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18 8시 56분 카페 빈어스
예전에 작성했던 관찰 글들이 있는데 다시 한번 읽어보니 글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 것 같다. 또 다시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브런치에 올려놓고 보존시키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매거진을 만들어보았다. 수정없이 날 것 그대로.. 풋풋하게 쓴 글은 또 그대로 순수한 맛이 있는 거 같다.
먼저 앞으로 내 묘사 과제에 자주 언급하게 될 빈어스에 대해 간단히 서술을 하자면 이곳은 커피 주문을 받는 일층과 이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낮은 반층 정도 높이에 있는 테라스로 이뤄져 있는 꽤 큰 카페다. 여기 반층 높이의 테라스에는 컴퓨터를 쓸 수 있는 바 형식의 테이블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관찰을 하고 있다. 이 바 형식의 테이블을 기준으로 정면과 오른쪽에는 온통 유리 창문들로 이루어져 거리의 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테이블 정면으로는 건물 안쪽으로 유리가 들어와져 있어 밖으로 뚫려있는 테이블이 3개 정도 놓일 수 있는 야외 테라스가 있어 담배를 필 수 있다. 테이블의 왼쪽으로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뿜고 있는 짙은 회색 메뉴판이 높게 걸려져 있는 주문을 받는 공간이 있고 뒤쪽은 건물 내부와 맞다아 있는 곳이라 밝은 황토색의 나무로 만든 대문으로 막아 놓았다.
여기의 인테리어는 공장 내부의 모습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어 있는데 대부분 회색의 구조물로 구성되어 있다. 카페의 주문받는 곳의 벽은 회색의 벽돌들로 형성되어 있으며 앞과 뒤에는 총 6개의 빛바랜 회색의 기둥들이 위치해 있다. 위쪽을 바라보면 더욱더 공장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데 5m 정도 되는 높은 천장에는 짙은 회색의 공장 배기관들이 여러개 이어져 있다. 여기의 조명들은 어린왕자에 나오는 가로등의 불빛처럼 바랜 주황색이 군데 군데를 빛추고 있어 더욱 더 영국의 오래된 벽돌 공장을 연상시킨다. 천장의 한 가운데에는 사람의 얼굴만한 원형의 유리 볼의 조명들이 * 모양로 포개어진 검은색 막대기들 밑으로 높낮이가 다르게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포도알처럼 같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 곳은 근처에 상당히 큰 교회가 있어 일요일에는 기독교인들이 자주 모여 바글바글 할 때가 많다.
오늘은 누구를 묘사해볼까 살펴보다가 문쪽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는 한 가족 세명이 내 눈길을 끌어 들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핫핑크의 레이스 달린 원피스를 입은 4, 5살 되어 보이는 볼살이 오를대로 오른 어린 여자 아이에게 시선을 뺏긴 것인데 마치 아기 공주가 난생 처음 회색 공장을 방문한 것 같이 아이는 이곳 분위기와는 너무나 다른 핑크색 아우라에 둘려쌓여 있어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다. 머리는 어머니가 아주 단정하게 빗어주었는지 옆 왼쪽의 가르마가 보일 정도이고 쪽머리를 한 왼쪽 가르마 반대쪽에는 원피스와 같은 핑크 색상의 아주 예쁜 꽃 모양의 삔을 꼽고 있다. 아이는 처음 와본 이 칙칙한 세계가 이상하기라도 한건지 궁금하다는 듯이 갑자기 의자 위로 올라서더니 주위를 한번 쭈욱 둘러본다. 아이는 일어선 채 몸을 한번 옆으로 기울이고 난 다음에 이제는 테이블 위에 무엇을 발견했는지 시선을 밑으로 내리며 다시 천천히 앉는다. 그러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던 핸드폰을 가로로 살짝들어 한손으로 입을 한번 닦고 동영상인지 계속 핸드폰 화면을 조용히 들여다 보고 있다.
아이는 다시 핸드폰을 그 작은 한 손으로 테이블 위로 들더니 세로로 돌려 계속 쳐다보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뭔가 재밌는 것을 보았는지 갑자기 다른 한손으로는 책상을 두들기며 신난 기분을 표현하고 있다. 또 뭐가 그리 신나는지 이번엔 아빠 쪽으로 미소를 한가득 품고 쳐다보며 꺄르르 웃는다. 핸드폰을 아빠에게 보여주더니 자신이 재밌게 본 것을 다른 한손으로 허공에 표현하며 설명한다. 설명을 할 때 그녀는 웃음을 멈추고 어린아이 답지 않게, 대신 정말 한 왕실의 아기 공주가 된듯같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한다. 그런 아이를 아빠는 귀엽다는 듯한 표정으로 살갑게 바라본다.
아빠가 자리를 잠시 뜨려고 하자 열심히 핸드폰에 몰두해있던 아이는 갑자기 그 작은 손으로 아빠의 흰티 밑부분을 습관처럼 붙잡으며 가지 말라고 주먹진 손을 베베 꼰다. 아빠는 잠시 옆 단상에 있는 빨대를 가져가려고 하는 것뿐인데 딸아이는 꽁꽁진 그 작은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아빠는 겨우 그 손을 떼어 내려놓으며 자리를 잠시 떠난다. 그러면 딸은 아빠보러 가지말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아빠를 따라갈 줄 알았는데 아이의 눈길은 그새 다시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단지 딸아이의 습관일 뿐이었나보다. 아이는 한손으로 들고 있던 핸드폰이 무거워졌는지 이번에는 책상에 내려놓고 한손으 화면을 틱틱 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테이블에 직각으로 세워 올려놓더니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다.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아이의 엄마는 대화 상대인 맞은편 남편 쪽으로 상체를 많이 기울인 채 대화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녀는 마치 그동안 살림살이를 하랴 바빠 남편과 못다했던 수다를 오늘 폭포수처럼 다 풀어내겠다며 결심한 모양이듯 하다. 그녀의 입은 보트에 모터를 달은 것 처럼 쉴새없이 모든 이야기들을 하염없이 쏟아내고 물결을 일게 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에겐 마침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다는듯이 두손도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허공에 휘두르며 노를 젓는다. 그녀는 두손을 앞으로 내놓으며 무언가를 피력하기도 하고 한번은 남편쪽으로 손가락질도 하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열손가락을 쭉 펴서 설명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어놓으며 끊임없이 가슴 속 이야기들을 토로해나가다 또 갑자기 자신의 손을 양쪽으로 원을 그리며 열정적으로 남편에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그녀는 또다른 세계에 빠져있어 눈에는 옆 아기공주 딸내미도 보이지 않는다.
반대편의 아이의 아빠는 가끔씩 몇마디를 던질 뿐이다. 대부분 아내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말들이다. 그는 약간 땅딸막한 유럽의 남자를 연상시키는데 두더지 같이 생겼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수다를 떨던 엄마는 이제 한 박자 쉬어야 겠다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떠난다.
엄마가 떠나고 나니 아빠는 이제야 딸이 눈에 들어오는지 딸에게 고개를 숙여 무엇을 조근히 물어본다. 딸은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며 아빠의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더니 못이기겠다는 듯이 아빠 볼에 뽀뽀를 한다.
화장실을 다녀온 엄마는 이제 모든 것을 다 토해 냈는지 이번엔 딸에게 시선을 돌려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건다. 하지만 딸은 엄마가 물어보는 질문에 새침한 표정으로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며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러더니 아이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뒤로 빼고 갑자기 웃는다.
작은 손으로 밀수도 없는 문을 밀다가 다시 엄마가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