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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16

장기 여행자가 아빠가 되었을 때

영국 한국  다문화 가족 이야기


버스가 유로터널을 지날 때 나는 잠들어 있었다. 눈을 떴을 때 버스는 멈춰 있었다. 버스는 어떤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반쯤 깬 의식으로 '이건 어떤 구조 일까' 하고 생각했다.

바다 밑에 터널이 있다. 그 터널은 물이 세지 않는 길고 큰 파이프와 같다. 터널 안에 도로가 있는 게 아니라 레일이 있어 기차가 버스를 실어 나른다. 나는 지금 버스를 실은 달리는 기차 안에 있다. 상자 안에서 밖을 볼 수도 없기에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진동이 느껴진다. 바다를 얼마나 건넜을까.

이런 공상을 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네온 글자를 봤다. '운전자의 창문을 반쯤 열어 놓으세요'. 이건 또 왜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접고  다시 곧 잠이 들었다. 


아침 일곱 시가 지나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몇 번 온 적이 있는 익숙한 곳이었다. 버스 터미널은 파리로, 암스테르담으로 혹은 영국 어딘가로 가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마켓을 찾아 빵과 오렌지 쥬스를 골랐다. 카드를 내밀자 캐셔가 신분증을 요구했다. '당신도 나를 믿을 수 없는건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듯 여권을 보여줬다.

 

아침 아홉 시 글로스터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됐다. 국경에서의 일로 버스를 놓치지는 않았다.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게 고작 한 시간이었나? 다행히 예약한 버스를 탈 수는 있다. 빵과 쥬스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으로 남은 2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남은 21유로를 파운드로 바꿨다. 서비스료까지 4파운드를 물리고 달랑 13파운드를 받았다. 어찌하랴. 


다시 버스를 타고 글로스터로  또 그곳에서 33번 시내버스를 타고 킹쏜으로 왔다. 버스기사는 내가 비파사나센터로 가고 있는지 물었다. 난 그저 여행자라고 대답했다. 버스 안에도 헐렁한 바지를 입고 인도 여자처럼 코에 피어싱을 한 여자가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하이부룩 나무간판이 서있는 집까지 걸어왔다. 집들도 자연도 그대로다. 다만 시간이 강물처럼 흘렀을 뿐이다. 영원의 고리의 또 한 점으로 돌아왔다. 또 한 번의 긴긴 순환이다.


체리는 사일러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체리가 나를 봤다. 잠깐 산책을 갔다 돌아온 듯 일상적인 미소를 체리에게  지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체리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사일러스를 안았다. 아기는 젖을 먹고 행복하게 잠들어 있다. 눈감고 춤추듯 사일러스를 안고 시간 속을 흘렀다. 안 본사이  아기는 살이 포동포동 쪘다. 드디어 이 작은 생명의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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