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기 Jul 05. 2022

우리는 고통의 이미지에
무감각해질 수 있는가

혀가 길게 빠져나와 있다. 상의 가슴팍에는 흘린 침으로 생긴 얼룩이 크게 번져 있다. 눈은 하늘로 치켜뜨고 있다. 사진 패널은 오래되어 빛이 바랬다. 사진 속 얼굴이 더 창백해 보인다. 그 옆에 세워진 패널 속에는 뒤통수가 터진 시체가 있다. 초소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그는 턱에 소총을 기대고 있다. 이 사진을 몇 년이나 쓴 것일까? 전시 패널은 오래되어 빛이 바래었고 사진 속 시체는 옛날 군복을 입고 있다. 군대 정훈교육에서는 자살 예방 교육을 한다. 교육의 일환으로 자살로 인한 사체의 사진을 전시하고 보게 한다. 사진 속의 사람은 자신의 자살이 사진으로 고정되어 교육을 목적으로 몇 년이나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군 복무를 하면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비참한 내일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살했을 텐데 그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수많은 전쟁과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사진이 범람한들 그 충격이 사라질까? 수전 손택은 집단기억은 없다고 했다. 개인이 하나의 사진을 평생 기억할 수도 있다. 아무리 많은 사진을 봐도 다른 사진이 하나의 사진을 지울 수 없을지 모른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군대 교육 시간에 봤던 자살한 사람의 사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마음이 괴롭다. 자살한 사람의 고통을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전이되는 괴로움을 느낀다. 그 괴로움은 끔찍한 장면에 대한 충격보다는 알 수 없는 당혹감과 슬픔에 가깝다. 사진은 목적과 다르게 작용한다. 자살 예방의 효용성은 전혀 가지지 못한다. ‘지금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까 나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진을 떠올려야 하겠어’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사진을 기억하고 상기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될까? 우리는 이미지와 현실을 확실하게 분리해 낼 수 있는가? 사진 속의 고통과 현실의 고통은 분리 가능한가? 시각으로 감각되어 저장된 고통의 이미지를 현실과 구분하여 잘 정리하여 보관하고 마음대로 꺼냈다가 지울 수 있을까? 나는 저 고통의 현장에 없었으니 안심이야 하고 방관하고 저 사람들은 안됐다고 연민하고 끝. 이게 될까? 기억이 당신을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놔둘까? 무의식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가? 당신이 죽기 전까지 기억에 남는 사진이 적어도 하나는 있을 것이다. 또 기록된 이미지는 방대한 네트를 떠돌다가 언젠가 눈앞에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 그런데도 섣불리 당신이 본 고통의 이미지들에 무감각해졌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고통은 나이 들지 않는다.”

일본의 메탈 밴드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가 한 말이다. 요시키는 어려서 아버지의 자살 현장을 목격했다. 음악으로 견뎌 왔던 것 같다. 몸이 부서져라 드럼을 치고 피아노를 친다. 그래서 몸이 성한 곳이 없다. 공연 전에 손가락과 손목, 팔꿈치 마디마디에 주사를 맞고 무대에 오른다. 무대에서 근육들이 뒤틀리도록 연주하고 땀과 눈물을 흘리고 쓰러지고 기어서 내려온다. 그런데 함께 한 멤버도 자살한다. (자살로 추정되지만,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른 멤버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밴드를 떠난다. 세월이 흐르고 살아남은 멤버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빠져나온 멤버와 다시 활동하지만, 그는 분장실 거울 앞에서 읊조린다. 고통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자살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을 준다고 이제 자신 아버지의 나이를 훌쩍 넘은 요시키지만 아직도 그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고통은 나이 들지 않는다. 고통은 반복되고 반복되고 반복된다. 아무리 많은 전쟁과 고통을 보여주는 이미지들이 범람해도 고통은 그 이미지의 양을 훌쩍 뛰어넘는다. 많은 고통과 죽음의 이미지가 스펙터클로 소비되고 그 고통에 속하지 않았음에 안심하고 연민에서 멈춘다고 하더라도 죽음으로 가고 있는 삶에서 고통은 좀처럼 익숙해지거나 무감각해지기 힘든 경험이다.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고 다음 이별이 아프지 않을 리 만무하다. 기억도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이 본 그 사진도 사라진 것 같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을 뿐이다. 사진은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그러다 갑자기 불쑥 나오는 그 고통과 마주치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멍든 마음 손에 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