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 쓰고 성장이라 읽는다
육아 선배 분들께 여쭙고 싶다.
- 자주 토하는 아이라면 먹는 양을 조절해야 하나, 아니면 본인이 먹고 싶은 대로 계속 줘야 하나?
- 밥도 먹고 낮잠도 잔 아이가 운다면 즉각 안아서 달래줘야 하나, 아니면 조금 내버려 두어야 하나?
- 수면 의식을 위해 목욕을 하고 있다면 마지막 수유(막수) 전에 해야 하나, 아니면 이후에 해야 하나?
- 아이가 잘 때는 분리된 침대에 둬야 하나, 아니면 부모와 한 침대에 둬야 하나?
- 아이가 잘 자면 굳이 깨지 말고 깰 때 수유해야 하나, 아니면 자더라도 수유 하루 총량이 부족하면 깨워서 밤중 수유를 해야 하나?
아이를 키우면 키울수록 아내와의 의견이 자주 맞선다.
나와 아내는 매 순간, 저마다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토론의 장을 벌인다.
승자는 없다.
다만, 답이 모호한 결론만 있을 뿐.
그리고 나는, 육아 휴직 중이다.
아이와의 교감을 강조하는 엄마는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울음에 즉각 대응해야 하며, 부모와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대응하다가 나중에 뾲뾲이가 어린이집 가도 엄마, 아빠만 찾으면 어쩔래?"
"그렇게 아이 따로 재우다가 밤에 숨 못 쉬거나 무슨 일 일어나면 책임질 거야?"
매번 이런 식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되레 짐작하곤 한다.
마치 이 순간의 판단이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며 확대 해석하곤 한다.
서로 물러서지 않는다.
언성도 점점 높아져 간다.
내 의견이 맞을 거야. 아니 맞아야만 해.
간절히 바라기까지 한다.
그러다 문득, 상대의 의견이 아이에게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하고 자신감을 스스로 떨군다.
그리곤, 속는 셈 치고 상대의 의견을 따라본다.
아이가 크면 클수록 아내와 기승전결로 갈등을 빚는다.
그리곤, 나와 아내는 매 순간, 갈등을 후회하곤 한다.
육아엔 답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유명한 단어도 결국, 결과론 같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서 비교적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그때 그거, 사실 별 의미 없었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됐어. 이거 봐. 제법 잘 컸잖아?'
하지만 그 순간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당사자는 다소 말하기 어렵다.
지금 그 순간엔 그 문제가 우리에게 중대사기 때문이다.
지금 그 순간의 판단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늘어난 뱃골이,
심리적인 안정감이,
깨어난 상태로 수유하는 습관이,
혼자 잠잘 수 있는 힘이,
깊게 든 잠이
지금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중요한 것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육아를 바라보는 진지함과 적극성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다.
본인의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그 마음이,
그 마음을 투영한 의견과 그에 따른 갈등이
우리에겐 정말이지 꼭 필요하다.
우리의 육아 가치관은 갈등으로 말미암아 깊고 풍성해진다.
뾲뾲이 앞에서 서로 예쁘게 말하자고 다짐한 결과,
뾲뾲이가 앞에 없어도 어느새 서로 예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린 하루하루 더 성장하고 있다.
(*이번 편은 뾲파의 컨디션 난조로 연재일이 미뤄졌습니다. 이점 널리 양해 부탁드립니다(__))
(*육아휴직 일기는 열흘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다음 연재 일은 111일 차인 11월 2일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