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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6. 2017

헤이 온 와이 철학 축제 이야기

How the light gets in 10일간의 자원봉사 여행

여행자가 자원봉사를 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특히 장기 여행자라면 여행의 온갖 묘미를 만끽할 자유가 있다. 난 철학, 문학, 종교, 심리, 역사, 예술에 항상 끌렸고 여행의 수만 갈래 길 위에서 할 수 있는 한 깊이 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내가 지원한 howthelightgetsin이라는 축제 역시 그랬다. '빛은 어떻게 내면에 스미는가?'라는 축제의 이름도 매콤 달콤하게 내 마음을 자극했다.


책의 마을 헤이 온 와이를 무대로 수백 명의 철학자,  문학자, 정치인, 경제학자가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토론을 한다. 한편으론 재기 발랄한 음악가들의 공연, 또 한편으론 독특한 연극 공연이 이어졌으니 내가 사랑하는 요소들이 어쩜 이렇게 한 곳에 모였는지 모른다. 같은 기간에는 헤이 온 와이 책 축제도 성대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난 이메일로 신청서를 보냈고 '그대의 삶 여행이 가히 흥미롭다'며 긍정적인 답이 왔다. 어찌 보면 긴 머리와 콧수염의 아시아 장기 여행자에게 자원봉사 자리를 주지 않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Your life journey is truely interesting.

"5월 22일, 헤이 온 와이에서 만나요."


나와 여자 친구는 한적한 들판에 텐트를 쳤다. 5월의 초록 들판은 아름다웠고, 바로 아래로 숲길 산책로도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에 백조 두 마리도 한가롭게 헤엄을 쳤다.

두 시간의 오리엔테이션에서 자원 봉사자가 해야 할 간단한 일을 배웠고 까만 티셔츠도 받았다. 나는 영어가 완벽하지 못했고 그래서 조금 긴장을 했다. 옆에 앉은 쾌활한 친구에게 내가  말했다.

"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몰라."

친구의 대답에 난 함박 웃었다.

" 그건 여기 앉아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거야. 걱정 마. don't worry, be happy."


하루 네 시간 동안 주차, 안내, 티켓 검사 등을 하고 그 외 시간에는 모든 토론과 공연에 참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철학 토론은 세, 네 명의 학자가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나는 글로브 홀에서 진행되는 토론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청중의 숫자대로 의자를 재배치하고, 표를 검사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이었다. 그 일을 끝내면 나는 뒷자리에 앉아 토론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청중은 진지했고 무대에는 열띤 논쟁과 유머와 폭소가 공존했다. 무언가 자기 세계를 창조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난 그리스 철학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그림을 떠올리며 그들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영어 토론은 역시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음악 공연은 그 자체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젊은 음악 밴드가 런던, 브리스톨, 맨체스터 등에서 모여들었다.


5월의 영국은 여전히 추웠고, 그래서 오후의 햇살은 더 달콤했다. 밤에는 텐트 앞에 불을 피웠고  , 따뜻한 날에는 강에서 수영을 했다. 숨이 차도록 자유영을 하다가 심장이 터져버릴 때쯤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봤다. 물에 퍼지는 심장 소리를 듣는 게 나는 좋았다. 하늘은 파랬고 구름은 백조 깃털처럼 하얀빛을 뿜었다.


나는 같이 자원봉사를 하는 쾌활한 친구 제프와 친해졌다. 이 친구는 헤이 온 와이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제프는 나를 만날 때마다 춤으로 인사를 했고, 나는 한바탕 웃으며 친구와 춤을 추곤  했다. 만남이 즐겁고 그 즐거움을 어떤 형태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인사의 기원이 아니었을까. '만나서 반가워요. Nice to meet you'를 넘어서 수만 가지 다양한 인사가 가능하지 않을까? 제프와 나는 다양한 빛깔의 춤을 췄다.


리버풀에 살고 있는 조는 고요한 말투와 행동으로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조는 오랫동안 아시아를 여행했고 한국에도 다녀왔다.

" 그 산 이름이 뭐였더라. 아, 지리산. 정말 아름다웠어."

강변에서 조는 nettle이라는 풀을 뜯어 차를 끓여 주기도 했다. 곁에서 함께 같은 일을 하는 이가 가장 투명한 철학적 여행 친구라고 난 느꼈다.


축제의 절정은 poetry day '시의 날'이었다. 나는 미리 시간표를 맞춰 짰다. 영국 곳곳에서 온 시인들이 자작 시를 낭송했고 난 그들의 예민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시인은 아름다운 여배우 혹은 감미로운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 괴짜 노인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호로비츠라는 시인과 그의 젊은 아내가 함께 시를 읊는 시간이었다. 그는 나팔을 불며 시를 읊었고 아내는 옆에서 연극배우가 되어 시를 표현했다.


축제의 끝에 다다르자 하루는 1광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난 제법 긴장하지 않고 부드럽게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에게 미래에  대해 듣고, 영국의 진보 정치인 조지 갤러웨이가 보수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열띤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았다. 영국에서 쉽게 보게 되는 것은 자유로운 자기표현이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들었고, 타인과 다른 자기만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시끌벅적한 파티가 열렸다. 그동안 함께 일했던 친구들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고, 식당에서 대량 방출한 맥주도 마음껏 마셨다. 얼굴 인사만 하던 친구들과도 터놓고 대화를 했고, 낯선 곳에선 온 나에게 쏟아지는 호기심도 느꼈다. 난 그곳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친구들은 북한과 남한의 참혹한 상황을 넘어서 아시아 전체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 묻기도 했다. 대학을 자퇴하고 4년 동안 아시아를 떠돌았던 경험은 이때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인도의 힌두이즘을 뿌리로 태어나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파된 불교, 노자와 장자의 도교 사상, 조선왕조를 지탱한 공자의 유교 사상, 그리고 약 100년 전 들어온 기독교가 한국인의 의식에 생각의 비빔밥처럼 혼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의식에 돈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가 겉옷을 입고 있고, 한국인과 일본인은 테크놀로지라는 도구를 끊임없이 개발하며 삶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서양 철학과 종교, 그리고 동양 철학과 종교가 어떻게 조화롭게 혼합을 이룰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How the light gets in 축제는 끝났고 그렇다면 '빛은 어떻게 내면에 스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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