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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뾲파 Oct 03. 2024

[뾲파의 휴직일기 ep.05] 아빠

부성애, 모성애와 같은 듯 다른

요즘 뾲뾲이의 잠투정이 부쩍 잦아졌다.


이제 제법 본인의 의사표현을 한다고 생각하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척 버겁다.


특히 엄마 품에서 투정하는 빈도보다

아빠 품에서가 더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열이 많아서 아빠 품에선 더운가?'

'신체적인 차이 때문에 아빠 품은 불편한가?'

'뱃속에서 들었던 심장소리랑 달라서 그런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나?'


세상 떠나가라 울어 재끼는 아이를 보노라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곤 내가 아직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됐나, 하고 자책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러다 문득, 정신이 돌아와선

아빠와 엄마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81일 차 육아 아빠다.

그리고 나는, 육아 휴직 중이다.




오랫동안 사회적 통념상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강하다고 여겨졌다.

나는 사실, 이 문장이 사회적인 구조에 의한 편견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주로 집안일을, 아빠는 바깥일을 담당하면서 아이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엄마를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생각했다.

그저 그뿐이라 여겼다.

하지만 육아휴직 덕분에 공동 주양육자가 되면서 분명히 알게 됐다. 아빠에겐 한계점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것을.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고, 세상에 태어나선 엄마의 젖을 물며 엄마 냄새를 맡는다.


이런 생물학적인 차이 때문에 아이는 분명 아빠보다는 엄마의 품이 더 안정적이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이를 피부로 느꼈다. 아이를 안는 자세도 불편하겠거니와, 나의 품보다 엄마 품에서 더 표정이 좋다.

또 내가 재우지 못하는 것을 엄마는 곧잘 재우며,

우는 아이 달래는 속도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것이 때론 내게 좌절감도 안겨줬더랬다.


그렇다면, 아빠는 체념하고 육아에서 멀찍이 떨어져야 하는가.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지금 육아휴직 중이고, 아내와 함께 육아해 보기로 선택한 이상 말이다.


태생적인 한계에도, 아빠는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놀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말이다.


나를 포함해 아빠들은 대체로 아이가 놀 때 다소 과격하고 몸짓이 크다. 그리고 여러 놀이가 합쳐져서 복합적인 놀이 성향을 띤다.


이는 엄마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러한 이유로 자녀들이 아빠와의 놀이를 더 기대하고 있고, 더 즐거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영환, 2002).


또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아빠의 성향 덕분에 아이는 낯선 환경에, 그리고 낯선 이들에게 거부감이 덜해져 사회 적응력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이 또한 아빠의 태생적인 장점이리라. 그리고 아빠도 분명 제 역할이 있으리라, 하곤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문득, 나를 키웠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어릴 땐 아빠, 하며 불렀다.

나이가 차며 어느 순간 아버지, 가 됐다.

시간이 글자 하나를 더 늘린 셈이다.


어릴 땐 아버지가 내겐 영웅 같았다.

뭐든 다 나보다 크셨다.

뭐든 다 해내셨다.

그리고 내게 무엇이든 다 해주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가족보단 또래 집단의 영향력이 내 인생에서 더 커진 10대가 됐다.

이땐 아버지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애들에 대해, 요즘 트렌드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모르시는 것 같았다.

자주 대들었고, 많이 혼났다.


처음으로 독립해서 살게 된 대학 시절, 그리고 혈기왕성한 20대가 됐다.

아버지는 내게 필요한 분이었다.

금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그리고 심적으로도 자주 기대곤 했다. 그때마다 당신은 내 곁에 늘 있어주셨다. 그리고 힘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다른 가정이 생긴 지금, 30대.

나는 요즘,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자주 생각한다.

당신의 지혜를, 경험을, 그리고 가족을 위해 해 왔던 희생을 생각한다.

내가, 당신이 그토록 최선을 다했던 그 아버지가 되고 나니, 비로소 당신의 그때를 생각하곤 한다.


지금 나는 허점투성이에 도움도 많이 되지 않는 아빠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내 아들 역시 그때의 아버지와 나처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라는 게, 아버지라는 게, 그리고 부성애라는 게

모성애와 방식은 다를지라도, 모성애보다 많은 면에서 약할지라도,

결국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약하지 않지 않을까, 생각하곤 괜스레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린다.


휴대전화 화면엔 이렇게 쓰여 있다.

'아버지♡'



(*육아휴직 일기는 열흘마다 연재할 예정입니다. 다음 연재 일은 91일 차인 10월 13일입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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