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11.
J가 지각을 했다. 표정이 좋지 않기도 하고, 그전에 한 아이가 J가 아침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 귀띔해준 것도 있어 모른 채 했다. 그날 J의 글쓰기 공책은 하루열기 이야기가 유난히도 길게 적혀 있었다.
오늘 아침밥을 먹다가 머리카락이 반찬 있어서 그 반찬을 먹지 않는데 할머니께 "왜 안 먹냐! 이 멍청아."라고 말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 맘도 모르고 그런 말을 하여서 내가 멍청아라는 소리를 들어서 화가 막 차올랐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저는 멍청이라고 듣기도 싫어요." 그렇게 말하자 할머니는 마구 저를 때리셨고 등교하던 길에도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J의 글을 읽으니 얼마나 속상했을지 걱정이 됐지만 따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 글 아래에 짧게 공감의 글을 적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J를 살펴봤지만 워낙 쾌활한 아이라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오후가 되고, J의 일도 일상에 묻혔다. 그때 J가 여자 앞에서 S의 바지를 내려 울려버렸다.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가볍게 짚고 넘어가려 했는데 J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먼저 H가 J의 바지를 벗긴 일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S가 보며 웃어서 화가 나서 자신도 S의 바지를 벗겼다고 오히려 S의 잘못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S가 울며 자신은 J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고 하고, 친구들이 여러 방면으로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협의실로 보냈다. 아이들이 회의를 진행하도록 하고 J에게 갔더니 J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우선 그의 억울함과 분함을 들어주며 감정이 가라앉도록 했다.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자 한 가지 물음을 던졌다.
"선생님이 왜 J에게 잘못했다고 하는 줄 아니?"
"친구를 울려서요."
"아니란다. 혹시 J는 아침에 있었던 일 기억나니?"
"네."
"할머니가 왜 화내면서 때리셨지?"
"제가 편식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데 전 정말 편식한 게 아니었어요."
"응. 여전히 할머니는 네가 편식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시겠지. 네가 S가 자신을 비웃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네가 약하니까 때린 거야. 네가 너보다 센 H의 바지를 내리지 않고 S의 바지를 내린 것처럼. 누구든 사람이라면 존중받아야 하는데 말이야."
"......"
"선생님이 네가 잘못했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J는 할머니를 좋아하는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점도 있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기억하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가까운 사람을 닮아간다. 선생님은 J가 할머니의 싫은 점을 닮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고개를 끄덕이는 J에게 좀 더 마음이 가라앉으면 교실로 돌아오라고 했다. 얼마 후 돌아온 J는 금세 회의에 활발히 참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루닫기를 쓸 때는 S에게 사과하는 글을 썼다. J는 과연 어떤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됐을까.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면 정말 무서울 만큼 부모(또는 보호자)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말투와 행동이며 습관까지. 얼핏 보면 다르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자세히 볼수록 그렇다. 결국 아이들에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부모다.
*다음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닮아간다는 것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짧은 영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C60GHpoNf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