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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성태 May 09. 2016

전세의 종말 (하)

세입자는 전세제도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

평생 널 책임질게? 속는 줄 알면서...

가계부채 문제로 불안불안해진 집값

천재들이 드글드글 살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다시 엘리트를 뽑아 관료가 돼서 그런지 우리나라 행정부의 정책을 보고 있자면 마치 당구의 쓰리쿠션을 보듯 한 템포 지나 감탄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하우스 푸어 문제로 사회가 시끄럽던 몇 년 전, 연일 가계부채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돈 없다' 아우성치는 가계에 돈을 풀었다가는 깡통주택(집값이 부채총액보다 내려가는 경우)이 속출할 거 같고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뒀다간 여기저기 집들이 다 경매에 넘어갈 판이었다. 게다가 집값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도 급선무였다. 국민들은 전재산에 해당하는 집값을 팍팍 올려줄 수 있는 머(?)을 뽑아놨는데 오히려 집값이 떨어지니 정치인들은 푹푹 가이 타들어갔고, 행여나 집값이 폭락하면 한국에 제2의 IMF가 찾아오지 말란 법도 없이었다. 


뜬금없는 정부의 전세대책

그런데, 이때 정부는 집값 대책으로 뜬금없이 전세자금 정책을 갖고 나왔다. 집주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세입자들에 대한 대책이 나왔으니 왼쪽 다리에 모기가 물려서 간지러워 죽겠는데 오른쪽 다리에 물파스를 바르는 격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정책은 집주인들로 하여금 은행이 아닌 세입자에게서 돈을 빌리도록 한 것이다. 일단, 정부가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을 쓰면 세입자들의 전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이때 금리를 낮추게 되면, 목돈 굴려봐야 손에 쥐는 게 없어진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할 수밖에 없고, 세입자들은 두둑한 전세자금을 언제든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3000만 원 올려줘도 한 달 이자는 10만 원밖에 안되네~'하면서 전세금을 쉽게 올려줄 수가 있다. 아니, 오히려 속으로는 '예전 같았으면 이자가 두배는 비쌌을 텐데.. 이거 완전 땡잡았는걸?'하면서 반토막난 이자를 알뜰히 챙겨 쓴 자신을 '합리적인 금융소비자'라고 스스로 대견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전세금 폭등과 저금리 덕에 살아난 부동산 시장

그런데 몇 년간 이런 식으로 전세금이 올라가자 오른쪽 다리에 바른 물파스가 신비스런 약 빨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저금리 덕에 전세가가 치솟으면서, 이에 발끈한 수많은 30~40대 가장들이 더럽고 치사해서 돈을 왕창 빌려 집을 사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꺼져가던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돌기 작한다. 대기업 건설사들마저 중환자실에 뉘어놓고 '올해를 넘기기 힘들 거 같습니다'라면서 마음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는데, 부동산 시장의 바이탈 사인들이 급격히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2014년 봄부터 건설사들은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양물량을 한꺼번에 토해내기 시작했다. 역대 최고 물량 45만 채의 아파트가 2015년에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역대 최저금리 앞에 구매자들은 역사상 가장 좋은 대출조건으로 대출서류에 사인을 하면서 집을 사기 시작했다. '이렇게 저금리에 대출 안 받으면 그게 바보지', '그래도 이제 집값 폭락할지도 모른다던데.. 집을 사면 어또케' 라며 젊은 부부들은 밤새 옥신각신 썰전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불을 덮자마자 눈앞에 맴도는 4 Bay 신평면 새 아파트를 어찌 외면할까. '행복이 가득한 집'의 표지모델이라도 된 듯 얼굴 가득 미소 띤 가족들이 꿈속에서 나지막이 속삭인다. '30평 같은 20평 마법의 신평면 아파트, 값의 70%를 2.5%에 빌려주는 찬스까지.. 어차피 집은 하나 깔고 살아야 할 텐데... 평생 이런 기회가 또 생길까? 잃을 것도 없지 않나?' 이 정도 삘이 꽂히게 되면 대부분 '아몰랑~ 도장 꽝~!!'으로 이어지게 마련 일터.

자료 : 리얼투데이



썸타던 정부의 나쁜남자 드립과 서먹해져버린 시장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전셋값은 집값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올라가고, '집값 대폭락'론을 점치던 전문가들을 머쓱하게 만들며 집값은 3단 점프를 하며 예년의 최고치마저 경신하는 단지가 쏟아져나왔다. 강남 재건축이 맞물리면서 전세 가중되기 시작했다. 한편, 가계대출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찍으며 과열되자 여기저기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론, 학계, 심지어 국제기구에서조차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걸고넘어지자 결국 정부에서도 대출 규제를 시작한다. 그동안 담보(집)만 든든하면 집값의 60~70%까지 빌려줬었는데 이제는 소득 수준을 꼼꼼히 살펴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돈을 빌려주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은 이자만 몇 년 내다가(거치) 원금은 서서히 갚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젠 처음부터 (1년 후) 원금을 같이 갚으라고 단단히 시장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면서 돈을 빌려줄 것 같던 은행과 정부는 한순간 뒤돌아 서버렸고 로맨틱? 하던 시장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썸타던 남자가 입 싹~닦고 '우린 그냥 친구였잖아~'라며 다른 여자로 갈아타듯, '정부는 한 번도 빚내서 집사라고 한 적 없다' 공식입장을 내놓으며 '나쁜 남자 드립'을 쳤는데 이때부터 집값은 정체, 전세는 계속 오르면서, 전셋값은 집값의 80%를 넘보게 됐다.




너와 함께 행복한 줄 알았다. 

집값의 절반 정도의 전세금만 있으면 집에 거주할 수 있었던 것이 전세인데 이제 이런 저렴한 옵션이 사라지면서 세입자들은 마치 물고 있던 막대사탕을 빼앗긴 아이와 같이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랏님께서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세입자들의 살림살이좀 나아지라고 전세지원을 해주시니 성은이 망극한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는 풍부해진 자금 덕에 전셋값만 올라버렸고, 저금리 때문에 집주인들이 월세로 돌아서면서  전세금을 아무리 올려준다 해도 전세물건 자체를 찾기가 어려워졌으니 '전세대책'을 정부에 촉구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Why 전세 is 세입자의 friend?

근데, 왜 세입자는 전세를 원하고 집주인은 월세를 선호할까? 세입자 입장에서 보통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3%인데 반해, 전월세환산비율은 6% 정도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전세금 3억 원을 은행에서 빌려 이자를 은행에 줄 때와 집주인에게서 빌려 집주인에게 이자를 줄 때 각각의 이자율이 2배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즉, 같은 금액을 은행에서 빌리면 대출이자가 한 달에 75만 원인데, 월세 환산금은 150만 원이 된다. 왜 세입자들이 눈 시뻘겋게 뜨고 전세물건을 찾아다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건물주 입장에서는 3억을 전세로 받아놓고 그 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이율이 1.5%밖에 안된다. 거기서 세금까지 떼면 한 달에 남는 돈은 30만 원 밖에 안된다. 그런데 이 집을 월세로 놓으면 한 달에 들어오는 돈이 100~150만 원이 된다. 당연히, 집주인에게는 월세가 유리하고, 세입자에게는 전세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여기까지 보면은 그렇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데, 과연 정말 전세는 세입자의 친구일까? 

개인적 소견임을 밝히고 얘기하자면, 누가 전세제도의 최고 수혜자인지 그 복잡한 실타래의 끝은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세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세입자라는 것이다. 


전세의 전제

애당초 집주인은 왜 5억짜리 집을 3억만 받고 빌려줬을까? 즉, 5억짜리 집에 3억 원의 전세금만 받으면 나머지 2억은 자신의 돈을 투자했는데, 이 그림의 퍼즐이 맞춰지기 위해서는 이 투자에 대한 수익이 집주인에게 어떻게든 돌아가야 할것이다. 여기에 대해 쉽게보면, 2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집값이 오르는 경우다. 5억짜리 집이 6억이 되는 경우, 집주인은 2억을 투자해서 1억의 집값상승Capital Gain을 기대할 수가 있다. 집값이 5억에서 6억으로 20% 상승했지만 실제로는 2억을 투자해 1억을 벌었으니 50%의 수익이 발생하는 레버리지 효과를 누릴 수가 있다. (물론 세금 및 비용을 빼면 수익은 좀 줄겠지만). 하지만, 집값이 내려가는 경우, 집주인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레버리지가 오히려 독이 되어 역레버리지reverse leverage가 되기 때문이다. 5억짜리 집이 4억이 되게 되면, 집주인은 2억 투자금이 1억으로 줄어 50%의 손실을 입게 된다. 따라서 전세의 가장 큰 전제조건은 '집값이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전세와 세입자

하지만, 앞서 포스팅한 글들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집은 투자수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필수재화이다. 누구나 자리 펴고 누울 수 있는 공간, 가정을 꾸릴 공간이 필요하기에 세입자들은 잠정적인 '주택 매수자'로 언젠가는 집을 사야 한다. 집값이 안 오를 거 같아서 집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결정을 한 사람들이나 이민이나 이사 등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지 않으려는 사람들 정도는 예외일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가족이 생기면 자녀를 안정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삶의 터전은 경제적 가치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입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르는 전세금을 맞춰낼 수 있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장만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값 상승'을 전제로 한 전세제도가 유지되었다는 말은, 세입자는 2년 후 전세계약이 끝날 즈음에 내 집 마련의 꿈에서 그만큼 더 멀어져 있게 됐다는 것이다. 당장에는 곶감이 달다고 상대적으로 적은 부담으로 전세로 들어가게 되니 세입자의 부담이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2년 후 세입자가 집을 사서 나가려고 할 때 집값은 더 올라갔을 테고, 다른 집으로 전세를 가려고 해도 집값이 오른 만큼 전세도 올랐을 것이다.

 

아직도 머나먼 내집 마련 (이미지 출저 : JTBC 뉴스)



전세와 집주인

최근에 전세금 인상과 월세로의 전환이 이어진 배경는 예전처럼 집값상승Capital Gain(자본소득)에서 재미를 볼수 없게된 집주인들이 임대소득에서 부족분을 만회하려는 메커니즘이 녹아 있었다. 애초에 집주인은 집값이 떨어질 수도 있는 리스크를 지고 투자에 임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요구수익율은 임대소득으로 돌려받든 집값 상승으로 돌려받든 은행이자보다는 높을 수밖에 없고, 실제로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는 앞의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 7% (동기간 물가상승은 2%)씩 올라왔다. 집값이 기대한 수준만큼 오르지 못하면 집주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대했던 수익을 보존받으려 할 것이다.  


전세를 통해 당장에는 내 주머니에서 돈이 덜 나가니 이득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닌 제로섬zero sum 게임(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반대가 부푸는 것처럼)이라면 어떻게든 피해를 보는건 세입자가 될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 가진 사람은 집이 돈을 벌어다 주지만 세입자는 오르는 전세금만큼 열심히 현금을 구해서 집주인에게 갖다 바쳐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올라탄 사람은 땀 뻘뻘 흘리면서 다음 정류장까지 뛰어왔다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그다음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사람과는 경기가 안될 것이다. 뭐, 버스에 올라타더라도 그 이후에 빚을 갚느라 정신없이 뛰기는 매한가지겠지만, 자기 페이스대로 빌린돈을 꾸준히 상환해 나가는 것과 예측할수 없이 들쑥날쑥하는 전셋값을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세는 나쁜 거란 말이야?

전세의 기본 가정이 집값 상승이라면 전세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집값 상승을 바라는 가수요가 많다는 얘기가 된다. 즉, 집에 투자해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수요가 많으면 집을 정말로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들은 더 비싼 가격에 집을 사야 한다. 전세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한국만의 임대형태일 뿐이지만, 그 형태가 존속되기 위해서는 실수요 세입자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한국의 주택시장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껑충껑충 개발시기 동안 높은 집값 상승과 전세를 통한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따따불 수익의 맛을 본 투자자들은 '투자를 하면 이 정도는 벌어야지'라는 고기 맛을 봐버렸는데, 그 고기 맛을 잊지 못하고 무리수를 쓰다보니 나중에 결국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거나 뒤탈이 나는 사람들이 생기곤 했었다. 


이제 본격적인 저성장 저금리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투자의 시대가 열리는데, 전세끼고 집사서 조금씩 평수를 넓혀가던 고전적 투자방식은 한계를 드러낼듯 하다. 앞으로 실수요 위주의 주택시장으로, 전세에서 자가로 주택시장이 변화해야 할텐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집에 투자하던 투자자들은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할듯 하다. 그동안 달달한 봉지커피(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졌던 한국인들의 입맛이 어느새 원두 로스팅의 깊은 맛을 논하게 될 만큼 세련되어진 것처럼, 앞으로 투자자의 입맛도 점차 흰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논하는 식으로 점차 성숙되고 각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투자철학을 논하는 시기가 머지않아 올듯 하다.

고급져 가는 입맛만큼 우리는 세련되어져 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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