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100주년 캠페인 사례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믿는다'라고 말할 때, 그 믿음의 근거는 단순히 제품의 품질에 있지 않다. 진짜 신뢰는 브랜드가 오랜 시간 동안 지켜온 일관된 철학과 진정성 있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는 단 한 번의 광고보다, 세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에서 브랜드의 진짜 얼굴을 본다. 이처럼 시간이 쌓아 올린 신뢰, 그것을 우리는 '헤리티지(Heritage)'라고 부른다.
‘헤리티지(Heritage)’는 흔히 ‘역사(History)’와 혼동되지만, 두 개념은 다르다. 역사는 그저 일어난 사건들의 기록이라면, 헤리티지는 그 역사 중 우리가 기억하고 강조하기로 선택한 가치다. 즉, 모든 브랜드에는 역사가 있지만, 헤리티지는 그중에서도 전략적으로 선별되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큐레이션 된 서사’다.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태도, 시대가 바뀌어도 유지되는 철학, 그리고 소비자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신뢰의 총합이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버텨온 브랜드는 그 자체 만으로 하나의 문화가 된다. 그 문화는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에 남는 흔적이며, 한 세대의 기억 속에 새겨진 인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헤리티지는 측정 가능한 성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History Factory가 발표한 브랜드 헤리티지 갭 리포트에 따르면, 74%의 소비자가 브랜드의 창립 스토리에 관심을 보인다.* 또한 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실린 연구에서는 헤리티지 브랜딩이 제품의 매력을 높이고, 특히 기존 제품의 정체성·연속성을 강조할 경우 소비자 평가가 더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헤리티지’라는 게 브랜드가 스스로 주장한다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오직 소비자가 인정할 때에만 존재한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 시간이어온 명품이라고 주장한다한들 고객이 명품으로 인정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다면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헤리티지는 소비자의 기억 공간 속에서 시간의 퇴적을 통해 통해 만들어진 무형의 신뢰다.
그러다 보니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는 그것을 고객에게 알리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데 활용하고 싶어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러한 헤리티지를 적극 활용해 브랜딩을 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뉴요커의 사례다.
2025년, 미국의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1925년 창간된 이 잡지는 한 세기 동안 저널리즘, 문학, 삽화, 만평으로 문화 담론을 정의해 왔다. 한 세기를 버텼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뉴요커는 그 오랜 시간을 단 60초의 영상으로 응축해 보여주고 있다. "Everything, Covered — 100 Years of The New Yorker".라는 제목의 헤리티지 영상을 통해 말이다.
이 영상은 지난 100년간 뉴요커가 발행한 5,000여 장의 표지 가운데 약 700장을 한데 모았다. 1925년, 창간호에 등장한 일러스트 '유스터스 틸리(Eustace Tilley)'로 시작해, 정치 풍자부터 사회적 이슈, 도시의 일상까지, 한 장 한 장의 표지가 시대의 기록처럼 흐른다. 영상 속 내레이션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변할수록, 우리는 잠시 멈춰 세상을 더 명확히 보고 싶어진다. The more everything around you is changing, the more you want to stop and see things clearly.
이 짧은 문장은 뉴요커의 철학을 압축하고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지만, 변화를 꿰뚫는 본질은 무엇인지 바라보는 태도. 바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지금의 뉴요커를 있게 만든 건 아닐까. 뉴요커는 영상을 통해 단지 100주년을 축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한 세기를 관통하는 시선의 일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시대마다 다르게 변했지만 동시에 같은 자리에 서있었다는 사실 그 차제를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헤리티지는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 고객에게 전달된다. 브랜드가 스스로 스스로 "우린 위대해요"라고 외치지 않아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정말 긴 시간 동안 가치를 지켜왔구나!”라는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게 바로 진짜다.
많은 브랜드가 자신들의 전통과 유산을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의 영광을 나열하다가는 자칫 밥맛떨어진다는 올드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반대로, 과거를 겸손하게 남겨둔 채 새로움을 강조하면 브랜드의 뿌리가 약해진다. 중요한 것은 그 둘 간의 균형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연구***는 헤리티지 브랜딩의 리스크를 지적하기도 한다. 역사적 연속성을 강조하는 헤리티지 브랜딩은 소비자들에게 '연속성 진정성(continuity authenticity)'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그 때문에 헤리티지 브랜드가 신제품을 내놓거나 혁신을 시도할 때 오히려 소비자의 부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극복할 방법은 있다. 연구자들은 혁신적 제품이 브랜드 기존 철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헤리티지는 자랑이 아니라 관점이어야 하는 것이다. 일관된 관점 속에서 행동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헤리티지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유지되어 온 브랜드의 일관된 철학 그 자체여야 한다.
뉴요커는 바로 그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됐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표지 한 장 한 장 속에 깃든 시대의 공기와 미학을 통해 말없이 보여준다. 과거를 전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마치 "우리는 한 세기 동안 세상을 관찰해 왔어요.”라는 덤덤한 메시지로 들린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이건 말 다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건 헤리티지가 작동하는 조건이다. 헤리티지 마케팅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브랜드 진실(brand truth)에 대한 일관성이다. Hall & Partners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역사를 활용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그렇지 못한 브랜드의 결정적 차이는 '브랜드 진실'에 충실한가의 여부다. 리바이스(Levi's)는 1870년 창립 이래 "내구성 높은 청바지를 만든다"는 본질을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아 행동으로 실천하려 하고 있다.
둘째, 형식보다 태도다. 헤리티지를 표현할 때 과장된 연출보다 '일관된 시선'이 훨씬 강력하다. 에르메스(Hermès)는 1837년부터 이어온 전통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프리미엄 가격을 정당화한다. 샤넬은 과거를 재해석하면서도 현대적 관련성을 유지한다. 반면 로레알(L'Oréal)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헤리티지를 가진 브랜드로 보긴 어렵다. 역사를 전략적으로 큐레이션 하고 현재의 정체성과 연결하는데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뉴요커는 100년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관찰하고 있다"는 태도를 증명했다. 헤리티지는 그렇게, '시간이 만든 브랜드의 시선'으로 완성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하게 빛나는 법이다. 또한 헤리티지는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현재의 관련성을 증명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터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 브랜드는 과연 무엇을 지켜갈 것인가?” 그리고 "그 우리가 지켜가는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뉴요커의 답은 명확했다. 60초의 영상 속에서, 700개의 표지는 말한다. "우리는 세상이 변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지켜왔다." 그것이 바로 한 세기를 버틴 이유이자, 다음 세기를 향해 나아갈 힘이다.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짝이는 브랜드를 위해 마케터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이 글을 통해 잠시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참고 자료
* https://www.historyfactory.com/insights/report/the-heritage-gap-report/
** https://ink.library.smu.edu.sg/cgi/viewcontent.cgi?params=/context/lkcsb_research/article/8280/&path_info=Minju_Han_JCR_Heritage_av.pdf
****https://hallandpartners.com/perspectives/does-brand-heritage-power-or-hinder-growth-2
(brands must be consistent; taking all communications and brand storytelling back to a universal truth about that brand and why consumers should care.)
# 인스타그램 @madline.co┃마케터들을 위한 인사이트
- 제가 인스타그램을 새로 시작했어요~ 지금 구독하고 가장 빠른 마케팅 인사이트 받아 보세요^.^
- https://www.instagram.com/madline.co/
# 글쓴이의 신간 보기
# 글쓴이의 < 브런치 대상 > 글 보기
https://brunch.co.kr/brunchbook/aimk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