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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5. 2016

방랑

방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해.

단어의 머릿결 위로 살랑 부는 바람이 느껴지거든. 


방랑이라는 단어 아래로는 

강 줄기를 따라, 해변을 따라, 산맥을 따라 달리는 자전거의 두 바퀴도 보여.


빨갛게 떠오르는 해와 또 빨갛게 가라앉는 해.

숲에선 새들이 지저귀고,

신비로이 신비로이 새콤한 토마토 빛으로 변해가는 하늘과 구름,

그때 물결은 실크처럼 가볍고 부드럽지. 


해가 지면 자전거를 탄 방랑자는 잠 잘 곳을 찾아. 

달빛이 호수에 비치는 곳, 

홀로 발가벗고 헤엄을 칠 수 있는 곳, 

꽃이 수두룩하게 피어 있는 곳,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울 수 있는 곳.

불꽃은 춤을 추고, 

요리한 스파게티는 달콤해. 



방랑이라는 단어 주위에는 곧 둥근달이 떠 올라.

까만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도 빼놓을 수 없지.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해.

자장가처럼 조용하게.


방랑자는 텐트 안에 누워 두 눈을 감아.

풀벌레는 여전히 속삭이고 있어.

방랑자는 달콤한 잠에 빠져. 


새벽이 오면 풀잎 위에 맺힌 아침이슬, 그 안에 반짝이는 무지갯빛.

방랑자는 호수에, 바다에 몸을 눕혀. 

그리고 시체처럼 고요하게 누워 하늘을 봐. 

그때 방랑자는 엄마 뱃속에 웅크린 태아가 된 것 같아. 

우주의 바다에 웅크린 태아.

방랑자는 우주와 탯줄로 연결되는 것 같아.

둥근 지구, 둥근 은하, 그 안에서 방랑자는 헤엄치고 있어. 


다시, 불을 피워 커피 한 잔과 토스트를 준비해. 

방랑자는 소박한 아침 식사의 달콤함과 슬며시 깨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그리고 방랑이라는 단어 아래 두 동그라미 같은 자전거 바퀴를 다시 굴리지. 

방랑이라는 단어에는 우주를 만나러 가는 은하수 길이 펼쳐져. 

바람이 불어, 머릿결 위로.

방랑자는 홀로 미소 짓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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