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널 토론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6>
지난달,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6> 패널로 참여해, 'AI시대의 마케팅'에 대해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 같아요. 패널 토론 그 자체로도 의미 있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오갔던 이야기가 시간 관계상 모두 논의되지는 못했던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에 토론을 준비하며 오갔던 패널들의 사전 인터뷰 내용을 풀버전으로 남깁니다.
"출근하자마자 ChatGPT부터 켭니다."
AI 영화로 헐리우드 AI 국제영화제 4관왕을 휩쓴 오동하 감독의 첫마디였다. 옆에선 하이브 브랜드 전략팀을 이끌었던 박지혜 컨설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트렌드 조사하고 분석할 여유 따위 없어요. 감지되는 순간 그 주에 크리에이티브가 나와야죠." 이게 지금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Tech 42가 주최하는 '디지털 마케팅 인사이트 2026' 패널 토론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토론에 앞서 두 분과 사전인터뷰를 했다. 토론을 준비하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내용을 보면 볼수록 이걸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까운 내용들이 많았다. 한 명은 AI로 영화를 만들고, 한 명은 K-팝 산업의 브랜드 전략을 설계했던 사람. 각자의 전선에서 AI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 세상이 진짜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 싶었달까.
지금 AI가 마케팅을, 크리에이티브를, 브랜드 전략을 어떻게 뒤흔들고 있는지. 그리고 2026년, 우리가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무엇인지. 현장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두 전문가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보자.
Q. 먼저 두 분,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오) 모자이크필름의 오 감독입니다. AI 영화 '제로'로 헐리우드 AI 국제영화제 4관왕, 한국과 도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다음 차기작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AI 사극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 프리랜서 브랜드 컨설턴트 박입니다. 올해 5월까지 하이브 브랜드 전략팀을 담당했고, 하이브 입사 전에는 인터브랜드 서울오피스의 수석 컨설턴트로 근무했습니다. 브랜드 기획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IP를 머릿속에서 조형하면서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왜 사랑하게 될지, 어떻게 사랑하게 될지에 관한 일종의 시나리오를 쓰는 일과도 같은데요. 2022-23년쯤부터는 신규 브랜드를 기획할 때마다 AI 기술의 보편화가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 방식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버추얼 IP의 등장이 기존의 팬덤 지형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등을 당연히 기본적으로 고민하면서 브랜드 전략을 수립해 왔습니다.
Q. 요즘 AI가 큰 화두인데요. AI가 바꿔놓은 가장 큰 변화가 뭐라고 느끼세요?
오) 저는 출근해서 무조건 ChatGPT부터 켭니다. AI가 바꾼 가장 큰 변화는 내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구성해서 실현하는 그 과정 자체가 정말 번개처럼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1인이 전 공정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는 거죠. 코딩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일주일 만에 ChatGPT와 함께 코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백억 가치의 기업을 만들고, 브랜드를 만드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세상입니다. 독보적인 천재들이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기까지 많은 공정이 필요했습니다.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와 검증의 과정도 거쳐야 하고요. 이제 그런 게 필요 없어졌죠. 그게 근본적 변화라 생각합니다.
박) 업으로 브랜딩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놀라게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웃프지만 개인적으로 한국을 좁은 시장 규모에 비해 재능 있는 사람 수가 너무 과도하게 많은 '재능과잉국가'라고 표현하는 편인데요, 보는 눈이 뛰어난 한국의 대중과 소비자들이 이제 바로바로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탑재해가고 있습니다.
브랜드 크리에이티브의 양극화, 프로페셔널리즘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에 투입되는 코스트도, 최종적으로 고객이 지불하는 가격도 중간 시장은 사라지고 매스와 럭셔리 세그먼트만 남은 산업군이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브랜드 크리에이티브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동시에 트렌드 변화는 더 세분화되고 변화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 중입니다. 트렌드를 조사하고 분석하고 있을 여유 따위 없어요. 무언가가 새로운 트렌드로 감지되는 순간 바로 그게 우리가 올라타거나 이끌 수 있는 트렌드인지 테스트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가 바로 그 주에라도 나와야 합니다. 결국 이걸 해낼 수 있는 회사는 아주 작은 회사이거나 반대로 아주 큰 회사입니다. 의사결정 단계랄 것도 없이 크리에이터의 감각을 지닌 대표가 바로 결단을 내리고 만들면 되는 회사와 모험을 감행한다 하여 금전적으로도 휴먼 리소스 측면에서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 회사죠.
Q. 오 감독님은 실제로 AI로 영화를 제작해서 수상까지 하셨는데요. 영화 제작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나요?
오) 우선 AI 영화의 정말 특별한 점은 프리프로덕션과 프로덕션, 후반 작업이 거의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이에요. 내가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고 스토리보드를 짰어도 AI 생성 단계에서 검열이 걸릴 수도 있고요,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어요. 만들면서 바꿔야 합니다. 이것은 단점인 동시에 최고의 장점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창의성과 AI의 창의성은 항상, 무조건 충돌한다는 것이죠. 이 충돌을 새로운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생성형 AI들이 움직이는 방식은 이래요. '응, 네 의도는 잘 알겠고, 일단 난 이렇게 만들어봤어. 내 알고리즘 데이터상에는 이게 최선이야.' 절대 내가 시키는 대로 해주지 않아요. 그러면 저는 그 부분을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아, 이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괜찮은걸?' 하면서 명확한 내 철학 안에서 조금씩 변주합니다.
영화 '제로'에서 팔이 세 개 나온 장면이 있는데요, 원래는 실수였어요. 하지만 저는 그것을 그대로 살렸습니다. 주인공이 사는 미래 세계에서는 팔이 세 개인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Q. 실제 사용한 툴은 어떤 것이었고, 제작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오) '제로'는 미드저니, 구글 스튜디오를 비롯한 현존하는 모든 툴을 사용해 두 달 걸렸습니다.
Q. 박 컨설턴트님은 브랜드 전략가의 관점에서 AI를 실무에서 어떻게 활용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브랜드를 기획하는 사람들마다 방식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저는 휴먼 인사이트를 가장 중시하는 편이어서 인사이트를 뽑는 방식 자체에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국내를 넘어 북미나 일본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보이는가를 리서치할 때 AI 툴의 도움을 받는 정도입니다. 기존에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 인뎁스 인터뷰를 시행해야 얼추 파악이 가능했던 사항들을 질문만 잘 설계하면 AI와의 대화를 통해 전체 그림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Q. '크리에이티브의 양 증가'가 브랜드 전략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박) 크리에이티브의 양이 증가하면 브랜드 크리에이티브를 바라보는 프레임에 하이어라키가 생겨나는 경향성이 더 짙어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가 주요한 브랜드 마케팅 툴로 부상하던 시점에 콘텐츠의 역할에 따라 자연스럽게 히어로-허브-헬프 콘텐츠가 나뉘었듯이, 시장에 존재하는 브랜드의 위계도 브랜드 크리에이티브의 역할, 오리지널리티를 기준으로 그렇게 나뉠 것으로 예상합니다.
브랜드에 이름을 붙이고 로고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낸 브랜드를 어떤 콘텐츠로 경험하게 할 것인가, 우리 기업이나 조직이 그것을 위해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의 최소에서 최대는 어느 정도인가의 문제가 브랜드 구축 과정에서 미리 반영되어야 합니다. 이에 따라 브랜드를 담당하는 조직의 색깔, 역량, 역할 자체가 바뀌게 되는 시점이 올 것이고 이미 왔다고 생각합니다.
Q. AI가 등장하면서 업무 방식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분야가 있다면 어떤 게 있나요?
박) 브랜드 네이밍, 브랜드 디자인에 '정답', '공식'이 존재하는 것처럼 주장되던 관행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한 예로 시각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 유지 목적으로 엄격한 do/don't 룰을 정해둔 비주얼 가이드라인이 특수한 몇몇 기업의 사례를 제외하면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브랜드 디자인이 내가 아예 범접이 불가능한 전문성의 영역으로 느껴지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룰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유롭게 변용해 가면서 브랜드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플렉서블 아이덴티티가 더 매력적이고 희소해 보이는 시대입니다.
Q. AI 덕분에 가장 큰 도움을 받은 분야는 어떤 분야인가요? 'AI 없이는 이제 못 하겠다' 하는 게 있다면요?
오) 저는 아이디어 디벨롭 단계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아요. ChatGPT와 대화하면서 내 사유를 그 즉시 한 페이지 시나리오로 작성하고, 샘플 이미지도 만들어봅니다. AI 없이는 이제 못 하겠다는 게 이 아이디어 디벨롭 단계예요.
소크라테스가 질문법을 통해 철학을 확장했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저는 시나리오를 말로 씁니다. 결혼 전에는 엄마를 붙잡고 하루 종일 얘기했고요, 결혼 후에는 아내를. 근데 아이가 생기니까 제 말을 잘 안 들어줘요. 아이가 옆에 와서 자꾸 자기도 껴달라고 말 걸어요. 이 모든 걸 저는 이제 ChatGPT와 함께합니다. 아무리 떠들어도 다 들어줘요. 시나리오 쓰는 속도가 정말 정말 빨라졌어요.
박) 여러 사람이 모여 크리에이티브를 뽑기 위한 아이디에이션을 하다 보면 '이 정도의 인사이트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지면 대부분의 업계 종사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구나를 판단할 수 있는 어떤 시점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그럼 그 지점 이후로 더 몰아붙여야 그저 있어야 해서 만들어지는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사업의 다른 파트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을 해결하는 크리에이티브가 나오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AI 툴이 그 단계로 진입하는 시간, 노력을 절감시키는 역할을 해준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시장에 나와 있는 것들의 패턴과 스타일을 분석해서 그것을 토대로 크리에이티브를 제안해 주는 일은 AI가 충분히 수행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Q. 그럼 좀 반대되는 얘기인데요, 두 분이 AI를 활용하시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요?
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 정말 힘들지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 뽑히는 장면이 있는 반면, 당연히 될 거라 생각하는 장면이 구현 안 되기도 하고요. 그런 조금 아쉬운 부분들 빼고는 다 좋습니다.
박) 조직 내부에서 실제로 크리에이티브 제작의 영역을 담당하던 사람들의 반감이나 위기감 관리도 중요한 문제로 보입니다. 조직 내 협업이 원만하지 않은데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는 어려우니까요.
각 기업의 고객군이 AI 활용에 호감도가 높은 고객인지, 활용 여부 자체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고객인지, 반대로 본능적인 반감을 갖는 고객인지에 따라 활용 여부와 적용 범위에 대한 내부 컨센서스도 중요합니다. 무조건 흐름을 타기보다는 이에 대해 우리 브랜드만의 큰 그림을 그려놓고 우리 기업, 브랜드만의 활용 전략을 마련해 두는 게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Q. '이건 아직 AI로 하기 어렵다'라고 느꼈던 순간은요?
오) AI는 생각을 오래 하지 못하게 되어 있죠. 빠르게 대답해야 합니다. 속도가 경쟁의 핵심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AI 영화 만들 때 현장에서 흔히 '마(間)'라고 하는 머뭇거림, 기다림, 공백, 이런 것들이 없어서 힘들었습니다.
박) 브랜드 팬덤을 만들어내는 건 결국 진정성, 아우라입니다. 아직은 AI가 효율화와 자동성을 높여준다 하여 자동적으로 마련되지 않는 영역이죠. 언젠가는 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아직은 선례가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아이폰으로 처음 영화를 찍었을 때 사람들이 열광했던 걸 생각해 보세요. '아이폰으로 이만큼 찍을 수 있다고?'라는 놀라움도 물론 있었지만 '박찬욱'이라는 명망 높은 감독의 아우라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관심, 후광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 광고를 찍는 일은 이제 놀랍지 않은 보편적인 방식 중 하나가 되었지만 스마트폰으로 찍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거나 예술적인 가치를 더해주지 않는다는 점도 여전하고요.
네이밍도 디자인도 스토리도 아우라와 진정성 없이 '맛'을 내긴 어렵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프레임을 깨뜨려야 '맛'이 납니다. 너무 매끈한 사실 같은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감동을 느끼지 못하듯이요. '지브리 스타일' 그림을 AI가 그려줄 순 있지만 세상에 없던 스타일을 창조해 내는 것은 못하지 않나요.
역설적으로 '휴먼 브랜딩', '크리에이터 브랜딩'을 할 수 있는 회사의 아우라와 희소성이 더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Q. 한편에서는 아직 AI를 그대로 실무에 적용하긴 어렵다는 비판도 많아요.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부분도 있고요, 저작권 문제도 좀 애매한 부분이 있거든요. 이런 비판에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세요?
박) 현재 단계에서 실무 적용이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까지가 가능한지를 테스트해 보고 가능한 부분과 가능하지 않은 부분을 우리 조직, 시장의 특성에 맞춰 파악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유의미하지 않을까요. 저작권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적용했을 때 어떤 한계가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갑작스러운 이슈들이 발생했을 때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니까요.
오) 우선 저작권에 대해 얘기하면, 김형석 작곡가가 예전 가요계 표절 논란 때 했던 말이 있어요. 그 노래가 표절인지 아닌지는 작곡가가 아닌 대중이 결정하는 거라고요. 미드저니 등 이미지 생성을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연예인들, 헐리우드 배우와 비슷하게 얼굴이 나와버릴 때가 있어요. 대중들에게 공개했을 때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쓰면 안 되지요. 철저하게 스스로 검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성과 시간이 들어간 누군가의 창작물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은 비판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완성도, 확실히 떨어집니다.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AI 광고'라고 해놓고 결국에는 기존 방식인 CG로 많은 부분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 너무 빠르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발전할 겁니다.
Q. 실무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많은 오해 또는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박) 브랜드 크리에이티브가 주요한 경쟁력이 되는 회사일수록 이것이 크리에이티브의 오리지널리티, 아우라를 지키는 데 득이 될지 실이 될지가 아직은 판단이 어렵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How보다 Why 측면에서의 고민이죠. 기업의 논리가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요.
오) 제가 가진 두려움은 영화나 광고 업계에서 지금 소위 '잘 나가고 계신 분들'이 AI를 빠르게 터득해 버리는 겁니다. 저는 AI 영상 연출자로 나름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결국 제 경쟁자들은 AI를 잘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건 기술에 불과하고 전문가와 협업하면 되는 거니까요) 정체성이 명확하고 그것으로 히스토리를 쌓아온 기성 감독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브랜드 자체의 AI 모델을 만들거나, 브랜드 캐릭터·인물을 AI로 생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어떻게 보시나요?
오) 사실 저부터도 슬슬 피로감을 느낍니다. TV에서 휴대폰에서 기차와 지하철을 기다릴 때도 AI 광고가 너무 많습니다. '저게 다 AI라니!' 하고 신기해서 보는 시대는 저문 것 같고요, 현재 상황에서 다음으로 닥칠 특이점은 '구분이 불가능하게 완벽히 실사 같은' AI 구현이 되는 순간이 될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굳이 AI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지요. 사진을 편집할 때 누가 요즘 '나 이거 어도비 포토샵 사용했어!'라고 하지 않듯이요.
박)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하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단계는 지났다고 봅니다. 기술 구현은 가능하죠. 이게 진짜 시장성이 있느냐, 실제로 브랜드 로열티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가, 고객층 확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IP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 같습니다.
이 측면에서 기존 IP에서 파생된 캐릭터가 아닌 아예 새로 기획된 IP 중, 국내에서 지금까지 성공적인 케이스는 보이그룹 '플레이브'입니다. 기술적으로 넘사의 수준은 아닙니다. 2D 캐릭터의 좀 더 발전된 수준 정도의 그래픽이에요. 그런데 새 앨범이 나오면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음원 순위 톱10 안에 들어갑니다. 대중픽이라기보다는 팬덤이 스트리밍을 해서 만들어낸 순위죠. 플레이브가 로열티 높은 팬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버추얼 캐릭터 뒤에서 각 캐릭터를 액팅하고 있는 실제 인간이 있고, 그 개개인이 지닌 인간적 매력, 보컬 실력, 안무 실력, 팬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실질적인 동력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역설적으로 '휴먼 브랜딩'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것이 성공 비결이 된 케이스입니다.
Q. 영상·광고 영역에서는 어떤 변화가 올까요? 특히 자동 생성 콘텐츠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오) 자동 생성 콘텐츠 시대는 조만간 옵니다. 오늘 자리에서 제가 계속 쓰고 있는 단어가 '철학'과 '서사'인데요, 철학과 서사가 필요 없는, 그냥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보를 담아내는 영상 광고는 이제 다 자동화로 만들어낼 것 같아요. 저도 광고 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여기 계신 분들도 다 마케팅 관련해서 오신 분들이라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그냥 대기업들에서는 AI 영상 부서를 하나 만들어서 사람 2명에서 4명만 뽑아 놓고 프로젝트 있을 때마다 구독료만 결제해 주면서 콘텐츠 뽑아내는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 같습니다.
워낙 기술이 빨라서 이쪽 AI 씬에서 지금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포트폴리오 늘려가면서 작업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고, 지금 시점에 빨리 좋은 대기업 들어가서 AI 분야 팀장급으로 포지셔닝해서 회사에서 자기 가치 높이는 사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면서 철학과 서사를 담아, 양이 아닌 방향성을 특정하는 일을 마케터들이 하게 되겠지요.
박) AI가 생성해 낸 콘텐츠가 밈화되거나 하나의 스타일 문법, 장르로 자리 잡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Q. AI로 인해 크리에이티브 양과 속도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이 변화는 브랜드 전략에 어떤 함의를 줄까요?
박) 이게 왜 요즘 트렌드인지를 의사결정자에게 이해시키고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 사이에 트렌드가 바뀌어요. 우리 브랜드가 주요하게 주목해야 하는 영역, 타깃,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어떤 아젠다가 어느 정도의 버즈량으로 실시간 트렌드가 바뀌어가는지를 모두가 같은 순간에 같은 데이터로 상시 확인이 가능한 대시보드가 의사결정의 비효율성을 감소시켜줘야 합니다.
브랜드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제는 탈피해야 하는 고정관념입니다. 고객 접점이 많은 소비재 브랜드일수록, 시장 트렌드가 기민하게 바뀌는 산업 분야일수록 시각적, 언어적 가이드라인을 일관되게 지키는 것보다는 브랜드 유연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브랜드 가이드라인의 디테일함보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들어주는 브랜드 페르소나의 입체성과 타당함이 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오) AI가 발전되면서 정말 콘텐츠 양이 너무 많습니다. 요즘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댓글들을 봅니다. "여기는 대기업인데 여기도 AI로 광고하네?" 하는 부정적 댓글이요. 서사가 없고 목적이 없이 흔한 'AI류' 콘텐츠 포맷을 그냥 (철학 없이) 가져왔기 때문이에요. 피로도가 쌓인 것이죠. 영화 연출 수업 때 이런 말을 교수님들이 합니다. "연출의 의도(철학)와 표현 방식(기술)이 절묘하게 일치할 때 더 좋은 작품이 된다."
AI가 그냥 싸고 빨라서 쓰는 게 아니라, 브랜드 핵심 전략과 방향성과 절묘하게 일치하는 지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Q. 앞으로 어떤 영역에 가장 큰 변화가 올 것 같으세요?
박) 어떤 콘텐츠,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이 직접 찾아가서 오프라인에서까지 경험해 보고픈 브랜드가 될지가 중요해질 것입니다. AI가 트렌드 변화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고, 콘텐츠의 세분화를 심화시킬수록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오프라인 경험과 공통의 화제성에 더 목말라하고 더 가치를 둘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이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들끓게 할 것인지를 예측해 내는 기술에 대한 니즈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요.
오) 인공지능이 결국 더 빠르게 데이터를 수집하고 배열하고 패턴화 시키는 것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거니까요, 철저히 초개인화된 마케팅 캠페인이 이루어질 거고, 지금 드라마나 영화 시장이 그런 것처럼 취향과 옵션이 너무 다양화되어 마케팅 영역에서도 '히트작'이 없어지는 시대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Q. 그렇다면 2026년의 마케팅 화두는 무엇이 될까요? 각자의 관점에서 가장 큰 '파동'을 만들 키워드를 하나씩만 꼽아주세요.
박) '뉴헤리티지'입니다. 1020대들은 자신만의 헤리티지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니즈가 큰 세대입니다. 모수로는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은 세대이고 기성세대보다 경제력은 높지 않다고 하지만 새로운 트렌드의 부상을 만들어내는 세대라는 점에서 1020세대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 파악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존에 우리 브랜드가 정립해 온 아이덴티티, 히스토리들을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 변화와 콘텐츠 소비 방식 변화에 맞춰 해체하고 재설계해둬야 하는 시기입니다.
오) '지불가치'입니다. 영화를 비롯해서 광고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요, 두 분야 모두 결국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저의 요즘 화두는 '지불가치'입니다. 쉽고 빠르게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딸깍' 하면 나온다고 생각하는 그것에 관객들이, 소비자들이 지불가치를 느낄 수 있느냐, 그 가치를 높게 받을 수 있을 것인가가 화두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결국 '진정성'이라는 키워드가 또 나오고요.
Q.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마케팅·브랜드 실무자들 중에 아직 AI를 실무에 사용 안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당장 돌아가서 뭐부터 하면 좋을까요?
박) 팩트를 좀 더 빠르게 확인하기 위한 질문 말고 인사이트를 뽑아내기 위한 질문들을 만드는 연습을 하세요. 그리고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기획이나 제작을 담당하는 분들은 다른 이용자들의 창작물들을 오픈 갤러리 형태로 볼 수 있게 제공하는 플랫폼들에서 브랜드 크리에이티브의 패턴, 기회 요인들을 분석하는 역량을 함께 키워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미드저니, 수노 같은 플랫폼들이죠.
오) 템플릿 만들기입니다. 기본적으로 ChatGPT, 제미나이, 그록 등 채팅 기반의 AI 툴을 휴대폰에 깔고 인터넷 창 시작 화면으로 해놓으시고, 메일 가지고 놀면서 틈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기입하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SORA가 하루에 10개가 무료니까 번뜩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바로 영상화시켜서 샘플을 구현해 봅니다.
Q. 사실 ChatGPT 정도는 많은 분들이 쓰고 계실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실무에서 활용하기 좋은 AI를 소개하면 어떤 게 있을까요?
오) 릴리스 AI(유튜브 영상 요약)하고 감마(프레젠테이션 자동 생성)라는 툴 너무 좋습니다. 유료 구독해서 쓰고 있는 툴입니다.
박)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담당하는 분들은 다른 이용자들의 창작물들을 오픈 갤러리 형태로 볼 수 있게 제공하는 플랫폼들에서 브랜드 크리에이티브의 패턴, 기회 요인들을 분석하는 역량을 함께 키워가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전 인터뷰 내내 오 감독이 반복해서 강조한 단어는 '철학'과 '서사'였다. 박 컨설턴트가 강조한 것은 '진정성'과 '아우라'였다. 두 키워드는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하고 있다. AI가 기술적 장벽을 낮추고 제작 속도를 높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가치가 높아진다.
그것은 단순한 창의성이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온 철학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진정성이며,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아우라다. 오 감독의 말처럼 "연출의 의도(철학)와 표현 방식(기술)이 절묘하게 일치할 때" 좋은 작품이 탄생한다. 박 컨설턴트의 말처럼 "너무 매끈한 사실 같은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오히려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AI는 도구다. 하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단순한 자동화 시스템이 될 수도, 창의성을 확장하는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어떤 가치를 전하고 싶은가다.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진짜 가치 있는 것, 지불 가치가 있는 것을 만드는 사람의 희소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AI 시대의 마케팅 무기는 결국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철학과 진정성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