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Aug 08. 2019

박찬호(박찬욱+봉준호)의 영화

영화 <기생충> 리뷰

<기생충>, 메가박스 백석점. 
스포일러 있을지도 모름.
-


박찬욱은 영화를 정말 잘 만들지만 나는 그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그의 영화는 너무 잘 만들어져서 거의 모든 장면에서 그의 취향이 드러나는데, 나로서는 그 취향과 도저히 화해할 수가 없어서다. 그의 취향은 너무나 분명해서, 그가 감독하지 않은 영화를 아무런 정보 없이 보다가도 너무 박찬욱 취향이다 싶어 찾아보면 감독이 박찬욱 밑에서 일을 배웠거나(<비밀은 없다>), 시나리오 감수를 해줬거나(<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뭐 그런 식이다.


봉준호 영화에서 왜 박찬욱 얘기를 하냐 그러면, 내겐 이 영화가 봉준호의 영화라기보다 박찬욱의 영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봉준호가 30%, 박찬욱이 70% 정도? 이 영화에 대해서는 박찬욱이 (공식적으로) 개입했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지만, 어쨌거나 박찬욱의 취향을 닮았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정말 훌륭하다고 느끼지만 정말 싫다...


전반적으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는 영화다. 감독 말로는 <하녀>에 레퍼런스를 둔 영화라고 하는데, 그 영화를 나는 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고, 내게 떠오른 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여기에 <어스>의 느낌도 약간 어른거린다.



연관 검색어로 '기생충 해석'이 뜨더라. 봉 감독의 전작들(<괴물>, <설국열차> 등)과 다르게 뭔가 해석이 필요할 만한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부분에서 직설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모처럼 천하제일비평대회가 열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동안은 스포일러 피하느라 못 읽었으니 이제 차츰 한 편씩 읽어봐야겠다. 아무튼 대체로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딱히 내 수준에서 무슨 리뷰를 덧댈 필요가 있을지 잘 모르겠다.


박소담 캐릭터가 너무 좋았다. '뭔가 이상한 척 하는 예술가'를 노골적으로 비웃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 봉준호 감독은 늘 이렇게 작품마다 어떤 대상을 노골적으로 비웃는다. 이번 영화에선 모든 대상을 비웃는다. 가난한 자들, 부유한 자들, 부유한 자들에 얹혀 사는 가난한 자들. 누구에게도 애틋한 마음을 던지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일 것이다. 누구에게든 감정이입하지 않고서 영화나 만화나 소설을 즐기는 법을 현대인들은 잘 모른다. 그런 점에서 시대를 반역하는 영화랄까.


그러고보면 1.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포스터에 적힌 문구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 기택네 가족이 박사장네에 '기생충'처럼 들러붙어 고혈을 빨아도 박사장의 '행복'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깟 운전기사, 그깟 가정부, 그깟 고액미술과외 선생 한두명 고용한다고 박사장의 부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라는, 기생하는 자들의 '부도덕하고 뻔뻔한' 합리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이 이 집안에 기생하기 위해 밀어내야만 하는 자들은 바로 그들과 같은 기생충들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분명하게, 자주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2. 주인공 가족 네 사람이 취하는 태도와 결말이 서로 조금씩 다른 점도 흥미롭다. 기택은 부자를 등쳐먹지만 그들의 무시를 견디지 못하고, 기정은 부자를 등쳐먹는 한편 그들을 조종하려 들고, 기우는 부자를 등쳐먹으면서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고, 충숙은 뭐가 됐든 당장의 삶을 누릴 수만 있으면 된다는 쪽에 가깝다. 결국 기택은 지하실에 숨어 사는 신세가 되고, 기정은 살해당하며, 기우와 충숙만이 멀쩡한(?) 삶을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망은 좋은데 연출이 왜 이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