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퀘벤하운 Jul 14. 2018

조용한 혁명, 성희엽 저, 소명출판

메이지유신을 통해 들여다 본 잘되는 조직과 망하는 조직의 차이

얼마 전 흥미롭게 읽은 책 중에 성희엽 교수의 ‘조용한 혁명’이라는 메이지유신에 대한 책이 있었다. 무려 5만원이 넘는 가격에 794 페이지의 두께는 부담스러웠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니 저자의 오랜 기간 연구한 시간들이 보이면서, 투자한 돈과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는 일본 근대사를 직접 이해하기 위해 가고시마부터 센다이까지 25개 도시를 직접 탐방하였고, 기초적인 사료를 연구하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까지 내놓았다. 앞으로 전개될 나의 글은 이 ‘조용한 혁명’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없을테지만(해외에 나온 지라 책이 옆에 있지도 않거니와), 나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읽으며 느낀 잘되는 조직과 망하는 조직의 생리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이하 내용은 '조용한 혁명'과 전혀 연관이 없을 수 있음)


먼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Meiji Restoration)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학교다닐 때 배운 메이지유신이라 함은 ‘일본의 기존 정치, 경제, 사회를 서구식으로 갈아엎은 혁명’ 정도로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본 안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1853년 미국의 페리함대라는 외생적 변수가 발단이 된 사건이다.


여타 조선이나 청나라 등의 동아시아 국가와의 차이점이라 한다면, 당시 외생적 변수가 발생한 것은 같으나, 스스로 개혁을 했는지, 아니면 타의에 의하여 개혁을 했는지 정도가 차이점이라 하겠다. 사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조선 정벌을 실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 전투를 발판으로 패권을 잡은 에도막부의 종말이 이 메이지유신이기 때문이다.


전국의 다이묘(봉건 영주)를 통제하는 중앙집권적 봉건시대인 이 에도막부는 17세기부터 약 2백여년간 일본을 지배한 정치체계인데, 이 때 일본은 번(藩)이라는 각 제후들이 맡아 다스리는 영지 단위로 흩어져 봉건사회를 구성하였다. 일본도 에도막부 시대에는 쇄국정책을 유지했는데, 현재 나가사키에 위치한 데지마(出島)라는 섬에는 네덜란드와 중국상인들이 제한적으로 출입하여 난학(蘭學)이라 하는 서양학문을 배워갔다는 점이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여튼 아무리 난학을 발전시키며 서양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양의학도 받아들이기도 했었지만, 일본은 어디까지나 각 제후들로 나뉘어 진 봉건체제였으며, 외세의 침략이 오는 것을 중앙집권적 세력을 통해 막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큰 나라였다. 이 때 동아시아의 큰 형님이라 할 수 있는 청나라는 아편전쟁을 통해 서양세력에 완전히 굴복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현재 도쿄만 어귀인 우라가 앞바다에서 페리함대가 공포탄을 쏘기 시작하니 위협의 강도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단어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존왕양이(尊王攘夷)라는 단어다. 그러니까 왕은 높이고, 오랑캐는 배척한다는 의미인데, 본디 다이묘와 쇼군을 중심으로 구성된 일본에 있어 왕이란 구심점을 통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의 서양 오랭캐를 배척하자는 말이다. 결국 여기서 그때까지 변방의 아저씨(?)에 불과했던 천왕(천황, 덴노)이란 존재는 주목받기 시작한다.


일본의 천황은, 옛날 옛적부터 현재와 같이 신급으로 추앙받던 존재는 아니었다. 대략 7세기 후반부터 천황이라는 칭호는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는 다시 13세기 이후부터, 그러니까 대략 가마쿠라 막부시절부터 에도 막부시절까지는 권력도 없는 단순한 얼굴마담 신세였다고 한다.


여튼 이 흩어져있던 일본이라는 나라를 왕정복고를 토대로 하나로 만들고 지역권력은 물론 신분제도, 특권과 차별을 폐지하고 혁명을 일으킨 주체가 있었으니 이것이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을 중심으로 한 유신 정부이다. 유신정부는 그 짧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신문물을 접하였는데, 이와쿠라 사절단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1871년부터 1873년까지 미국 및 독일을 비롯한 12개국을 들아다니며 신문물을 접하였다. 한 나라의 정부 수장들이 2년여에 걸쳐 서양 문명을 직접 접하고, 서양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재협상하며, 교육이나 과학기술, 정치, 법체계등을 직접적으로 전수받는 일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미국/유럽 순방 이후 이들은 미구회람실기(米欧回覧実記)라 하는 총 100편의 책도 출간하게 되는데, 보고 배운 견문을 사장시키지 않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린다는 목적은 백년도 훨씬 지난 작금의 시점에서도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잘되는 조직의 장점이 보인다. 잘되는 조직은 개방적이고, 과감히 투자를 하며, 기록을 통해 배운 바를 조직원들에게 전파한다는 특징이 있다. 아울러 이들은 이 시기에 근대적 입헌제도는 물론 사법제도도 구축하여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확립하였다. 잘되는 조직이라 함은, 이렇게 명문화된 규칙과 질서가 존재하여 조직원들로 하여금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하게 해 준다.


여튼 여기까지가 대략적으로 살펴 본 메이지유신의 과정과 주목해야 할 장점이다. 그렇다 하면 메이지유신을 통해 바라봐야할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 다시 존왕양이로 가보도록 하자.


왕을 높이고 오랑캐는 배척하자는 이 존왕양이(尊王攘夷) 개념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 존왕의 수준이 과도하게 변모해 나가게 되었다. 존왕양이가 핵심인 이 메이지유신 이후 천왕은 살아있는 신 그 자체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본디 토착 애니미즘 신앙이었던 신토(神道)는 이때 이후 국가신토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는 곧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일본이 되는데 기반이 된다.


1895년에는 수 천년간 동아시아의 큰형님으로 존재한 중국을 청일전쟁으로 이긴 일본은 타이완을 병합하였고, 1905년에는 서구열강 중의 하나였던 대제국 러시아도 러일전쟁으로 이기며 1910년 대한제국을 병합했다. 이 후 1914년 세계 제1차 대전 시 연합국의 일원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세력을 넓히고, 독보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로 불황은 심각해지고, 1936년 2.26사건 이후 일본 군부는 내각을 점령하게 된다. 이 시기에 ‘국체의 본의’라는 책이 발간되어 국민교육의 바탕이 되었는데, 이 책의 주요내용 중의 하나는 “자신을 버리고 생명과 활동의 근원을 항상 천황께 바친다”였다고 한다. 이후 그들이 벌인 야만적 행위, 그리고 제국의 몰락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망하는 조직의 특징은 일당독재와 비판없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당초 메이지유신 시기에 일본의 구심점 역할을 하려고 했던 존왕양이 운동은 신앙의 영역으로 변모하여 가미카제와 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충성심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는 어느 조직에서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아무리 뛰어난 조직의 수장이라 할 지라도 해당 조직의 A부터 Z까지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시간적 제약이 이유일 수도 있고, 경험의 제약이 이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백신을 만들어 낸 찰스님도, 아무리 하버드를 다녀왔다는 SDI도, 정치판에서는 바보가 되고, 부동산 가격은 예측하는대로 족족 틀리는 바와 같이, 어느 한 분야에서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다른 분야에서도 잘 판단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조직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개방적이어야 하고 투자가 이어져야 한다. 새로운 문물을 배운 조직원은 가감없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의견을 펼칠 수 있어야 하며, 제정된 법규와 제도는 조직의 장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하는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당독재의 체제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조직의 목표도 흐름도 모두 길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그 잃어버리는 길을 가리기 위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고, 재설정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진주만을 폭격한 일본과 같이 돌어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조직이 되어버리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떠한 조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이 조직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조직이냐 아니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회의를 해도 아무도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조직, 조직의 장이 아무말대잔치를 해도 모두다 박수만 치는 조직, 내부고발자는 십년이 가도 이십 년이 가도 나오지 않는 조직, 그런 조직은 오래가기 어려운 조직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최근(원 글은 2018년 2월 경 작성), 검찰조직 내에서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를 통해 과거 성추행을 당했다는 어느 검사께서 글을 올리셔서 사회적으로 큰 논의가 되고 있다. 여기서 많은 여론은 검찰조직의 문제를 탓하는 성토로 이어진다. 물론 해당 성추행 사건은 나도 분노를 느끼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게 사회적 재정비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직의 관점에서 본다면, 과연 이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 검찰조직과 같이 내부 통신망을 통해서 조직의 단점을 드러낼 수 있을까.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자기 목소리를 가감없이 낼 수 있는 채널이 있는 조직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과연 내가 있는 조직은, 그 검찰조직을 욕할 수 있는 수준의 위치에, 가 있을까. 한번쯤 고민을 해볼만한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메이지유신의 사례와 같이, 갑자기 너무 잘되는 조직은, 그 잘되는 이유 중 하나때문에,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부디 많은 조직들이, 그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선언, 김시덕, 열린책들, 20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