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AI의 캠페인 사례.
화면에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 인물에게 꽂힌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인간 뇌의 진화적 설계에 뿌리를 둔 반응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는 얼굴 인식을 전담하는 특화된 영역이 존재한다. 측두엽의 방추상회(fusiform gyrus)가 바로 그것이다. 이 부위는 사물이나 풍경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얼굴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놀랍게도 인간의 뇌는 약 50개의 뉴런만으로도 어떤 얼굴이든 인코딩할 수 있으며*, 얼굴을 볼 때마다 N170이라는 고유한 뇌파가 발생한다.** 즉, 얼굴은 인간이 인식하는 수많은 시각적 자극 중에서도 가장 본질적이며, 사회적 의미가 가장 큰 신호다. 우리는 얼굴을 통해 나이, 성별, 감정, 의도, 정체성 등을 해석하고, 복잡한 장면 속에서도 얼굴에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다.
광고와 영화는 오래전부터 이런 인간의 본능을 활용해 왔다. 특히 클로즈업 샷은 감정 전달의 핵심 기술이다. 인물의 표정이 화면에 가득 찰 때, 관객의 뇌는 그 감정을 읽고 해석하려는 자동 반응을 보인다. 영화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관객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 쉽게 말해 타인의 내면 상태를 추론하는 능력을 유의미하게 높인다고 분석한다. 특히 슬픔이나 불안 같은 복합 감정을 담은 클로즈업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며, 화면 속 인물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학자들은 배우의 눈과 미간, 입 주변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정의 미시언어(micro-expression)’라 부르며, 이를 포착하는 클로즈업이 관객의 정서적 몰입을 극대화한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배우 설경구의 미세한 눈가 떨림은, 그가 표현한 복합적인 감정의 상징으로 회자됐다. 이처럼 클로즈업된 얼굴은 감정의 지도이자, 진실을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광고는 이 감정의 언어를 정교하게 이용한다. 진심처럼 보이는 표정, 감정이 스며든 눈빛, 숨결이 느껴지는 거리감. 이러한 연출은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몰입을 이끈다.
최근에는 플랫폼 차원에서도 이 전략을 공식적으로 권장한다. 구글의 유튜브 광고 가이드라인 ‘ABCD 프레임워크’는 그 대표적 사례다. 여기서 ‘A(Attention)’ 단계는 광고 초반에 인물을 등장시키고, 타이트한 프레이밍(tight framing)으로 얼굴을 강조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이 원칙을 적용한 광고는 평균 단기 매출이 30%, 브랜드 장기 기여도가 17% 상승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결국 우리는 화면 속 타인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안에 감정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인간적인 진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광고든 영화든, 얼굴은 여전히 ‘주목’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2025년 9월 오픈AI는 ChatGPT를 위한 첫 대규모 브랜드 캠페인을 공개했는데 모든 영상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인물의 클로즈업 샷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있거나, 도전하고 있거나, 맛보고 있는 일상 속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클로즈업된 화면을 통해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 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물에 집중하게 되고, 어떤 상황이 펼쳐지는지 해석하려는 기제가 작동한다.
그렇게 집중된 인물이 무엇을 하는지는 카메라가 점점 줌아웃되면서 상황이 공개된다. 캐나다 영화감독 Miles Jay가 전체를 35mm 필름으로 촬영한 이 영상들은 영화적인 따뜻함과 질감을 담고 있다. 원테이크로 촬영된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한 영상(Dish)에서는 커플이 ChatGPT를 이용해 데이트 상대를 감동시킬 레시피를 찾는다. 다른 영상(Pull Up)에서는 젊은 남성이 ChatGPT의 8주 진행 플랜을 따라 마침내 턱걸이에 성공하는 모습을 담는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ChatGPT를 활용해 로드트립을 계획한다.
이 캠페인은 올해 초 슈퍼볼 광고에서 점묘화 애니메이션으로 ChatGPT를 기술 혁신의 타임라인에 위치시킨 것과는 극적으로 대비된다. 이번에는 요리, 공부, 삶의 다듬어지지 않은 사이사이 순간들을 위한 것으로 메시지를 전환했다.
# OpenAI의 지난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
이번 캠페인이 특별히 좋은 이유는 GPT가 필요한 순간과 활약상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 속에서, 혹은 우리가 도전하는 모습 속에서 ChatGPT는 자연스러운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그저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일상의 곳곳에서 ChatGPT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좋은 광고는 말하지 않고, 느끼게 한다는 광고의 불문율을 직접 보여주는 사례다.
옥외광고에서도 같은 전략이 이어진다. 사진작가 Samuel Bradley가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촬영한 이미지들은 ChatGPT의 필요성과 유용함을 설명하기보다는, 일상의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누군가는 ChatGPT를 이용하며 즐거워하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며 이용하는 모습이다. 아니, ChatGPT를 이용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다. ChatGPT를 활용하며 우리 일상이 어떻게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이것이 바로 이번 캠페인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오픈AI의 전략이 얼마 전 공개된 앤스로픽(Anthropic)의 캠페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는 것이다. 2025년 9월, 엔트로픽은 'Keep Thinking'이라는 브랜드 캠페인을 공개했다. 광고 에이전시 Mother와 함께 제작한 이 캠페인은 Claude를 '문제 해결을 위한 AI'로 포지셔닝한다.
90초 분량의 메인 영상은 ‘problem(문제)’이라는 단어가 코드, 인쇄물, 타이포그래피 등 다양한 매체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고속 몽타주가 긴장감을 높이며, 영상은 대체로 어두운 분위기이다.
#앤스로픽의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
이 캠페인에서 앤스로픽은 AI의 등장을 기술적 진보가 아닌 철학적 사건,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묘사한다. ‘문제를 해결하기에 지금보다 좋은 시대는 없다’는 메시지는, 인류가 풀지 못했던 난제를 다시 마주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래서 광고 속에는 DNA 나선 구조, 우주적 스케일의 시각 이미지가 등장하며, 메시지는 “계속해서 생각하라(Keep Thinking)”로 귀결된다. 거대 담론과 철학적 사유가 중심을 이룬 캠페인이다.
하지만 오픈AI의 접근은 이와 정반대다. 엔트로픽이 ‘인류적 담론’을 다뤘다면, 오픈AI는 ‘개인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엔트로픽이 ‘미해결의 거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오픈AI는 ‘소소한 도움’을 이야기한다. 엔트로픽이 ‘인류 전체’를 향했다면, 오픈AI는 ‘한 사람의 시선과 감정’에 집중한다.
오픈AI의 광고는 클로즈업된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세밀하게 드러낸다. 기술의 비전보다는 인간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즉, 엔트로픽이 AI를 “생각의 확장”으로 표현했다면, 오픈AI는 AI를 “삶의 확장”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철학이 아닌 체감, 인류가 아닌 개인, 이것이 두 브랜드 캠페인을 가르는 근본적 차이다.
둘 중 어느 것 하나가 옳다거나 광고적 스킬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캠페인이 지향하는 바가 상반된다는 것을 봐야 한다. 엔트로픽은 2021년 OpenAI의 핵심 연구자 7명(Dario와 Daniela Amodei 남매 포함)이 떠나 창업한 회사다. 그들은 강력하면서도 인류에게 안전한 AI를 구축한다는 긴급하고 심오한 도전에 이끌렸다. 이러한 철학은 캠페인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Claude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복잡한 문제를 함께 사고하는 파트너로 제시된다.
반면 오픈AI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주 7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지난해보다 4배 증가한 것이다. 지난 6개월간 2억 명의 사용자가 합류했다. 시장 리더로서 오픈AI는 더 넓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전략을 선택했다. 기술의 복잡함보다는 일상에서의 접근성을, 거대 담론보다는 개인의 작은 성취를 강조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국 회사와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일 수 있다. 혹은 시장의 리더십을 가진 곳과 후발 주자로서 이야기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공감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될 수 있었는지는 오로지 시장이 평가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다른 전략을 활용한 각 사를 비교해 보고, 이들 브랜드가 가진 속내는 무엇일지 유추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나의 추측과 일치하는지 따라가 보면 흥미로운 공부가 될 것이다.
우리가 화면 속 인물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 인물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인간 뇌의 생물학적 설계 때문이다. 오픈AI는 바로 이 본능을 정교하게 활용해 캠페인을 설계했다.
그들의 광고는 AI의 기능이나 성능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ChatGPT를 사용하는 사람들. 즉, 우리 각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화면은 기술이 아닌 사람을 비춘다. 그리고 인물의 미묘한 표정과 일상의 순간을 통해 AI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결국 OpenAI는 AI를 말하지 않고, AI가 만들어낸 인간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결국, OpenAI가 택한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ㅇ 본능 활용 – 얼굴, 특히 클로즈업은 인간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끄는 도구.
ㅇ 감정을 보여주기 – 설명하지 말고 느끼게 하라. 미묘한 표정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강력.
ㅇ 개인에게 말하기 – 한 사람의 작은 변화로 더 큰 공감 이끌기.
ㅇ 맥락을 제공하기 –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점차 줌아웃하며 스토리 전달.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ChatGPT에 전송된 메시지의 70% 이상이 개인적 용도였다.**** 이는 대형 언어 모델이 업무 보조 도구를 넘어 일상의 동반자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픈AI는 이 흐름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그리고 ‘클로즈업’이라는 오래된 영화 문법을 통해, AI라는 최첨단 기술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기술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대한 기술 비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을 크게 비추는 것일지 모른다. 가장 인간적인 순간이, 가장 강력한 기술을 완성하는 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 자료
*Chang, Le; Tsao, Doris Y. (June 2017). "The Code for Facial Identity in the Primate Brain"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8088389/
**Moulson, M.C.; Balas, B.; Nelson, C.; Sinha, P. (2011). "EEG correlates of categorical and graded face perception"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3290448/
***Think with google
**** How people are using ChatGPT
(Approximately 30% of consumer usage is work-related and approximately 70% is non-work—with both categories continuing to grow over time, underscoring ChatGPT’s dual role as both a productivity tool and a driver of value for consumers in daily life.)
https://openai.com/index/how-people-are-using-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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