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신세계, 고속버스터미널의 굴곡진 출생 사연
뉴욕의 지저분한 지하철은 앞서 언급했지만 서울의 지하철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의 청결함과 가성비, 그리고 품격을 갖춘 교통수단인 듯 싶다. 지하 암반수 깊이까지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과 무개념 환승 설계 등을 볼 때 철도공사가 살짝 원망되기도 하지만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들을 배려한 센스라고 생각하고 대신 지하철 안에서 4G LTE가 빵빵 터지니 이는 세계의 자랑임은 분명한 듯하다. 복잡한 지하철 환승역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또한 상권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강남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 중의 하나로 고속버스터미널역의 강남 신세계 백화점을 포함한 센트럴시티를 뽑을 수 있을 듯하다. 최근 파미에스테이션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된 이곳은.... 누가 주인이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70년 중순, 고속버스터미널(고터) 부지 5만 평의 원래 땅주인은 개인들이었던거 같다. 서울시는 이곳 지주들에게 다른 서울시의 땅(체비지)과 교환하는 조건으로 땅을 마련했다. 5만 평의 넓직한 땅 중 3만 평은 고속버스 터미널 (현 경부선)로 사용하고 2만 평은 시외버스 터미널로 사용하는 계획으로 처음 터미널을 운영했는데, 서울에 들어오는 모든 버스가 이곳으로 몰리다 보니 교통상황이 말이 아니었고 서울시는 급히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금의 예술의 전당 인근의 남부터미널로 이전하게 된다 (남부터미널은 또 그 나름대로의 사연으로 인해 오늘날 표류 중이다). 이후, 홀로 남게 된 2만 평의 부지는 한 신생 그룹에 매각이 되고, 그 후 호남-영동선 터미널로 사용된다. 여러 우여곡절로 호남선 터미널은 가건물로 남아있다가 그후 신세계 백화점을 비롯한 대규모 복합시설로 개발되는데, 그 사이 무려 십여년의 시간이 흐르게 된다.
강변역에 있는 동서울 터미널이 문을 연 87년까지 만 10년 동안 경인선을 제외한 모든 고속버스 승객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만을 이용해야 했다. 터미널이 생기고 4년이나 있다가 지금 지하철 3호선이 고터역을 지나가도록 노선이 결정되었다고 하고, 그 후로 5년이 지나고 나서야 지하철이 개통되었다고 하니 고속버스는 초기 도시계획에서는 존재감이 약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후, 노선이 정해진 3호선을 보면 신사-잠원을 지나 고속버스터미널로 'ㄷ'자로 엄청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당시의 개발축이 신사역에서 출발해서 양재역으로 내려가는 강남대로였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고속터미널에는 당시에 많은 정치적? 무게가 실렸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70년대 말, 우리나라에는 혜성같이 나타나 당대를 휩쓸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린 율산이라는 그룹이 있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서울대 응용수학과를 졸업한 신선호는 26세에 100만 원으로 오퍼상을 시작했다. 사우디에 시멘트를 수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불과 2~3년 만에 신흥재벌 율산그룹이 탄생했다. 78년에는 15개의 기업체를 거느린 신흥재벌로 컸으나 이듬해 79년 외국환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후 모든 기업이 도산했다. 단기간에 급속히 세를 늘려온 탓에 부채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율산 측에서는 보안사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등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후로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던 율산은 이 외에도 석촌호수 부지(꿈과 희망의 나라 롯데월드)도 그 밥그릇을 롯데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서초구 반포동 19번지의 1만 9천 평의 토지소유권만 채권단에 뺏기지 않았는데, 이 스토리가 재미있다.
율산은 77년 4월에 평당 7만 원에 1.9만 평의 부지를 약 13억 원에 매입했는데 당시 토지대금을 완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79년 4월 부도 당시에는 아직 서울시의 구획정리사업이 완료되지 않아서 S회장 앞으로 명의변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실소유주는 S회장이었지만, 토지소유는 서울시 명의로 남아 있었는데 이 때문에 은행에서는 저당권 설정을 할 수 없었고 차압을 할 수가 없었다. 82년 10월에 서울시가 땅을 정리를 하고 명의를 돌려주려고 하였지만(환지), 애초에 서울시에서 땅을 파는 조건이 터미널로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터미널이 들어서 있지 않으면 등기를 넘겨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업 하는 사람들이 부도가 나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재산을 돌려놓는 경우는 있지만, 나라 이름으로 재산을 돌려놓는? 다소 어이없는 일이었던 터, 이렇게 어부지리 격으로 율산은 모든 계열사가 부도가 났지만, 강남 알짜배기 땅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건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 많은 우여곡절과 시간이 지나고 S 회장은 삼성과 손을 잡아 재기하게 된다. 당시 삼성 패밀리 신세계는 백화점 사업에서 경쟁업체 롯데가 치고 올라오다 못해 급기야 업계 선두를 빼앗아 버리자 신세계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강남으로 진출할 기회를 살폈다. 마침 강남의 노른자 땅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되면서, 신세계는 임대차 보증금을 560억 원 선납하면서 일단 엉덩이 깔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 원래는 신라호텔도 같이 들어오려고 했지만, 제주도에 호텔을 지으면서 여력이 부족해져 대신 메리어트가 들어오게 됐다. 그동안 좋은 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산 부도에 따른 빚이 많이 남아 있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S 회장은 명실공히 대한민국 1등 삼성 패밀리와 손을 잡게 되면서 절치부심했던 재기의 날개를 펼 수 있게 되었다. S 회장은 어렵게 어렵게 4500억 원이나 들어가는 대형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지하 5층, 지상 33층의 8만 평에 달하는 공룡 건물, 강남 최고의 Hot Place, 센트럴 시티를 손에 넣는 듯했다. 하지만, IMF의 화마가 스쳐 지나간 2000년, 완공 직후 1년이 채 안돼 S 회장은 1차 부도를 맞게 된다. 그 이듬해 2001년 구조조정 회사(애경그룹 관련 회사, I&R 코리아)에 자신의 지분 51%를 넘기게 되면서 S 회장은 더 이상 최대주주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그 후 2004년에 이 드라마에 갑자기 등장하게 된 통일교가 이 51%의 지분을 매입하게 되는데, 이때 통일교가 S 회장으로부터 추가 지분을 매입하면서, 총 60%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고, 센트럴 시티 복합 건물은 사실상 통일교 건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통일교는 2012년 문선명의 사망 이후 내부적으로 많은 갈등과 왕자의 난을 겪게 되는데, 마침 이 건물에 세 들어 있던 신세계 백화점은 무려 1조 원을 배팅하여 통일교 지분을 다 사버리게 된다. 당시 신세계는 외부 차입금이 1조 원이 채 안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강남점이 탐난다고 해도 갑작스럽게 전체 부채보다도 더 많은 1조 원을 그것도 은행에서 갑작스레 빌려서 매입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당시에 신세계 백화점 매출 순위로 4위에 들어가는 알짜배기 신세계 인천점이 인천종합터미널 건물에 입점해 있는데, 그 건물주인 인천시가 터미널 건물을 수의계약으로 갑자기 롯데에 팔아넘기면서 알짜배기 점포를 경쟁업체 롯데에 뺏기게 생기게 된 것이다. 당시 공정위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던 신세계는 사활을 걸고 다른 백화점 부지만큼은 지켜야 했고, 특히 상징성이 높은 강남본점 만큼은 셋방살이에서 쫓겨나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했다. 마침 통일교 내분으로 신세계는 세입자에서 건물주로 신분상승?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신세계에서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신회장도 그렇고 신세계도 그렇고 양 '신'씨는 반포의 대지 기운과 잘 맞아 떨어진듯 운빨이 좋은 듯하다.
열심히 닭을 튀겨서 인천서 제일가는 닭집을 만들어놨는데, 건물주가 상의도 없이 경쟁업체한테 건물을 팔아넘기는 바람에 알짜배기 가게를 뺏기는 일은 소상공인들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이지만, 세입자의 설움에 절규하는 눈물은 비단 자영업자들만의 것은 아니었나 보다. 거대기업 신세계도 인천서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가게를 롯데에 뺏기게 되자 신세계는 전국 백화점 매출 1위인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을 누르기 위해 칼을 갈기 시작한다. 타도 롯데를 외치며 자신들의 1등 점포이자 전국 매출 2위의 신세계 강남점 건물을 사들인 신세계는 칼날을 빼내 건물 증축을 시작한다. 이런저런 공간을 합치고 부수고 새로 지어서 영업공간을 50% 이상 늘려 늘상 매출 1위를 달리는 소공동 롯데 본점보다 더 큰 백화점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것도 강남 신흥 부자들이 바글바글 살고 있는 강남 반포 한복판에 말이다.
실제로, 오늘날 신세계 강남점은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나서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영패션 전문관 '파미에 스트리트', 프리미엄 푸드타운 '파미에 스테이션', 하우스 맥주 '데블스 도어'등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이렇게 신세계는 고터 5만 평 부지중 호남선 2만 평을 장악했다. 이제 남은 건 경부선 터미널이다. 그런데, 신세계는 이미 2013년에 경부선까지 성큼성큼 접수하고 있었다. 1975년 고속버스업체 9개 회사가 출자하여 설립한 고속버스터미널(경부선)의 지분 약 39%를 인수한 것이다. 금호산업이 한창 어려운 2010년 워크아웃 때 내놓은 지분을 한 투자회사가 가지고 있다가 몇년 후 센트럴시티에 팔게 된 것인데, 다른 주주사들보다 두배 이상 지분을 확보하고 최대주주가 되었으니, 명실상부 센트럴시티는 이제 호남선과 경부선을 모두 접수하게 된 것이다. 신세계가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센트럴 시티가 경부선의 40%지분과 호남선을 갖게되면서 강남 라이프의 최중심인 고터는 이렇게 신세계에 의해 쓱(SSG)되어 버렸다.
현재 고터에 있는 터미널 상가(지상)는 8층짜리 건물에 의류, 혼수, 화훼 가게 4000개가 있는데, 이들 주인은 다 따로 있다고 한다. 적어도 2000명 이상의 상인들이 소유하고 있는데, 신세계가 이 지역을 신세계타운으로 개발하려고 하면 이 2000명을 다 어르고 달래야 한다는 어려움이 생긴다. 아마도 터줏대감 상인들이니만큼 꽤나 그때가 되면 실력 발휘?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에서 비견한 해외 사례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익히 너무나 잘알고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엠파이어 빌딩도 비슷하게 2800명에 달하는 개미 주인들이 있었는데, 결국 그 빌딩은 2013년 리츠로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개미주인들은 엠파이어 빌딩의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아무튼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강남 신세계 타운은 2020년 이후에나 개발되고 아마도그때쯤이면 무인 버스를 운행하는 무인 버스터미널로 개발되지 않을까 감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