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인 지 오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름대로 계획에 맞춰 공부했어도 침대에 누우면 심장 뛰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흰머리를 감추려는 엄마의 염색 주기가 짧아지는 게 떠오르면 겨드랑이에 땀이 찼다. 아빠의 어깨 돌아가는 각도가 점점 작아지는 게 눈에 선했다. ‘아빠가 내 나이 때 나를 낳았는데 나는 뭘 하고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들면 머리에 식은땀이 났다. 그런 날은 눈을 감은 채 해가 뜨길 기다렸다. 차라리 얼른 공부하고 싶었다.
요새는 좀 나아졌다. 청년취업지원금 덕분이다. 6개월 동안 매월 50만원씩 취업 준비 비용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다. 유흥업소, 음주, 숙박업소 등 금지된 곳이 아니라면 식사나 교통비 그리고 생활비에도 보태 쓸 수 있다. 토익 시험 2회를 신청했고 각종 책을 10권정도 샀다. 괜찮은 후드도 장만했다. 내일모레 서른 나이에 부모님 돈을 축내는 게 죄스러웠는데, 그 마음을 잠깐 덜었다. 잠을 좀 잘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토요일에는 엄마에게 옷을 선물했다. 등산할 때 입으라고 기능성 티셔츠를 보러갔다. 아울렛 한 시간을 돌았다. 네파에서 디스커버리, K2, 밀레, 아이더…. 엄마는 가격을 들춰보기도 하고 디자인을 비교하기도 했다. 핑크색 꽃이 그려진 기능성 티셔츠와 카키색 얇은 바람막이를 함께 입은 마네킹 앞에서 멈췄다.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엄마는 꽃무늬 티셔츠 앞에서 망설였다. 그냥 입기에는 너무 튀어서 부담스러웠으나 카키색 바람막이와 함께 입으면 딱 이었다. 망설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둘 다 사자.” 십만원이 조금 넘었고 나는 취업지원금으로 결제했다.
엄마에게 옷 선물을 처음 했다. 인간적인 경험이었다. 엄마에게 선물을 하고 밥을 사드리고 하는, 사회적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할 수 없던 일. 이것은 내 자존감을 충전시켰다. ‘나도 자식도리, 사람구실 할 수 있다.’ 충만감을 느꼈다. 취업 의욕이 고취됐다. 얼른 엄마에게 겨울옷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때는 나랏돈 아닌 내 돈으로. 여느 책 한 권 읽는 것보다 이런 ‘인간다운’ 경험 한 번이 취업성공률을 높이지 않을까. 이 경험이 내 취업을 지원해줄 것이라고 믿는다.