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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바람 Mar 26. 2020

17. 바람처럼 지나가버린 5년

장애 재판정을 받다.

2020년 2,3월 병원 투어의 마지막 날.

벌써 5년이나 지나 장애 재판정을 위한 검사결과지와 진단서를 받는 날이다.
집콕 시즌이라 매일 잠옷과 트레이닝복만 입다

 부리고 외출을 했다.

마음이 별로일 것 같은 날이니까.

이제 마스크도 잘 쓰고 병원도 잘 가는 예쁜 네가 짠한 마음

코로나 시국으로 다니던 병원 검사는 잠정 취소되었는데 주민센터는 행정절차를  3월 말까지 마쳐야 한다고 하니 물어물어 진료 가능한 병원을 다시 찾고 예약과 진료와 검사의 반복과 스트레스.

소아정신과 예약과 진료 스케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그들은 모르겠지.

보건소나 지정병원에서 검사하고 결과가 바로 주민센터와 연계된다면 사례관리도 잘 되고 부정등록도 줄고 부모도 편할 텐데 답답한 기분.


새로운 병원이나 기관을 갈 때마다 엄마인 나에게는 아이의 출생과 발달과정과 문제 상황을 적어야 하는 서류가 주어진다. 아이가 검사를 다 하고 나올 때까지 적어도 끝나지 않는 문항들. 

양식도 다 조금씩 달라서 복사해서 낼 수도 없고 이제는 옹알이를 언제 했더라 문항마다 가물거린다.

이런 것들이 매뉴얼화되어 있으면 한번 입력해두고 필요할 때 출력해서 제출하고 발달상황이나 문제 상황을 계속 업데이트해서 보관하면 차트화 된 발달 그래프로 아이의 발달상황 체크나 필요한 치료방향 분석도 쉬워질 텐데 지금은

그저 부모의 꼼꼼한 자발적 노오력만이 필요할 뿐.

(직업병인가) 게으른 나로서는 캘린더에 수면시간 기록과 약물이나 영양제 복용 기록 적는 게 최선이다.


 5년 전 받은 검사에서도 더 떨어질 것 없을 것 같은 지능 점수였는데 절반이나 낮아진 결과를 받았다. 앞에 앉은 아이의 엄마가 상처 받지 않게 설명하려 주저하며 애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느껴졌다.
작년에 차병원과 서울대병원 입원해서 MRI, 뇌파에 발달검사까지 했었고 결과는 예상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결국, 장애등급제는 없어졌지만 이전 기준으로 하면 급수도 1급으로 올라가는 기준이라고 덧붙여준 설명. (TMI)


당연한 결과다. 5년 전에는 앉으라면 앉고 순둥 해서 1시간 넘게 검사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 끄고 계속 화장실 간다고 하고  앉지를 않으니 검사가 거의 불가능해서 금방 끝나 버린다. 아이는 천천히 자라는데 성큼성큼 자라는 연령기준에 따라 검사 난이도가 올라가니 할 수 있는 것도 더 없어지고.

그래도 이제는 이 바닥 6년 차 엄마가 되니
울지도 않고 떨지도 않는구나 나도.

무뎌진 만큼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희망과 기대가 작아져버린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하고.

1급 2급 3급 장애등급제는 없어졌는데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라는 아주 괴랄스러운 표기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라고 표기된 복지카드를 받을 것이다. 차라리 이럴 거면 나는 그냥 건조하게 1급 2급이 나은 것 같다. 도대체 어떤 복지부 공무원의 감성인가. 행정편의상 구분이 필요하면 노랑, 초록 등 색을 구분해서 표기하거나 중증 경증으로 표기하든가 그것도 너무 등급제스러워서 반발이 두려웠다면 백번 양보해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장애인'이라든가. 기계번역 돌린 것도 아니고...
이 문구를 거의 매일 보게 될 당사자나 가족이 어떤 기분이 들지 상상해보기는 했을까.



사실은 안 괜찮다.
다 내던지고 도망가고 싶은데
겨우 견디고 버티고 믿는 거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몇십 분의 검사로는 알 수 없겠지만

이 아이는 호기심이 많아져서 눈이 반짝거리고

더 밝아져서 엄마에게 같이 놀자고 애교를 부리고

더 씩씩해지고 더 많이 웃으니까.

그거면 됐다고.

그래서 쓰린 결과서를 들고 오늘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왜 이만큼밖에 키우지 못했을까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본다.


아직 준영이는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다고.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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