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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점휴업 Sep 06. 2023

1일째 그 모든 걸 다 두고 가겠다고?

: 10박 11일 시골언니@강릉 

8 영업일 휴가를 내는 건 흔히 있는 일이 아니긴 하다. 더욱이나 올해 그렇잖아도 피할 수 없는 장기 휴가가 예정되어 있는데 10박 11일 강릉행이라니 동료들에게 연신 양해 아닌 양해를 구하느라 애먹었다. 농림부 주관사업인데 귀촌을 염두에 두는 2030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면 조금 더 말이 길어진다. 주니어 한 분은 적잖이 충격을 먹은 모양인데 나처럼 IT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밀짚모자를 쓰고 농사를 짓는다 생각하니 본인이 커리어가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딱히 그런 것도 아니거니와 그만큼 진지한가 싶기도 하다. 강릉에서도 리모트를 3달, 친구 따라 금산과 서천 거기다가 몇 번씩 이런 도농 연계 프로그램은 어쩌다 보니 기웃댔다. 굳이 올해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다가 오게 된 건 이제는 더 이상 미루고 싶지가 않아서도 있다. 처음 강릉에 와서 지내면서 나도 고향이 갖고 싶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엄청 많이 했다. 말이 이상한데 1기 신도시에서 자란 반쯤 서울사람으로 나는 고향이 없다. 내가 말하는 고향은 내 뿌리가 되는 곳이고 돌아갈 수 있고 서울/수도권보다는 생활비용이 적게 들고 욕망의 수위도 낮은 곳이다. 어쩔 수 없이 감수성은 문제가 될 수 있겠다만 종종 그건 정이라는 말로 흐려지기도 해서 그런 것들까지 해서.


언제부턴가 가지거나 가질 수 없는 건 헐뜯어서 없애버린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을 아니면 그만큼의 거리가 있는 무엇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나도 가진다는 개념도 성립하지 않는 고향을 원한다는 게 그리고 어떤 그리움을 동경하는 게 신기하다. 그것도 내가 새로 나온 운동화 색이 예뻐서 가지고 싶다의 감정인지 아니면 그 감정 안에 조금 더 붙들어서 나의 것으로 만들게 있는지 궁금하다. 정확하게는 그 궁금함이 풀고 싶은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버리고 오는 게 말이 되는지 잘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욕망의 사이즈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나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간 30대 중반까지 정말 아낌없이 갈아 넣으면서 욕망을 키우거나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에 몰두했다. 그게 얼마나 갈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거기서 어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부터가 시작이 된다. 더 이상 욕망을 키우고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비교하며 자라는 방식은 잘 모르겠다. 곧게 웃자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IT 업계에서 무슨 일을 했냐 하면 면접 단골 질문이니 청산유수로 말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제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뭐냐 이 프로그램에서 나눌 수 있는 작은 재능이 뭐냐 하면 답을 하지 못한다. 해진 옷을 기울 수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 수도 없으며 고장 난 선풍기마저도 고치기 어렵다. 나의 노동력은 나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버는 값어치가 있지 그 자체로 나를 영속시킬 수가 없다. 이런 기술을 체득하고 욕망의 크기가 작은 곳에서 적정한 상태로 사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물론 이 자체가 중독과의 단절을 결심하는 일이라 단박에 될 거라고도 그리고 그 과정이 기쁘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직업을 더 잘하기 위해서 골몰하는 시간의 값어치와 앞으로의 내 인생 자체를 바뀌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 해볼 수 있는 시도를 탐색하는 것의 무게를 대하자면 나에게 지금은 후자가 더 설레는 일일 뿐이다.


내 머릿속에서 강릉으로 이주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 더욱이나 나는 귀농을 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현재의 벌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도 생각해 보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직업으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지 생각해 보려고 왔다. 그 답이 내가 이주를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나도 좋다. 하지만 끊임없이 지연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단박에 결정할까 싶기도 하고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과 쌓은 연으로 또 다른 결론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뿐. 뭐라도 해야 어떤 결론이라도 난다는 점에서 구태여 이 시간을 들여 여기에 온다.


어찌 되었건 나는 지금 내 직업이 좋다. 위에서 말한 내 에너지 자체의 방향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 외에도 그저 내가 그 직업을 오래 이어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상황이기도 하고 어떤 분수령을 만나기 전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론이야 무엇이든 언제나 강릉에 오면 새로운 마음을 선물 받는다. 내가 리모트를 하게 된 장소가 강릉이었던 건 우연이지만 그때의 시간 때문에 더 이상은 우연이 아닌 게 되어버려서 같이 가야 하는 마음이 생겼다.


여기서의 프로그램은 흙을 만지는 시간이 많고 이주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된다. 언제나처럼 어떤 문장을 건져갔으면 좋겠다. 최고의 여행선물은 문장이다. 그 문장을 만나게 한 장소는 잊을 수 없고 그건 인생에 영향을 주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강릉이 나에게 저번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뭔가를 베풀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문장을 내가 잘 다듬어서 인생에 곱게 녹일 수 있다면야 최선이겠다.


말은 거창한데 오늘은 고체치약을 직접 만들고 장 보고 하루가 끝났다. 내일부터 밭에 간다고 하니 기대가 무척 된다. 체력 비축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잠들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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