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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기 Nov 23. 2021

친구의 세발자전거를 타면 생기는 일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다. 가끔 만나서 별다른 대화도 하지 않지만, 긴 세월이라는 푹신한 쿠션 때문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하다. 내가 힘든 일이 있으면 묻지도 않고 도와주는 친구다. 어릴 때 친구의 집이 우리 집보다 살짝 더 잘 산 듯하다. 새로 나온 장난감을 늘 그 집에서 처음 발견하곤 했다. 이티 인형도 건담도 이 친구 집에서 처음 보았고 세발자전거도 그랬다.


우리가 만난 지 2년쯤 지난 어느 날(그러니까 다섯 살 때) 친구는 골목에 번쩍이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술이 달린 손잡이는 순식간에 총을 뽑는 만화영화 속 카우보이를 떠올리게 했다. 은빛으로 찬란한 바퀴가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의 동공을 눈부심에 움찔하게 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뱅글뱅글 도는 친구가 부러웠다. 나도 타고 싶었다. 뒤에 태워줄 만도 한 녀석인데 그날은 동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는 둘이 타는 것보다 새 자전거를 나에게 뽐내는 걸  더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무한대로 뱅뱅 돌던 친구가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지 급하게 내려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자전거가 골목에 남겨졌다. 친구 집 대문을 한번 살피고 조심스럽게 자전거로 다가갔다. 빨간 손잡이에 달린 술이 살랑살랑 내게 오라 손짓했다. 모서리가 동그란 삼각형의 안장이 싱긋 웃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집의 대문을 한 번 더 보고 쏜살같이 자전거에 올라탔다. 골목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친구가 나왔다.


“야!”



어렴풋이 흔들리는 엄마의 등이 보였다. 골목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나는 방에 누워있었다. 순간이동을 했나?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에 일어나자 장롱에 붙은 커다란 거울에 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마에 커다란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아홉 바늘을 꿰맸다고 했다.



“네가 그때 날 짱돌로 치지만 않았어도 내 아이큐가 200은 넘었을 텐데 말이야.”


“야, 내가 그렇게 충격을 줘서 사람 만들어 놓은 거거든.”


친구 집에 놀러 간 날, 추억으로 쓸데없는 농담을 한다.

그날 자기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를 보고 화가 난 친구는 골목에 있는 짱돌을 주워다가 내 머리를 가격했고 난 쓰러진 나는 엄마 등에 업혀 병원에 가면서 기절했다.


“우와 그때 내가 짱돌로 널 치고 겁이 나서 이불 뒤집어쓰고 숨어있었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엄마가 부르면서 방으로 오시는데 난 이제 죽었다 싶더라.”


“당연히 그랬겠지. 가만히 놔두면 안 되지. 우리 엄마가 다음 날 바로 세발자전거 사 주셨잖아. 어쨌든 자전거 좀 탔다고 짱돌로 치는 너랑 지금까지 친구 해주고 나 너무 착하지 않냐?”


“너 나 말고 친구 없잖아.”


..."



이마를 문질러 본다. 다섯 살 자전거 무단 시승 사건이 남긴 흉터는 시간이 발라준 약에 이미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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