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의 저자는 스위스에서 나고 자라 사회/경제적으로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어요. 20대의 어린 나이에 글로벌 기업의 임원이 됐을 정도였다고 해요. 연공서열과 장유유서 문화로 똘똘 뭉친 기업에 둘러싸인 저로서는 "우와 그게 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좀 멋진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갑자기?!라는 생각이 좀 드는데. 원래 빠르게 성공하면 그런 생각이 드는지 일단 그렇습니다. 그것도 그냥 승려가 아니라, 태국에 있는 숲 속 사원이라는 곳으로 가죠.
어쨌든 다 내려놓고 그런 곳으로 떠나다니, 제 눈에는 흡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서사의 주인공 같아 보였죠.. 모든 것에 허무를 느낀 히어로가 모든 걸 뒤로한 채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 말이죠. 그리고 수도생활을 통해 마침내 득도하고 반짝이는 지혜를 얻어 어쩐지 인류를 구할 것 같은 영웅 대서사시 같아요. 바로 그 점이 흥미로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2.
명상을 할 때는 졸기 일쑤였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또 다른 수도승들이 미워 죽을 지경입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 종일 구시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꼭 월요일 아침에 출근해 있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저자뿐만 아니라, 사원의 다른 승려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는 겁니다.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고 더 통쾌했던 것 같아요. 그 숲 속 사원이 어떤 곳인가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속세에 있는 우리들처럼 갈등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불평불만이 넘쳐서 숲 속 사원 '블라인드'가 있다면 매일 핫 글이 갱신될 것도 같아요.
그런 것까지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불경을 외거나 명상을 하는 것보다 덜 중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살면서 타인으로 인한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는데요. 실은 그런 환경 속에서도 넉넉하게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그토록 종교를 찾고,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3.
마침내 저자는 태국 '숲속사원'에서 7년 이상, 그리고 유럽의 '숲속사원'에서 7년 이상 머무르다. 20여 년 만에 환속을 하게 됩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생활인으로서 삶을 시작한 것이죠. 건강이 악화된 영향도 있는데요. 저자는 이른바 루게릭병 판정을 받아요. 1~5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받죠. 좀 갑작스럽긴 한데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저자도 엄청나게 충격을 받고 당황해요. 방황하기도 하고요.
우울증에 걸리고요 불면증에 시달려 잠을 잘 수가 없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1년 넘게 집안에만 틀어박혀 좌절합니다. 저는 이 모습이 참 인간적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은 20여 년간 숲속에서 명상하며 자신을 연마한 사람이 이렇게 흔들릴 수 있나 싶었죠.
그 정도 수행했으면, 그 정도 마음공부를 했으면 죽음 앞에 의연해질 수 있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사원에 있을 때만 평안하고 현실 사회에서 평안에 이르지 못한다면 과연 그동안 20여 년간의 노력은 뭐란 말이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이 정말 의아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해서 속도를 내서 읽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 이렇게 좌절만 한다면 정말 실망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그는 1년 반 정도만에 다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명상을 가르치고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게 되죠. 그러면서 조금을 본인을 추스르고 마침내 용기 있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면서 본인도 용기를 얻더라고요.
그 점이 뭔가 평범한 우리의 모습 같아서 저는 더 공감되고 더 좋았습니다. 이 책의 세 번째 관전 포인트입니다.
4.
결국, 그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재에 충실하자입니다. 명상을 해보신 분들은 모두 다 아실 텐데요.
우리를 요동치게 만든 건, 내 부족한 과거 때문이기도 하고요.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 때문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현재를 직시하지 못해요.
머리로 아는 것과 삶을 통해 체득하는 것과의 거리는 상당할 텐데요. 그래서 숲속사원에서는 돈도 벌지 안혹,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못하게 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연습을 합니다.
어쨌든 결국 그런 삶의 태도가 저자의 생의 마지막 부분을 강건하게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저는 정말로 인상적이었어요.
모두들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 죽음이라는 건 우리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시점에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잖아요. 저자처럼 말이에요. 어느 날 그 시점이 문득 우리 앞에 찾아오더라도. 볕 좋은 날 소풍 가듯 가볍게 걸어가기 위해서는 유한한 생 앞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기억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 책의 제목보다 에필로그의 소제목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린 과연 이 말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게 해주는 책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