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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May 15. 2018

14. 오지라퍼가 된 개인주의자

- 시간이 되시면 차 한잔 해요.  
- 지난번에 너무 고마웠어요.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  
- 꼭 회사 오래 다니세요. 그래서 저랑 이렇게 종종 얘기 나눠주세요.  

 작년부터 잘 모르던 동료, 지인의 지인에게 종종 듣게 된 메시지다. 우연하게 직장어린이집에 발달지연 아동을 위한 케어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해달라는 건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용기를 내어줘서 고맙다는 조용한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회사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내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상위에 두고 간 동료의 마음, 우리 같이 힘내요!


 이미 내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어린이집은 나와 별로 상관없지만 영유아 시기의 발달 중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전문가와의 1:1 치료도 중요하지만 또래집단에 어울리면서 받는 학습효과와 실생활에서의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영유아 시기 통합교육은 아주 중요하다. 비장애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통합교육을 받으면 ‘다름’과 ‘함께’에 대해 실제적인 이해와 배려를 배울 수 있다. 몇 년 전, 내가 아이와 겪었던 외롭고 힘든 시행착오를 지금의 누군가는 조금 덜 겪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향적인 성향의 사람이고, 웬만해서는 타인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그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어려움에 종일 마음이 쓰이는가 하면, 처음 보는 지인의 지인을 만나 조언을 건네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아주 특별한 육아가 나를 어느새 오지라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전 직장에서 경쟁률이 높은 회사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되었을 때, 앞으로 내 육아는 탄탄대로라고 생각했다. 회사 어린이집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도 컸기에 너무 기쁜 나머지 당시 어린이집 근처로 이사도 갔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절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바로 병원을 찾고 발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이를 아껴주고 배려가 많은 선생님이 최선을 다해 보살펴주셨지만 아이 발달을 위한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늘 아쉬워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치료를 다녀와서 등원을 하는 날이면 선생님은 늘 치료사들이 어떤 가이드를 주셨는지 물어보셨고, 이런 관심과 배려가 고마워서 어떻게든 회사 어린이집과 치료를  병행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어린이집을 계속 다니기에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좀 더 집중적인 조기 발달 중재를 위해 나는 결국 퇴소를 했다.  

 만약 국.공립 어린이집과 마찬가지로 직장어린이집에서 통합교육을 운영했거나 장애아에 관한 케어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나는 계속 다녔을거다.


 나는 직장어린이집이 국공립어린이집과 마찬가지로 통합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느리다고 하면 대부분의 가정은 맞벌이 보육을 포기한다. 현실적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전문기관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거북이 아이들에게 드는 교육비용은 천차만별인데 대기 없이 바로 교육을 받으려면 대부분 고가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처음에 주 1~2회 정도로 가볍게 시작한 치료는 점점 그 횟수가 늘어가고 금전적 부담은 가정이 고스란히 짊어지는데 , 수입마저 줄어드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적인 장애에 관해서는 건강보험이나 실비보험이 커버해주는 영역이 아주 적어서 (거의 없어서) 치료 부담이 상당하다.  


 이렇게 장애가정의 부모가 맞벌이를 포기하게 되면 방과 후 수업이 특수교육 대상자를 위해서는 잘 개설되지 않는다. 대부분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치료를 가기 때문에 수요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은 결국 장애아동의 오후 케어를 가정에서 전담해야 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그러면 아이를 케어해줄 곳이 없으니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의 경력단절 고비가 다시 오게 만든다.


 내가 지금까지 다녔던 여러 회사는 모두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복지는 거의 없었다.   

 사회에서는 소득이 높다며 치료지원에 대한 커트라인을 만들고 회사에서는 울타리 밖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이 한창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안에서 숨죽여 우는 직원들에게는 관심이 적었다.


주변 동료 /지인 중, 다양한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그 힘든 여정에 외롭지 않도록 회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면 점점 더 용기를 내는 직원도 많아지고 애사심도 커지지 않을까?  나는 그 시작이 직장어린이집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이 가정을 나와 처음 만나는 외부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이 ‘우리 안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의 시작이 사회공헌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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