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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Jul 02. 2023

11년차 상반기 회고

업무적인 내용은 거의 없는 감상적인 업무 회고

옆자리 동료와 저녁을 먹고 회사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나의 페어인 이 동료와 오늘도 야근할 예정이다. "주변에 이만치 회사에 과몰입하는 사람 많아요?"라고 동료가 물었다. 동료와 나는 또래인 데다 10년 넘도록 일해 왔으니 많지는 않지만 적지는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방향으로나 뻗치는 주니어인 동료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무탈한 하루에 감사하는 시니어인 동료의 한숨이 낯설지가 않다.


요새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하고 일터에서 배운 걸 정리해서 공적인 장소에서 공유하는 게 낯설다. 몇 년 전만 해도 순간마다 느끼는 바가 크고 선명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공감을 얻고 싶었던 듯하다. 친구는 일면식도 없겠지만 회사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이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고 싶었고 웃을 일도 울 일도 많았다. 요 근래라고 해서 회사에서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역치가 높아진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다가 이제는 나 혼자만 챙겨도 되는 시절은 지난 데다 근무 강도는 어떤 면에서 더 강해졌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제주, 함덕해변이었을 거다


왜 이럴까? 제일 달라진 건 역시 내가 아닐까 싶다. 예전보다 내가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 사람인지 알고 있다. 내가 겪는 사건사고와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다르지도 소중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말하기 위해서라거나 인정받기 위해 집착할 필요도 없다. 회사를 7개쯤 다니고 나니까 정말로 "여기나 저기나 같아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너무 슬퍼할 것도 너무 기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출시가 기쁘고 내가 출시한 제품이 뛰어난 성과를 내는 일은 기쁘다. 이 글이 무색하게 아주 기쁘고 그런 기쁨으로 또 한 달을 버틸 수 있을 만큼. 함께한 동료들과 아낌없이 만끽하고 싶은데 우리만의 작은 소우주 안의 일이다. 출입증 찍고 나온 세상에서는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나의 업무능력과 성과는 출입증을 찍고 나오면 갑자기 너무 작아진다.


일을 대하는 마음도 너무나 어려운 것이 팬데믹의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맞으면서 수많은 미디어에서 근로소득에 안달복달하고 안주하는 건 바보 같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는 생각도 하고 딱히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거나 그렇게 일해도 조직에서 알아봐 주지 않는다거나 이러쿵저러쿵해서 어차피 승진도 못할 텐데 힘주어서 일할 것 없다는 말은 모두 익숙하지 않나. 그래도 이 일을 여태 해오면서 알게 된 건 어차피 1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했을 거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쩌다 보니 시작한 인턴으로 하게 된 이 직업 덕분에 성격이 많이 바뀐 게 마음에 들어서다. 제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프로젝트는 내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조직 내에서 나에게 아무리 소중한 일도 남에게 소중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얻어갈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안다. 마음 맞는 동료와 도도 어쩌면 그렇게 오래갈 인연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공유하는 맥락에도 수명이 있을 뿐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퇴사한 회사마다 친구를 남기는 편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을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해도 좋다는 거다.


종달고망난돌쉼터, 예전에도 친구이자 동료였던 사람과 다녀왔었다


모른다는 말을 하기 싫고 도저히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수가 없었던 성격에서 지금만큼 무던해진 건 이 직무를 하면서 나 스스로 건져낸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십 년씩 더했던 선배들과 이야기하면 체력도 기억력도 한계가 있어서 마이크로매니징도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하려면 어떤 커리어 방향을 고르는 게 좋을지 생각해 봐도 좋겠다. 나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나에게도 조금 더 기회를 줘도 좋을 것 같다. 다른 일도 골라 보고! 이제 이 직무에서 배운 것들은 나에게 스며든 것 같다. 설령 피치 못하게 이 일을 이어서 하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배운 것들로 새로운 일을 한다면 또 이어갈 수 있겠다 생각한다.


11년째인데 아직도 월요일이 싫을 수 있다니 이것도 꾸준하다. 어느 정도 지나면 덜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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