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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마도 Nov 30. 2021

[삼십세끼] 아홉수는 있었을까?

스물아홉 우리들의 유행어 "아홉수라 그래"

야야 아홉수라 그래

29세 때 정말 많이 들었던 말이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아홉수라 그래"라고 했다.

어쩌면 아홉수는 큰 위로였다.

내 탓, 네 탓이 아닌 '아홉수'탓으로

돌릴 수 있었기에

 나도, 누군가도 덜 힘들 수 있지 않았을까?


'아홉수'라는 게 정말 존재할까?

나의 스물아홉에는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1.전직 후 가장 큰 위기

나중에 길게 다루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하던 일을 접고

조금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찾아 전직했다.

인생 가장 큰 결심이었고 도전이었다.

"도전은 늘 즐겁다"를 외치는 나,

긍정적인 나지만

그 도전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대표 밑에서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다.

'다시 돌아갈까?'를 백만 번 되냈다.

하지만 떠날 때의 용기보다

다시 돌아가야 할 때의 용기가 더 어려운 법.

다시 마음을 잡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던 중

최악의 오너리스크가 터졌다.

연일 매체에서 우리 회사와

대표 갑질 문제를 다뤘고

하루아침에 회사는 혼비백산이 됐다.  

지인들의 연락으로 폰이 터지는 줄 알았다.

"괜찮아?"라는 말들도

나중엔 듣기 힘들 정도였다.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는 공중분해될 위기였고

회사의 뿌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2.공황

한계를 넘긴 상황에서도

매일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꾸역꾸역, 위의 101%를 넘겼는데

계속 먹어야 하는 느낌으로 일을 했다.

어느 날 집에서 숨이 턱 막히며

숨이 안 쉬어지기 시작했다.

꺽꺽대며 숨을 마시고

엎드린 채로 핸드폰을 찾아 기었다.

겨우 119를 눌렀는데 손에서 폰이 미끄러졌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움을 요청하러 현관문으로 기어갔다.

문을 열기 직전 갑자기 숨이 트였다.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고

당장 죽을 것 같은 느낌.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혼자사는 내겐 공포 그 자체였다.

이대로 내가 숨이 멎으면

며칠 만에 날 발견할 수 있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경험이었고

그 후로도 두 차례 같은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갔다.

내과, 가정의학과, 신경과

마지막에 갔던 신경과에서

공황장애가 의심된다는 말을 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했지만

그 후로 다행히도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물아홉, 휘청이던 내게

공황이 잠시 다녀갔던 것 같다.


3.내 인생 첫 교통사고

버킷리스트를 이룰 생각에 들떠있던

29.8세에게

아주 큰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 인생 최초로 교통사고가 난 것.

출장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나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교차로를 지나 직진하던 우리 차를

반대로 직진하던 차가 그대로 박았다.

차는 한 바퀴를 돌아 고랑 앞에서

극적으로 멈췄다.

한 바퀴 뱅~ 도는 찰나의 순간

나는 기도했다.


 "하느님, 살려주시거나 죽여주세요.
  둘 중에 하나만요 제발!"

'살았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던

찰나의 시간이 끝나고

난 살았다.


상대 차는 크게 망가져 견인되었고,

나는 목과 다리를 크게 부딪혔다.

3주 동안 다리에 깁스를 했고, 입원했다.

이상하게 사고 당일엔 아픔을 느끼지 못했는데

다음날 목에 끔찍한 고통이 시작됐다.

목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고통스러운 치료가 시작됐다.


교통사고엔 완치가 없다.

지금까지도 교통사고 후유증은 나를 괴롭히고,

목 디스크 때문에

남보다 쉽게 피로해진다.

(목 뻐근함, 팔 저림,

목을 넘어서 허리까지 가는 통증)


교차로 사고는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이 정도면 운이 좋은 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교통사고는 아홉수 중에

하늘이 도왔다 싶기도 하다.


내 버킷리스트, 이룰 수 있을까?

나 홀로 유럽 여행 버킷리스트.

항공권, 숙소 예매를 앞두고 교통사고가 났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하필 목디스크에 다리까지 다쳤다.

주변에선 모두 만류했다.


이 기간 나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애써 행복한 29세를 찾았는데

다시 고민 많은 29세가 된 것이다.

아까운 시간은 자꾸만 흘렀고

결국 선택하지 못한 채 12월이 왔다.

 

29.9세

무시무시한

그놈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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