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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May 31. 2018

15. 너를 지켜주겠다는 약속


“점프! 점프! 성공! 와 잘한다! 오오!”


 다른 아이들보다 두발 점프를 늦게 성공한 아이를 응원하고 있었다. 신이 난 아이는 침대 위에서 열심히 폴짝폴짝 뛰어나녔고, 나는 그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었다.


사고가 발생한 건 정말 순간적이었다.


잘 놀고 있던 아이가 점프를 하다 갑자기 침대 밑으로 툭 떨어졌다. 무릎과 팔을 바닥에 짚고 엎드린 자세로 떨어져서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고, 긁힌 상처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평소 통증에 둔감해서 넘어지거나 다쳐도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외상이 보이지 않는데 자지러지게 울었다. 너무 놀라서 그런가 싶어 아이를 안고 진정시키는데 팔을 드는 동작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이미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라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그날따라 낮잠을 자지 않은 아이는 울다 지쳐 금방 잠이 들어버렸다.

 "지금 상태로 가면, 졸려서 진료도 못 받을 테니까 일단 재우고, 내일 깨자마자 바로 응급실에 가야겠어"

너무 당황스럽고 걱정이 돼서, 잠도 오지 않았다. 밤새 침대에서 떨어져도 괜찮은지를 검색해보고 아이 어깨가 괜찮은지를 살폈다. 살짝 부은 듯 보이는 어깨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일찍 잠든 아이는 동이 트자마자 눈을 떴고, 잠이 덜 깬 남편을 깨워서 소아응급실에 갔다. 아침부터 깔깔깔 웃고 뛰어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자고 하니 남편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저렇게 뛰어다니고 노는 애 데리고 응급실 가면 욕먹어"


집 근처 정형외과를 데리고 가도 되겠지만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니 모든 것이 불안했다.

'지금 뼈가 부러졌는데, 웃고 다니는 건 아닐까? 많이 아파서 더 과하게 웃는 건 아닐까'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니,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면, 좀 더 세심하게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기존에 다니던 병원의 소아응급실로 향했다.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오니, 의사는 나를 한심한 듯 바라봤다.  

"어머니, 뼈가 부러졌으면 저렇게 못 놀아요!"

"음....그래도 제가 보기에는 아이가 오른쪽 팔을 드는 게 어색해 보여요. 그쪽만 부어있기도 하고요"

"X-RAY 찍는 게 방사선도 나오고, 아이한테 안 좋아요. 그런데도 찍고 싶으세요?"


 일부러 진료를 잘 받기 위해서 민소매 옷을 입혀왔지만 의사는 아이 어깨를 한번 들춰보지도 않고, 만져보지도 않았다. 멀쩡한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아온 극성 엄마로 나를 점점 몰고 갔다.  아이는 평소보다 더 과하게 웃고 뛰었다. 어깨 쪽을 한번 만져보고 이상이 없는지 봐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아프니? 아파 안 아파?"

촉각에 예민한 아이가 대답은 하지 않고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자, 의사는 내게 아이가 말을 못 하는지를 물었다. 그때만 해도 아직 내 입으로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서투른 초보 엄마였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쏟아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꾸역꾸역 대답했다.


"얘가 싫어서 피하는 건지, 아파서 피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어머니가 원하시니까 그럼 한번 X-RAY를 찍어보죠. "

 마지못해 의사는 어깨 사진을 찍었고, 사진 판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꾸만 서러움이 몰려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의사는 급한 듯 내게 뛰어왔다.

"어머니! 어머니 말씀 듣고 찍기를 잘했네요. 여기 쇄골이 완전히 부러졌어요"


X-RAY 사진을 보니, 너무 선명하게 부러진 쇄골 모습이 보였다. 그때서야 우리에게는 정형외과 의사를 기다리기 위한 베드가 주어졌다.

 아침도 굶고 눈뜨자마자 병원에 달려와서,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의사와 실랑이를 벌이고 나니 맥이 풀렸다. 남편은 두유와 빵을 사러 가고, 아이랑 둘이 앉아있다 보니 자꾸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든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고 천장을 바라봤다.


'이 험한 세상에서 엄마, 아빠 없이 내 아이가 혼자 살아갈 수는 있을까?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아이의 웃음이 하염없이 슬펐다.

조금 지나 정형외과 의사가 내려와 어깨 붕대를 해주었고, 쇄골은 다른 치료방법은 없고 자연적으로 붙으니 틀어지지 않도록 덜 사용하라고 했다. 그리고 뼈가 잘 붙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달후 재진료 예약을 했다. 새벽부터 진을 뺀 진료는 그렇게 끝났다.


 아마, 의사가 아이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살펴본 후, 괜찮다고 집으로 가라고 했다면 나는 X-RAY촬영을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에게 장애가 없었더라면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대학병원을 찾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의사표현을 못하니까 나와 실랑이를 벌이는 시간에 잠시만 친절하게 진료를 해주었더라면, 이렇게 서럽지는 않았을텐데......

 

쇄골 골절로 어깨 붕대를 하고 다니던 여름


"괜찮아 엄마가 지켜줄게. 너의 평생을 지켜줄 수는 없지만, 세상이 너를 지켜줄 수 있도록 엄마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볼게"


  그 날, 그 응급실에서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너를 키우면서 우는 일은 이제 없을거라고, 더 단단한 엄마가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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