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리즘을 통한 모더니즘 비판
이미지 출처 : www.xavierdelory.com
메인 이미지는 Visual Artist "Xavier Delory"의 작품으로,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뷔지에 대표작 "Villa Savoye"의 망가진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돌과 스프레이 페인트로 원래의 벽과 창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비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이것은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어떨까요? Delory는 파괴적인 이미지를 통해 우리 기저에 깔린 모더니즘에 대한 위선적인 숭배를 드러내며, 생각보다 모더니즘과 반달리즘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반달리즘(Vandalism) : 반달리즘은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등을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지만, 넓게는 낙서나 무분별한 개발 등으로 공공시설의 외관이나 자연경관 등을 훼손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브뤼셀(Brussels)에서 활동하고 있는 Visual Artist "Xavier Delory"는 역사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최근 작품인 "Pèlerinage sur la Modernité (Pilgrimage on Modernity)"에서는 근대의 건축 작품이 현대에서 가지는 의미를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이미지에서는 "Villa Sovoye"의 벽을 그라피티로 덮어버리고,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수평 창을 깨버리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는 "Villa Savoye"가 상징하고 있는 르 꼬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에 대한 의구심이자 도전입니다. 당대 수많은 교외 주택 프로젝트들은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 주택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작가의 비판의식이 단순히 "Villa Savoye"가 아닌 모더니즘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Delory는 "Villa Sovoye"의 네 입면을 교차로 보여주며, 관람자로 하여금 가상의 반달리즘 Vandalism
과 포토샵으로 만들어진 멋진 트롬프 뢰우(trompe l’oeil)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라피티들 사이에서 다이빙하는 상어를 볼 수 있지만, 르 꼬르뷔지에의 근대 5원칙에 대한 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트롬프 뢰우(trompe l’oeil) : ‘눈속임, 착각을 일으킴’이란 뜻으로 ‘속임수 그림’이라 번역할 수 있다. 실물과 같을 정도의 철저한 사실적 묘사를 말하며, 마니에리슴기에서 바로크기에 걸쳐 정물화와 천정화에 사용됐다. 현재는 수퍼리얼리즘이 이에 가까운 기법을 사용한다.
Delory가 만든 이 이미지는 건축의 우상화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가 충격적으로 다가온다면, 기능과 공리주의의 상징으로서의 "Villa Savoye"가 아닌,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실, "Villa Savoye"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군에 의해 차출되어 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독일군이 떠난 이후로는 미군이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근대를 대표하는 이 주택은 치명적인 손상을 입습니다. 이후 1997년, 세 번의 복원작업 끝에 우리가 기억하는 "Villa Savoye"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복원작업이 없었다면 Delory가 만들어낸 이미지보다 더 심각하게 파괴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르 꼬르뷔지에 또한 반달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바도비치Badovici의 권유로 E.1027에 머물게 된 르 꼬르뷔지에가 1938~39년에 걸쳐 건물의 안팎에 거대한 벽화를 남긴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에일린 그레이 Eileen Gray는 벽화에 대해서 듣자마자 굉장히 불쾌했으며, 혹자는 르 꼬르뷔지에의 행위를 '강간'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레이 Gray의 지지자들은 그림이 그려지기 전 1929년의 상태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르 꼬르뷔지에의 유명세가 더 컸기 때문에, 그의 벽화는 별다른 논쟁 없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후 르 꼬르뷔지에는 E.1027의 부동산을 구입하려 하지만, 끝내 구입하진 못하고 근처에 지중해 휴가 주택 Mediterranean vacation house를 지었습니다.
Delory의 프로젝트가 이미지로서 굉장히 참신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모더니즘의 어떤 부분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기존의 빌라 사보아보다 훨씬 더 생동감이랄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