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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10. 2017

몸 안에서 회전하는 우주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즘 데브리시 체험기

수피 댄스는 이란의 시인 메블라나 젤라르딘 루미가 창시한 신비주의 의식이다. 한쪽 팔은 하늘을, 다른 한쪽 팔은 땅을 향하고 팽이처럼 빙글빙글 돈다. 손 뻗은 하늘에서 우주와 합일을 이루고, 발디딘 땅을 향해 우주적 사랑이 흘러든다는 뜻이다. 쉬지 않고 돌다가 문득 티끌같은 자아가 광대한 우주에 포개지는 무아지경의 경험을 하게된다고 한다. 


7년 동안의 여행 그리고 무작정 자전거 세계일주. 중고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파리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약 5,000킬로미터를 달렸다. 어느 터키인은 나에게 왜 가족과 마주 앉아 식사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 왜 그토록 세계를 떠돌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룻밤 그의 집 앞에서 캠핑을 하고 떠날 때 그는 내 세계 여행에서 코냐의 시인 루미를 떠올렸다고 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들꽃에서 우주를, 한 손안에 무한을, 한 순간에 영원을'


나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 시 한 줄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계를 다 보고 싶었고, 난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 모든 철학, 모든 나라,모든 책을 여행하면 허공에 뜬 질문에 뚝하고 답이 떨어질 것 같았다.

 

빙글빙글 돌았다.  나무로 된 무대는 미끌미끌했다. 천천히 회전을 했다. 내가 선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감은 눈을 가끔씩 떴다. 무대 주위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이들이 보였다.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어떤 이는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이는 고이  잠이 들었다. 24시간 내내 수피  음악이 계속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어 가사였지만  친구는 그것이 루미의 시에서 왔다고 했다. 


리듬이 몸에 흡수됐다. 차츰 회전은 빨라졌고, 어깨 위에 얹었던 손은 수평선처럼 펼쳐졌다. 어느 여행자가 입은 긴치마가 꽃잎처럼 둥글게 펼쳐졌다. 나는 음악의 울림과  명상하는 이들의 고요와  회전의 관성에 몸을 맡겼다. 나선은하를 떠올렸다. 우주의 시간으로 은하가 회전했다. 우리 은하의 한 쪽 끝. 태양계와 지구가 내 손가락 끝에 있었다. 시간과 생명의 역사가 회전하는 몸을 타고 내 안에서 스쳐갔다. 입에서 신비로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내 안의 세계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음껏 웃었다. 환희였다. 나는 천천히 회전의 속도를 늦추고 두 손을 포개 어깨 위에 얹었다. 눈을 떴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 많은 이가 보였다. 춤을 끝낸 나는 무릎 굽혀 예를 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첫 수피 댄스 경험이었다.


팔각형 모양의 무대 끝에 앉은 사람들 사이에 빈자리를 찾았다.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계속되는 몸 안의 회전을 느꼈다. 두 손바닥을 펼친 채 허공을 향했다. 거대한 힘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내 몸 안에 롤러코스터처럼 빠르고 거대한 힘이 흘렀다. 황홀경인지 무아지경인지, '내가 우주에 포개지는' 경험을 했다.

 

이스탄불에서 배를 타고 얄로바라는 곳으로 갔다. 버스 기사들은 데브리시라는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 100여 명의 여행자들이 언덕에 친 색색의 텐트가 보였다. 편평한 곳을 골라 우리도 텐트를 쳤다. 불가리아에서 잠깐 자전거 여행을 함께 했던  터키계 독일 친구 우무트와 다시 만났다. 우무트는 여전히 신발 없이 세계를 여행하고 있었고, 여전히 옷에는 군데군데 구멍이 있었다. 난 우무트를 다시 만나고  싶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흥미로운 여행자들이 있었다. 이란, 불가리아,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등등. 긴 머리와 수염, 펑퍼짐한 옷, 어깨에 걸친 악기가 그들의 특징이었다. 아주 고요하고 예민한  영혼들이 흔하게 감지됐고 난 또 말없이 그들의 존재를 즐겼다. 사나흘 동안  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회전을 지켜보는 것이 내 일과였다. 24시간 내내 돌아가며 음악가들이 음악을 연주했다. 밤 아홉 시를 넘으면 홀은 열정적이 됐고 간혹 눈물을 쏟아내는 이도 있었다.



세끼 식사는 탁자에 둘러앉아 간단하게 했고 식기는 자발적으로 씻었다. 나는 100여 명의 접시와 컵을 씻어내는 일에 땀을 흘렸고, 곧 말없이 조화로운 움직임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터키와 이란 친구들은 드라마와 음악의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해 친밀함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나에게 '밥 먹었어?'하고 묻기도 했다.


여자 친구가 수피 댄스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빙글빙글 도는 친구를 지켜보며 시집에서 루미의 시를 읽었다. 나는 류시화 시인이 엮은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 좋았다. 그가 엮은 시집에는  종교와 철학의 경계가 없었다. 그 우주적 열림이 좋았다. 여자 친구는 뱃속에 새 생명을 품었고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포옹과 선물을 줬다. 어느 여행자는 직접 뜨개질한 양말을 선물했다. 나는 태어날 아기의 형상을 처음으로 그려 볼 수 있었다. 내 친구 우무트에게는 '우주 아빠'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언젠가 너한테 보낼게. 잠깐 같이 여행해 줘. 그게 우주 아빠의 역할이야." 친구는 흔쾌히 허락했다. 아기가 자라면 나처럼 긴긴 여행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이심전심 친했던 친구들에게 "너를 행복하게 하는 건 뭐야?"하고 물었다. 그들의 행복이 시집의 여백을 가득 채웠고 그것이 또한 내가 시간과 공간과 감정을 책 안에 봉인하는 방법이었다.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적힌 한 줄 'How the light gets in'을 보고 한 친구가 말했다. "수피 개더링 기간 내내 니 티셔츠를 보면서 말하고 싶었어.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다. 그것이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방법이다. 레오나드  코헨의 시야."


친구들은 떠났고 우리도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이 마르면  떠나기로 했다. 그 후 3일 내내 비가 내려 빨래는 언제나  촉촉함을 유지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남은 친구들과 온종일 내리는 비를 지켜보는 걸로 시간을 보냈다. 그 후  많은 친구들이 떼 지어 루미의 도시 코냐로 갔고 나와 여자 친구는 새로운 모험을 찾아  남터키로 떠났다.


p.s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사진을 쓸 수 있는지 물었고 곧 답이 왔다. 

      "물론! 맘대로" 

       

모든 사진은 Farhad Bazazian 것이고, 배경은 얄로바가 아닌 코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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