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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leys] 몸이 기억하는 브랜딩 전략

호주 접착제 브랜드 Selleys 사례.

by 서양수

지하철에서 가죽 혁대를 팔던 시절이 있었다. 거구의 아저씨가 혁대에 온몸을 매달리며 "이렇게 해도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라고 외치던 모습. 차력쇼인지 세일즈인지 경계가 모호했지만, 그 장면만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태풍상사>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진선규가 연기한 세일즈맨은 안전화의 내구성을 증명하기 위해 쇠꼬챙이를 동원한다. 쇠꼬챙이에 냄비를 내려치고 프라이팬을 내려치며 모두 구멍을 내 버리지만, 오직 안전화만큼은 구멍이 뚫리지 않는 걸 직접 보여준다. 급기야 고객에게 직접 신발을 쥐여주며 "한번 해보세요"라고 권한다. 이러한 극단적(?) 시연은 보고 있자면, "아저씨 제발 그만하세요, 살게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단순한 제품 설명을 넘어, 고객이 직접 겪고 체험하는 동안 강력한 인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경험 마케팅의 힘이다. 그리고 이 경험 마케팅은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 마케팅 산업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체험 마케팅 시장은 2024년 약 1,283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으며, 팬데믹 이전 수준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더욱 주목할 점은 2024년 한 해에만 10.5%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들이 다시 고객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찾고 있다는 증거다. 성수동이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그렇다면 체험은 왜 이렇게 강력할까? 왜 우리는 단순히 듣고 보는 것보다 직접 만지고 경험한 것을 더 신뢰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인지 메커니즘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우리 몸이 기억하는 이유


우리는 하루에 4,000~10,000개의 광고 메시지에 노출된다. 이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브랜드는 어떻게 고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최근 연구들 중에는 그 해답이 '다감각 경험(Multisensory Experience)'에 있다고 말한다.


2024년 한 연구에 따르면, 다감각 교육 자료를 사용한 아동들은 단일 감각 자료를 사용한 그룹보다 정보 보유율이 현저히 높다. 특히 시각, 청각, 후각을 함께 자극했을 때 기억의 강도가 극대화되었다. 이는 비단 아동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성인 소비자 역시 여러 감각이 동시에 자극될 때 시너지가 발생하며, 각 감각 자극이 다른 자극들을 강화한다. 결국, 그렇게 더 강력하고 일관된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트에서 시식 코너를 지나칠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단순히 맛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제품의 질감, 향, 온도, 그것을 권하는 직원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기억한다.


2025년 신경과학 연구는 특히 후각이 뇌의 변연계를 직접 활성화하여 감정과 기억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맡게 되는 커피 향, 애플 스토어의 나무 질감과 유리 벽, 명품 매장의 조용한 배경음악까지, 모든 것이 의도된 다감각 설계다.


2284_FP706720.jpg 애플 스토어. 글로벌 어느 매장에 가도 나무 테이블, 유리 벽 등 일관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광고 문구보다 경험이 훨씬 강력해질 수 있는 이유다. 텍스트로 읽은 정보는 쉽게 잊히지만, 몸으로 경험한 것은 오래도록 남는다. 특히 감정과 연결된 기억은 더욱 강력하다.




내 것이 된 것 같은 착각의 마법


2025년 최신 연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디지털 제품의 무료 체험 기간을 설계할 때, 기간 제한 방식(전체 콘텐츠에 접근 가능하되 시간제한)이 부분 제한 방식(일부 콘텐츠만 접근 가능) 보다 심리적 소유감을 더 효과적으로 높인다는 것이다. 그 핵심 메커니즘은 '지각된 통제감(Perceived Control)'이었다. 사용자가 제품을 더 많이 통제할수록, 그것을 더 자신의 것처럼 느낀다는 의미다.


이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로 설명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일단 손에 쥐면, 그것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아직 자신의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무료 시승을 하고 나면 그 차를 구매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가전제품 렌탈을 경험하면 반납이 아깝게 느껴지며, 화장품 샘플을 써보면 정품을 사고 싶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다. 투자한 것이 많을수록 소유감은 커진다. 그래서 단순히 제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고객이 직접 만지고, 조작하고, 자신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결과물을 생성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무료 체험이나 시승, 샘플링이 단순한 마케팅 비용이 아니라 전략적 투자인 이유다.




내가 만든 것에 더 끌리는 이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만약 고객이 제품을 직접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케아 효과로 알려진 실험은 흥미로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사람들에게 종이접기를 시키거나 물건을 조립하게 하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조립한 수납함에 대해 동일한 완제품보다 63% 높은 가격을 매겼고, 선호도는 55% 더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참가자의 92%가 사전 설문에서는 "완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겠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편향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 현상은 '노력 정당화(Effort Justification)'라는 용어로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들인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래서 힘들게 조립한 가구가, 직접 구운 케이크가, 내 손으로 커스터마이징 한 스니커즈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2010년 연구에서는 쥐조차도 더 많은 노력을 들여 얻은 먹이의 맛을 더 높게 평가했다. 이는 매우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지 메커니즘이다. 밀키트 산업의 폭발적 성장, 커스터마이즈 상품의 인기는 이케아 효과를 활용한 전략이다. 이는 고객에게 최종 결과물을 완성된 형태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고객은 제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까지 얻게 되는 원리다.




셀리스(Selleys)의 사례


그럼 이번 글의 주인공인 셀리스의 사례를 살펴보자. 앞서 소개한 마케팅 전략을 똑똑하게 실행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호주의 접착제 브랜드 셀리스(Selleys)는 시드니의 대형 옥외광고판에 자사의 강력 접착제를 사용해 카약, 게임기, 대형 물고기 모형 등을 붙였다. “그리고 떼어갈 수 있다면, 가져가도 좋다(If You Can Take It, It's Yours)"는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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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캠페인은 단순하지만 똑똑하게 설계된 사례다. 3가지 포인트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이 캠페인은 고객으로 하여금 직접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강력한 접착력"이라는 추상적 메시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게임기를 떼어내려고 온 힘을 다하는 그 순간, 고객은 제품의 성능을 몸으로 기억하는 것 아닐까.


둘째, 소유욕을 자극한다. "가져가도 좋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도전이 아니다. 그 물건이 이미 '내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소유 효과를 예상적으로 활성화한다. 게임기를 떼어내려 애쓰는 순간, 손으로 만지고 있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그것이 '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셋째, 경험 자체가 즐겁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도전 자체가 재미있고 공유할 만한 이야기가 된다. 친구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고, SNS에 영상을 올리는 순간까지 모두 브랜드 경험의 일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바이럴이 발생한다. 그 경험 자체가 너무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고, 친구를 태그 하게 만든다. 이는 옥외광고나 오프라인 프로모션이 같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결국, 시드니 거리를 한 번도 지나가지 않은 사람들도 SNS를 통해 이 캠페인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게 돋보이는 사례다.





마케터를 위한 인사이트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실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체험 마케팅을 설계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은 무엇일지 함께 살펴보자. 딱 4가지로 정리해 기억해 보면 좋겠다.


첫째, 다감각 경험을 설계하라.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심지어 미각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하면 좋다. 팝업스토어를 기획한다면, 브랜드만의 시그니처 향을 개발하고, 브랜드 사운드를 선정하고, 제품을 직접 만질 수 있게 배치하면 오감의 경험이 가능하다. 그러한 설계를 통해 다감각 경험을 만들면 더 오래 기억된다.


둘째, 심리적 소유감을 심어라. 고객이 제품을 실제로 구매하기 전에 이미 '내 것'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면 좋다. 무료 체험을 제공하되, 고객이 자신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자신만의 설정을 만들고, 결과물을 생성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클수록 소유감은 자연스럽게 커진다.


셋째,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만드는 경험을 제공하라. 고객이 제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만들 수 있다면 더 좋다. 완성된 제품을 주는 것보다, 고객이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 강력한 효과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물리적 제품뿐만 아니라 디지털 서비스에도 적용된다. Duolingo가 학습자에게 코스를 선택하게 하고, Spotify가 사용자에게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게 하는 이유다.


넷째, 공유 가능한 포인트를 만들어라. 고객이 자발적으로 브랜드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순간을 만들면 좋다. 단순히 예쁜 배경이 아니라, 독특하고 개인적이며 이야기가 있는 순간이어야 한다. 이는 옥외광고나 오프라인 프로모션이 갖는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지하철에서 혁대에 매달렸던 아저씨, 신발에 쇠꼬챙이를 내리찍던 세일즈맨, 옥외광고판에서 게임기를 떼어내려던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경험'이 메시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적 마케팅은 "우리 제품이 좋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경험 마케팅은 고객이 직접 "이 제품은 정말 좋다"라고 느끼게 만든다. 그 차이는 광고 메시지와 개인적 기억, 브랜드 주장과 자기 확신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오늘날 마케팅 환경은 전례 없이 복잡하다. 하루에 수천 개의 광고 메시지가 쏟아지고, 소비자의 집중력은 점점 짧아지며, 브랜드 충성도는 약해지고 있다. 당연하다! 이런 복잡하고 바쁜 세상 속에서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보이는' 것을 넘어 '기억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경험은 기억을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브랜드가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경험이며, 스펙이 아니라 감각이고, 주장이 아니라 기억이다. 스스로 느끼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할 건 명확하다. 이제 고객의 손에 제품을 '움켜쥐게' 만드는 경험을 설계하자! 그것이 바로, 조용하지만 강력한 브랜드로 기억될 수 있는 똑똑한 전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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