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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Oct 19. 2020

난 언제부터 나를 꾸욱 눌러서 우울을 낳았는가

Ep. 09 심리 상담을 시작하였다.

7/14

서울 심리지원 서남센터 화상 상담을 받았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짜증 욱하나 서운한가 하루 중 언제 어떨 때 다운되는지 관찰해보기 꿈 기록해보기

평상시 자기 성찰 잘하는 스타일 같다


7/15

아내가 어디 강의 들으러 가서 잘나 보이는 사람들 속에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하니 기분이 우울해진다. 내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든다.  


인스타그램에 작가들이 친한 거 보면 부럽다

서로 좋아요를 눌러준다

아니 좋아요를 한다고 친한 것도 아닐 텐데

부럽고 슬프다


모기 때문에 짜증 난다

짜증이 나면 명치가 답답해진다


 커튼봉이 떨어져서 다시 달았다 그런데 핀을 하나씩 하나씩 꽂는 게 개 힘들었다 점점  


7/16

저녁 하려던 아내가 내가 자꾸 부정적으로 이야기해서 할 의욕이 떨어진다면서 안 한다고 한다. 내가 어떻게 얘기했냐고 물어보니까 김치전 하는데 밀가루가 없지 않냐, 프라이팬 없어서 안 된다. 그렇게 계속 얘기했단다. 듣고 보니까 그렇다. 난 의식 못하고 있었는데 부정적으로 안된다고만 이야기했구나.  


7/17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기



7/20

일을 끝내고 대표님이 어떤 점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라는데 스트레스받았다 숙제 시험 면접 취조처럼 느껴졌다


7/22

상담 2회 차

살아오면서 많이 오래 참아왔던 것

버틸 만큼 버티다가 번 아웃하는 스타일

다음 주까지 내가 살면서 참았던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나는 뭘 그렇게 참아왔던 걸까? 내가 불쌍하다.

2, 30대 때 내 마음을 잘 들어주던 사람? 누가 있지?

속 깊은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이기도 하다

슬프다.

차라리 내가 상담하면서 불평불만을 막 한다면 지금보다는 좋은 모습으로 보일 것 같다고 했다  

그랬다면 나를 보는 상담 선생님의 마음이 지금 보다는 편했을 것 같다고


-20대 때 가장 참으면서 살았던 시기는 군대 가기 전 할아버지 병간호할 때였지


7/22 진료

불안 초조 지하철 입구에서 사람이 날 칠 듯한 느낌  

먹는 건 호전

잠은 한번 깨는데 또 바로 잠이 드는 편

집중력 저하는 여전

> 불안감 호전되는 약 추가 > 속이 안 좋을 가능성이 쪼~ 금 있다.  


일을 하다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람들이 무서움

사진을 못 찍는 게 아닌가 걱정


그런데 가기 전부터 좀 다운이었다

저녁 되니까 약발이 다 됐나 싶었다


아내와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좋았다


리플릿 작업하기 싫어


긍정적인 마인드 하나

우울증 덕에 새로운 나를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된 거 아닐까?



7/26

 난 방에 혼자 있다

기분은 뭐 괜찮다

밖에서 웃는 소리가 들리면

적적함을 느낀다



7/28 상담


"지금까지 살면서 참아왔던 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살면서 지금까지 계속 죽고 싶은 것을 참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고 싶은데 죽지 못하게 하는 것들과..."


"아! 네. 그 말을 들으니까 뭔가 띵 한 방 얻어맞은 것 같네요... 그렇네요."


불만 표출을 하는 연습

뭔가 하기 싫거나 할 때 1차적으로 드는 감정 알아보기

싫은걸 참고 그냥 하는 반응에 익숙해져 있을 수 있다

리플릿 하기 싫다고 말한 건 잘한 거다

미술학원 다니고 싶다 말 못 한 건  

가난을 참아온 것.  

그렇게 참아온 것이 사진 작업한다고 지금 경제적으로 돈을 못 버니까 불안 우울이

왔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오는 움찔 내가 공격할까 봐일 수도 있다고 했다


7/30

오늘 오전 아내를 지하철에 자전거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작은 새들이 포르르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 우울에 필요한 것은 대단한 극복이 아니라 저렇게 작은 아름다움이 아닐까

커다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손에 쥐고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며

유유히 가고 있는 그 순간 앞에서 플라타너스 위로 포르르 날아오르며 반짝반짝 이는 작은 새들

윤슬 같은 작은 새들

그런 것들이 내 마음에 필요한 풍경이 아닐까


형제들 카톡 방에서

어릴 적 내가 물에 빠졌을 때 형이 춤을 춰줬던 장면을 이야기했다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형이 말했다.

"내 언제 정기가 죽을 고비가 오면 다시 보여주지."

그 말에 난 또 울컥했다.

고마웠다.


정말 그럴 때가 오면 형한테 춤춰달라고 해야지  


그럼에도 형제들에게 내가 우울증이 걸렸다는 사실을  

선뜻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형의 말이 감동스러우면서도

슬펐다.

감정은 언제나 복합적이다.



할아버지도 내가 춤추는 걸 보고 좋아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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