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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뾲파 Oct 13. 2024

[뾲파의 휴직일기 ep.06] 동지

동지애(愛)도 사랑(愛)이니까

육아 휴직 덕분에 아내와 잠잘 때를 빼고 하루 20시간 넘게 함께 지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거의 모든 것을 함께하고 있다.


요리도 함께 하고, 밥도 함께 먹는다.

각자 전화하는 소리도 함께 들으며 이야기 나눈다.

어질러진 것도 함께 보면서 같이 치운다.

책을 읽을 때나, OTT를 볼 때도, 그리고 심지어 생리 현상마저도 공유한다...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한 후, 얼마 동안은 주말 부부로 지냈다.

주말 부부의 끝무렵, 소중한 생명이 탄생했고

곧이어 육아 휴직이 시작됐다.

동거(同居)를 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요즘이야말로 진정한 결혼 생활인 것 같다.

그리고, 요즘이야말로 부부로서의 진정한 동지애를 느끼는 것 같다.


나는 91일 차 육아 아빠다.

그리고 나는, 육아 휴직 중이다.




아내는 다소 힘겨운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겪었다.

임신 초기부터 자궁 경부 길이가 짧았다. 21주 차에 3.84cm가 나왔다.


보통 37주 이전까진 경부가 열리지 않고 태아를 건강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유지된다.

그런데, 37주 이전에 경부가 열리거나 길이가 짧아지면 태아가 점점 내려와 자궁구를 압박하고 조산의 위험을 높인다.


의사마다 말이 다르지만, 보통 임신 기간 내 자궁경부 길이 평균치는 3cm다. 4cm 이상이면 안심해도 된다 한다.

반대로 3~3.5cm 이하면 최대한 휴식과 안정이 권유되고, 특히 36주 이전에 3cm 이하면 절대 안정 혹은 입원하는 경우까지도 있다고 한다.

또한, 24주 이전에 2.5cm 이하 이면 평균 길이의 임산부보다 조산 가능성이 6배 이상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문제는 27주부터 생겼다. 경부 길이가 0.8cm로 급격히 짧아진 것.

아내는 그날부로 초고위험산모가 됐다. 그리고 바로 입원했다.


입원 후 자궁 수축을 억제하는 약(라보파)을 맞았다. 수축을 억제해 시간을 끌 의도였다.

하지만 좀처럼 수축이 잡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주치의가 계속 휴가여서 다른 의사의 진료를 봐야 했다.

해당 원장 선생님은 약을 맞아도 수축이 억제되지 않고 경부길이가 늘어나지 않는다며

자궁경부무력증 이라는 진단을 했다.

바로 맥 수술 혹은 맥도날드 수술이라 불리는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수술 중에 자궁 수축이 가속화될 경우 아이가 바로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점.

더욱이 양수도 새고 있어서 수술 자체가 무척 모험이었다.

수술을 할지 말지 무척 고민이 됐다.

보통은 27~28주 차 산모가 해당 수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를 더욱 불안케 했다.


곰곰이 상황별 리스크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봤다.

1) 수술 후 리스크(부작용) : 수술을 하면 자궁을 자극할 수 있고, 자극으로 인해 수축이 일어나면 조산 위험이 있을 수 있다.

2) 수술 안 했을 때 리스크 : 가만히 두면 언제 진통이 와서 조산할지 모른다.


결단이 필요했다.

리스크를 줄이는 편을 택했다.

수술하고 수축만 잘 잡으면 '만출'(40주 차에 출산)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바로 응급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수축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나는 회사-병원을 오가며 틈틈이 출산 준비도 했다.


아기 빨래를 위해 저녁 시간 내내 세탁기를 돌렸고 건조대에 자연 건조 시켰다.

아내가 아기 물품을 구매하면 조립은 내가 맡았다.

쏟아지는 택배 정리와 분리수거, 쓰레기 처리도 내 몫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병원에서 잠을 청했다.

자궁 수축을 막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아내 옆에 있어주지 않으면 안 됐다.


아내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지켰다.

자궁수축이 느껴질 때마다 검사를 해서 수축 주기를 살피고, 약 용량을 증감해야 했다.

혹시 통증이 느껴지진 않는지 매우 예민하게 체크해야 했다.

하지 말라는 건 안 했고 머리가 깨질 듯 아파도 약은 끊이지 않고 맞았다.

우리 모두 힘들고, 자주 지쳤다.


이때부터였다.

휴직을 다짐했던 게.

그리고 행복은 몰라도, 고통은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게.


어차피 아이는 탄생하고, 육아는 피할 수 없다면

둘 중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그리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함께 하자, 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내에게 동지애가 싹텄다.




기적적으로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한 후

육아 휴직을 하며 아내와 함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생활하며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임신부터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줄곧

기쁨도. 우울도, 즐거움도, 그리고 괴로움까지 함께 나눴다.


고통을 나누면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반대로,

많은 것을 함께 나누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우린 요즘, 더 많은 것을 나누고자 한다.

더 많은 일을 함께하고자 한다.

설령 함께 밥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어도,

어떻게든 함께 식탁에 앉고자 한다.


그렇게 나는 요즘, 점점 더 아내에게 동지애(愛)를 느끼고 있다.

동지애(愛)도 또 한 종류의 소중한 사랑(愛) 임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요즘, 점점 더 결혼과 육아, 그리고 육아 휴직을 실감하고 있다...!



(*육아휴직 일기는 열흘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다음 연재 일은 101일 차인 10월 23일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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