른이란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 손아랫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이끌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 행복의 비결을 타인과 공유하되 강요하지는 않는 자라고. 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런 어른을 만나보기란너무 어려웠다.이런 추상적인 개념 외에도 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직접 돈을 벌어보고 경제권을 가지면 어른이 되는 걸까? 하지만 어렸을 때 마음껏 못 사 먹었던 곰젤리를 박스째로 사서 집에 쟁여놓거나, 카레를 만들 때 채소보다 고기를 더 많이 때려 넣는 게 가능해졌다고 해서 어른이 되었다는 자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건 어린아이라도 돈만 많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서른 살에 자취를 시작하며 독립했을 때에도 어른이라는 자각은 없었다. 오히려 부모님의 감시에서 벗어나 밤새도록 마음껏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물리적 독립과 자유가 정신적인 성숙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면 어떨까? 주변에 나이 오십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혼을 한 사람과 비교해봐도인격적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여러모로 부족했던 사람에게자녀가 생긴다고 갑자기 존경스러운 부모로 거듭나지는 않더라.
이다지도 어른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생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나는 내가 지금껏 봐온 어른들 중 하나가 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좋은 어른, 훌륭한 어른,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만 넘쳐나니까 나도 그렇게 되기가 싫어졌다.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들과 조금이라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사고방식이 썩어 빠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돈만 많으면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부류가 주로 여기에 속한다.
사람들마다 제각기 자신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십수 년 간 공교육을 행하는 목적은 모든 인간들의 사회화이고, 진정한 사회화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 서비스직 종사자라면 누구나 잘 알 거다. 우리 사회에는 왜 이렇게도 사회화가 덜 된 사람들이 온 사방에 넘쳐나는 걸까?
혹시 내가 나이를 먹으면 저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게 아닐까? 공중도덕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민폐를 끼치면서도 그게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된다면 전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만 잘난 줄 아는 멍청한 어른들 말이다. 심지어 그게 융통성 있고 똑똑한 거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치기까지 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차라리 그럴 바에는 어른이 되지 않기로 했다. 윗사람의 지저분한 짓을 봐도 못 본 척하고 때로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런 짓에 동참하면서도 원래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며, 그게 어른이라며 정당화하는 꼬락서니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온갖 이권은 다 누리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책임자, 공익이라는 개념 자체를 상실한 공직자, 혹은 돈만 좇으며 살면서도 스스로의 행동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자아성찰 따윈 개나 줘버린 그런 어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가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잘 아는 어린아이처럼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사는 편을 택하련다.
피터 팬 동화의 원작에서는 피터 팬이 아이들을 납치했다가 어른이 되면 죽여버리려고 했다는 게 불현듯 떠올랐다.어쩌면 피터 팬은 어른이 되는 게 성숙이 아닌 부패라고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까? 썩어빠진 어른이 되느니, 그저 마음 한구석에 작은 동심이라도 유지하고 사는 게 차라리 우리 모두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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